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정 새해가 있어 다행이다

~ 다시 떠오르는 태양처럼 ~

by 강신옥

친정엄마가 대상포진을 앓고 있다. 엄마는 올해 91세이다. 자식이 7남매이고 가까이에 셋이나 살지만 엄마는 혼자 사셨다.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기 싫어하는 성격과 몸에 밴 부지런함 때문에 지금까지 혼자서 잘도 버티셨다. 하나에서 열까지 엄마는 손수 다하시며 생활했다. 정신 하나 빼고는 온 몸이 노쇄하셔도 엄마는 항상 이만한 것도 감사하다며 바쁜 자식들한테 짐이 되지 않으려고 하셨다


동생한테서 엄마가 대상포진이라는 전화를 받았을 때, 당연히 입원 치료를 해야 한다 생각했다. 그런데 엄마는 입원하지 않았다. 90이 넘어 삭정이가 된 몸에 무슨 주사를 맞으며 치료를 받겠느냐는 것이다. 의사 선생님 역시 엄마와 같은 진단이었다. 엄마 상태로 봐서 주사도 무리가 될 수 있다며 연고와 붕대 치료만 하고 약과 치료 연고, 붕대 등을 처방해 주었다. 집에서 식사 잘하면서 치료를 받는 것이 엄마에게 더 안정적이라고 동의를 했다. 엄마는 의사 선생님이 아주 양심적이라며 극찬을 하셨다.


하루아침에 거동도 못 하고 통증을 견뎌야 하는 엄마가 되었다. 얼마나 효녀여서가 아니라, 엄마가 지금까지 혼자 잘 살아준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멀리서 애를 태우기보다 차라리 가까이서 눈으로 보며 함께 있는 것이 마음이 덜 힘들 것 같아서 모시고 오려고 해도 엄마는 현재 몸으로는 장거리를 움직일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할 수없이 가까이 살고 재택근무를 하는 막냇동생이 흔쾌히 엄마를 모시게 되었다.


다행히 동생은 최근까지 한의원을 운영해왔기에 치료나 간병에는 고수였다. 동생은 부담스러워하지 않고 안방에 아주 엄마를 위한 병원을 차린 격이 되었다. 동생이 치료는 잘 하지만 엄마의 통증이 심하고 기력이 급속도로 쇠해졌다. 엄마도 너무 힘들어하고 옆에서 보는 것도 힘들었다. 집을 비우고 무한정 가서 함께 있을 수도 없고, 집에 와도 마음이 편한 것도 아니니 자꾸 전화만 하게 된다.


우리 엄마는 참고 견디는 것에 선수인데도 통증이 오죽했으면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아무리 설득을 해도 아직까지 엄마는 입원만큼은 하지 않겠다고 버티고 있다. 동생은 동생대로 엄마의 짜증에 맞짜증이 나서 답답한 마음에 언니라고 또 전화를 한다. 엄마가 저리도 입원을 거부하는 것은 치아가 좋지 않으니 집에서처럼 식성대로 과일이며 곡물이라도 갈아서 먹을 수 없다는 것도 문제이고, 자유가 없는 답답함이 통증보다 더 싫다는 것이다.


신경을 쓰며 전화를 주고받고 엄마를 설득하며 안정시키고 나면 나도 지치고 만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무기력해지고 우울해질 때가 많다. 때로는 동생과 엄마가 함께 전화를 해서 답답함을 털어놓는다. 긴 병에 효자 없다고 한다. 부모는 자식이 열이라도 키우지만, 자식이 열이라도 부모 한 사람 모시기는 어려운 것이 실감이 난다.


짜증내고 고집 피우는 엄마를 보면서도 원망할 수 없다. 첫째는 엄마가 일단 직접 고통을 겪고 있는 환자이기 때문이다. 산모의 고통을 산파가 대신할 수 없는 것이다. 바로 이어서 떠오르는 것이 언제 어떻게 내 차례가 올지 모른다는 생각이 스며들기 때문이다. 정도 차이는 있어도 누구나 생로병사의 인생길을 가고 있음을 보고 있다. 자기 몸도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음을 어찌하겠는가.

또 어떻든 24시간 집에서 엄마와 함께 부대끼며 직접 간병을 하고 있는 동생의 하소연이라도 들어주고 걱정을 나누어야 한다. 그런들 얼마나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새해 계획이니 뭐니 다 어디로 가버리고 온 가족이 몸살을 앓는 생활이다. 면역력이 떨어져서인지 실지로 감기도 두 번이나 앓았다. 글을 쓸 생각은 엄두도 못 내었다. 글을 쓰고 자기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브런치도 열지 않고 지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몸보다 마음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도 고통과 싸우는 엄마와 간병하느라 고생하는 동생을 생각하며 몸을 일으키고 집 앞에 있는 교회로 갈 수밖에 없었다. 혼자서 기도하고 나면 텅 빈 회당인데도 뭔가 내면이 채워진다. 저녁 설거지를 끝내고 나면 어둡고 춥고 나서기 귀찮다 생각하다가도 아픔을 견디고 있을 엄마와 동분서주하며 엄마를 간병하는 동생이 떠올라 기도하러 나서게 된다. 기도는 엄마와 동생만을 위한 일이 아니다. 기도라도 해야 내가 견딜 수 있었다. 힘없이 휘청거리던 마음을 잡고 성경이라도 읽을 수 있었다. 해결된 것이 없어도 마음이 담담해지곤 했다. 밤기도가 끝나면 입 다물고 책이라도 좀 보다 잠들 수 있었다.



1월 1일 새해를 시작했지만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흘러가버린 나날이다. 허무하고 불안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대책이 서질 않았다. 그냥 하면 되는데 그 간단한 것을 시도하지 못하고 주춤거리고 있는 동안 다시 구정이라는 새해가 되었다. 구정이라는 새해를 붙잡고 마음을 추슬러 본다. 설날이 두 개인 것이 참 다행이다. 별반 다를 것이 없다 해도 이렇게 시간의 마디가 있어서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내어본다. 다시 시작할 브런치도 있고, 그동안 만나지 못한 독자들도 생각나기 시작했다. 다시 만날 생각을 하니 가슴이 설레기 시작한다. 다이어리도 찾고, 영어책도 준비하고 도서목록도 적어보며 설 명절 준비를 했다.


다시 구정이라는 새해가 시작되었다. 바다 저 끝에서 붉은 태양이 서서히 떠오르고 있듯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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