눈발이라도 날릴 것만 같은 날씨다. 회색빛 하늘이 무겁게 내려앉아 있다. 산책을 하고 돌아오는 길, 동네 후미진 구석구석에서 마주치는 기억을 지울 수 없다. 때로는 길모퉁이를 돌면 금방이라도 웅크리고 있던 남수(가명)가 일어서서 나올 것만 같다.
학교 급식이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을 때이다. 대통령 선거 공약으로 내세운 학교 급식이 현실화되다니 신기했다. 공약(空約) 일 줄 알았는데 정말 공약(公約)이 지켜지고 있었다. 지금처럼 전교생이 당장 실시하기 힘들어서 우선 3학년 이상부터 교실에서 급식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해에 나는 2학년 담임이었다. 1, 2학년 교사들은 4교시 수업이 마치면 아이들을 하교시키고 교무실에 모여서 점심식사를 했다.
아이들을 집으로 보내 놓고 먹는 점심은 여유가 있어서 더 맛있었다. 솔직히 집에서 먹는 밥보다 더 맛있었다. 매일 새로 해서 나오는 갖가지 음식, 메뉴도 거의 매일 달랐다.
집에서는 내가 해야 가족들이 밥을 먹는데 하루 한 끼지만 누가 나를 위해 이렇게 따뜻한 밥을 해주는 것이 늘 고마웠다. 밥 먹으러 학교에 오냐고 아이들을 야단치면서도 나도 별로 다르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기다려졌다.
꽃샘추위가 매서운 3월 어느 날이었다. 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아이들이 길을 건너는 것을 지켜본 뒤 학교로 들어왔다.
점심을 먹고 교실로 오면서 복도 창문으로 뒤뜰을 내다보는데 우리 반 남수가 눈에 들어왔다. 학교 담벼락 후미진 곳에 남수가 기대 서 있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랐다. 아니 분명 다 함께 길을 건너는 것을 보았는데 왜 갑자기 남수가 저기 있는 것인가. 창문을 열고 남수를 불렀다. 남수는 뭔가 들킨 것에 놀라서 도망을 치려다가 멈칫거렸다. 교실로 들어오라고 했다.
내가 교무실에서 밥을 먹고 있는 사이 계속 밖에 서성이고 있었으니 얼굴이며 손이며 아주 얼음장이었다. 남수는 어렵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5, 3학년에 있는 두 형을 기다려 집에 함께 가려고 한다는 것이다. 횡단보도를 건넜다가 다시 학교로 와서 형을 기다린다는 것이다. 집이 바로 학교 앞 아파트인데 점심도 거르면서 다시 이렇게 학교를 돌다니 참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무튼 대충 이야기를 들어봐도 뭔가 가정에 문제가 있다는 직감이 들었다.
남수를 교실에 기다리게 하고 교무실로 갔다. 급식실에서 음식을 치우기 전에 음식을 가져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남은 식판도 있어서 점심을 가져왔다. 정신없이 밥을 먹는 남수를 보니 '울컥' 뜨거운 것이 치밀었다. 밥을 먹고 남수는 숙제를 하면서 형들을 기다리고 나는 업무처리를 했다.
오후에 남수 1학년 담임을 찾아갔다. 가정사를 알고 싶었다. 엄마는 안 계시고 아빠와 아들 넷이 있다고 했다.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남수와 그 아버지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남수가 셋째였다. 위에 형들은 무료 급식 혜택을 받고 있었다. 남수는 아직 급식 학년도 아니고, 또 한 가정에 두 사람까지만 무료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그 당시는 지금처럼 복지가 아직 충분한 실정이 아니었다.)
참 고민이 되었다. 내가 페스탈로치는 아니지만 이미 봤고, 알았으니 그냥 덮고 넘어갈 수가 없었다. 교무실에는 늘 음식이 남았기에 남수가 더 마음에 걸렸다.
다음 날부터 남수를 교실에 남아서 기다리게 했다. 처음엔 교무실에서 선생님들이 먼저 식사가 끝나면 남수 점심을 챙겨 왔다. 하지만 교실에서 기다리고 있을 남수가 목에 가시처럼 걸려 남수 점심을 먼저 챙겨서 교실에 갖다 주었다. 어차피 남는 음식인데도, 왜 혼자서 편법을 쓰냐고 눈치를 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할 말이 없었다. 사실 그런 아이들이 우리 반 남수만 있는 것이 아니기에 소문이 나면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었다. 큰 부자는 아니지만 밥값을 물어내라면 물어내리라 각오는 하고 있었다.
남수를 위한 다기보다 내가 편하게 밥을 먹었다. 3월부터 시작된 남수의 점심은 그렇게 아무 탈 없이 지내왔다. 자기만족에 빠진 것인지 몰라도 내가 보기에 남수도 밝아지고 편안해 보였다. 남수는 매일 형들이 수업 마칠 때까지 교실에서 숙제도 하고 동화책도 보았다. 때로는 TV로 만화를 틀어주기도 했다.
학년이 끝나는 마지막 날이었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그날도 전국이 한파주의보가 내릴 정도로 꽁꽁 얼어붙는 날씨였다. 그날은 급식도 없었다. 마지막으로 남수에게 학용품이라도 좀 챙겨주고 자장면이라도 배달시켜 주려고 교실에 남아있게 했다.
아이들 하교지도를 마치고 학교로 들어왔다. 우리 반 복도를 걸으면서 무심코 교실 안을 본 나는 얼음이 되어버렸다. 남수가 교사용 캐비닛을 열고 내 가방을 꺼내놓고 뒤지고 있는 것이었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충격이었다. 가슴이 막 방망이질하듯 두근거렸다. 눈 앞이 아찔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평소에 잠그고 다니던 캐비닛인데 그날따라 방학식 한다고 들뜬 아이들 따라 나도 정신이 없었다. 캐비닛을 잠그지 않고 하교지도를 나갔다. 아니 남수를 믿은 것이었다. 생선가게를 고양이에게 맡긴 격이 되었다.
속은 놀람과 충격으로, 배신감으로 요동치고 있었지만 애써 마음을 가다듬었다. 태연한 척 조용히 교실 문을 열었다. 남수가 너무 어리기에, 화들짝 놀라서 기절이라도 할까 봐 걱정이 앞섰다.
“남수야 뭘 찾고 있니?” 속울음을 머금은 나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남수의 반응에 나는 더 기가 막혔다. 당황하는 기색도 없었다. 미안해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모든 것을 그 자리에 놓은 채 하는 수없이 그냥 자기 자리로 가는 것이었다. 내 책상 위에는 지갑과 남수가 꺼내다만 돈이 고스란히 놓여 있었다.
돈을 잃지 않았다는 안도감보다는 말할 수 없는 허탈함과 배신감으로 멘털이 붕괴되고 있었다. 담임으로서, 어른으로서 남수에게 해줄 묘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책임감의 무게만 돌처럼 가슴을 짓눌렀다. 겨울 냉기보다 더 차가운 공기가 우리를 감싸고 있을 뿐이었다. 어려서 정말 개념이 없는 것인지, 남수의 무표정한 얼굴을 보면서 더 이상 건넬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혼자 속으로 읊조렸다.
" 남수야, 감사하는 마음만 있어도 살 수 있는데......"
그날 남수에게 남의 물건이나 돈에 손을 대면 절대 안 된다고 애타게 말은 했지만 나의 어떤 말도 왠지 남수 앞에 초라하게 느껴졌다. 손가락까지 걸고 다시는 그러지 않기로 약속했지만 과연 남수 마음에 파장을 일으켰는지는 알 수 없었다. 3학년이 올라가더라도 어려운 일이 생기면 찾아오라고 말은 했지만 남수는 지금까지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
나중에 남수 3학년 담임이 전해주었다. 남수 아버지가 학교에 와서 왜 2학년 때는 학교에서 밥을 주었는데 3학년 때는 주지 않느냐고 난리를 피웠다고 했다. 이미 남수네는 형들이 혜택을 받고 있고 담임이 남수만 무료급식을 해 줄 수도 없는 형편이라고 설득을 해도 막무가내였다고 했다. 그 뒤에도 가끔 남수 형제들과 아버지에 대한 좋지 않은 소식이 들려올 때가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남수가 그 형제들 중에 그래도 제일 낫다는 평이 따라붙어 왔다. 그때마다 나는 내심 ‘그것이 그래도 1년간의 밥 힘이 아니었을까’라고 위로를 받았다.
여기저기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지는 12월이다. 춥지만 따듯한 축제 분위기의 연말이 되면 아직도 남수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온다.
어디서 무얼 하고 사는지,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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