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다. 코로나는 외출을 자제하라지만 봄 햇살이 우리를 불러냈다. 코로나에 감염된 마음에 봄볕이라도 쬐어주고 싶었다. TV 뉴스를 계속 시청하고 있지 않아도 이미 코로나로 가득 찬 머리에서 잠시라도 코로나를 비우고 싶었다. 코로나에 붙잡힌 마음을 놓아주고 싶었다. 남편과 함께 집을 나섰다.
역시 산책을 나서야 하늘을 본다. 가슴이 열리고 몸도 마음도 봄 햇살로 샤워를 한다. 아직 바람 끝에는 겨울 여운이 남아있지만 하늘과 땅 사이엔 봄 햇살의 아우라가 퍼지고 있다.
어느새 산책이라는 책을 읽기 시작한다.
흙길을 걷는다. 발이 편하다. 알게 모르게 잔뜩 힘이 들어가 있던 어깨도 풀어진다. 땅 위를 걷는다기보다 점점 봄 햇살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 흙을 밟으며 걷다 보면 아스팔트 길에서 종종걸음치고 뛰면서 굳었던 마음이 풀어진다. 마음이 부드러워지며 여유가 생긴다. 뭘 그리 바쁘게 살았던가. 이런저런 상처들로 허물어져가던 마음을 붙잡아 일으켜 주는 것이 부드러운 흙의 힘인가 보다. 차들이 질주하는 아파트 앞 도로를 벗어나, 때로 아파트 뒤의 한적한 흙길을 걸으며 내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고 내가 걸어갈 길을 생각한다.
언젠가부터 산책을 할 때마다 마주치는 개(犬, dog)가 있다. 이름하야 우리가 ‘강산’이라고 부르는 개다. 처음 마주쳤을 때부터 강산이는 대뜸 짖고 보는 여느 개와 달랐다. 뭔가 낯설지만 산책을 즐기는 이웃이라는 것을 느낌으로 알아차렸는지 경계를 풀고 지그시 반가움의 눈길을 보냈다.
그 이후 지나갈 때마다 우리의 인기척에 항상 그 자리에 나와서 지켜봐 준다. 추운 겨울에도 더운 여름에도 ‘사회적 거리’를 생각하는지 항상 딱 그 자리까지만 나와 앉아서 우리가 멀어질 때까지 눈을 떼지 않고 아쉬움의 눈길로 지켜봐 준다. 무심한 듯 반기는 변함없는 눈길에 우리도 발길을 멈추고 안부를 확인한다.
부드러운 봄 햇살이 스며들듯 서서히 정이 들었다. 산책을 나설 때면 강산이를 생각하며 멸치라도 몇 마리 챙기게 된다. 음식 끝에 마음 상했는지 이웃의 다른 개들은 차별에 항의하듯 몇 번이라도 짖어댄다. 말 못 하는 개도 교감 정도에 따라 관계가 다르니 사람은 오죽할까 싶다. 개보다도 못한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
나무를 본다.
산책 때마다 사방에서 시선을 사로잡는 것이 나무이다. 나무라는 같은 책이 늘 다른 글을 쓰고 있다. 사시사철 시시때때로 다른 이미지로 다가온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잎도 꽃도 모두들 떠나가고 홀로 서서 찬바람을 이겨내고 있던 ‘겨울나무’였다. 우리 삶의 마지막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가슴이 아렸다.
아직, 겨울 티를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 나무도 더러 있지만 아낌없이 주는 봄볕 세례에 기지개를 켜며 눈을 뜬다. 죽은 줄 알았던 가지마다 줄기마다 생명의 움이 돋고 있다.
나날이 싹이 트고 잎이 돋고 색이 바뀌고 꽃을 피우고 있다. 역시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것은 새로 시작할 수 있는 희망이다.
지난주 보다 꽃 모양이 훨씬 더 도드라진 산수유, 매화에 감탄사를 보냈다.
봄볕을 머금은 노란 산수유, 아기 볼살 같은 우윳빛 매화를 보며 ‘어머~ 벌써?~’라고 감탄을 연발하는 순간, 마음까지 확~꽃이 피는 느낌이다. 화려한 기간이 길지는 않지만 때가 되면 순서를 따라 꽃을 피울 수 있다는 것이다. 꽃이 피는 시기를 남과 비교하지 말아야 행복할 수 있다고 읽었다.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또 있다. 봄나물이다. 아무도 돌봐주지 않았는데도 천진난만하게 잘도 자라 지천에 널린다. 부족함 없이 자란 듯이 쑥쑥 자란 쑥, 꽃처럼 화려하지는 않아도 봄의 원기까지 먹여주며 힘내라고 토닥거리는 달래, 냉이……. 발에 차이면서도 꿋꿋이 살아서 올라오는 이름 모를 풀까지도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온갖 것을 소유하고 즐기면서도 사네 못 사네 세상살이 힘들다던 불평이 ‘쑥’ 들어 간다.
어느새 날아왔는지 새들도 나뭇가지 사이를 산책한다.
따뜻한 가지에 앉아서 재잘거리는 새들, 나무와 추운 겨울을 지내온 이야기를 나누고 삶을 노래한다. 높은 곳의 나뭇가지일수록 찬바람과 외로움이 더 클 것이다. 그 사정 헤아리며 높은 곳에 보금자리를 지어 긴긴 겨울밤을 동고동락해온 나무와 새들의 깊은 우정도 부럽다.
얼었던 땅을 일구어 채소를 준비하려는 도시 농부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뭔가 땀 흘려 수고해서 거둬들이며 살아가는 사람들, 작은 씨를 뿌리고 모종을 심고 가꾸며 잠시도 쉴 새 없이 일한다. 그들의 손길이 무기력해진 내 마음에도 삶을 심는다.
나도 매일매일 일상을 땀 흘려 심고 가꾸어야겠다.
아파트 뒷길을 한 바퀴 돌아오니 단지 내 운동 시설, 놀이터와 마주쳤다.
코로나의 여파를 피부로 느낀다. 개학이 연기되었는데도 평소와 달리 인적이 드물다. 주인을 잃은 운동시설, 텅 빈 놀이터는 생기를 잃었다. 봄 햇살 받으며 그네도 타고 미끄럼도 타며 노는 듯 자라야 할 아이들이다. 집안에서만 있느라 아이들도 부모들도 얼마나 답답할 것인가. 빈 의자에 앉아서 다시 아이들 소리 되살아나는 놀이터를 그려 보았다.
언젠가부터 산책을 하고 나면 책을 읽은 마음이다. 산책도 책이었다.
봄햇살 퍼지는 하늘, 뿌리 깊은 나무, 때가 되면 피는 꽃, 봄의 원기 돋우어 주는 봄나물, 아무도 돌봐주지 않아도 꿋굿이 올라오는 이름 없는 풀, 나무와 동고동락하는 새들, 인기척도 반겨주는 (개)강산이까지도 그들을 만나고 소통하며 보이지 않는 내면의 힘을 채워서 돌아오는 산책이다.
산책하며 보고, 듣고, 읽는 자연의 소리, 그 소리를 읽는 독자가 되었다. 그들과 이런저런 댓글을 주고받고 읽으며 걷는 산책이다. 사람의 마음은 시선을 따라 움직인다. 산책이라는 책은 평생 함께 하고 싶은 책, 마음으로 읽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