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장거리를 움직일 엄두가 나지 않아서 자제하고 있었던 친정 나들이였다. 놀러 가는 의미가 더 큰 ‘나들이’라고 하기엔 어울리지 않는 말이지만 나는 나들이라고 부르고 싶다. 가까이에서 엄마를 조석으로 돌보는 동생들에 비하면 바람 쐬고 오는 정도의 일이니까 말이다.
친정엄마가 91세에 대상포진으로 엄청 고생을 하고 있은 지 벌써 몇 달째다. 자식들이 모두 마음이 편치 못하다. 거기다 코로나 때문에 병원 진료가 더 불안해서 집에서 견디며 버텨내고 있다. 대상포진이라는 병의 고통은 엄마가 예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약도 주사도 소용이 없었다. 고통을 고스란히 홀로 감내해야 했다. 살면서, 참는 것에 선수인 엄마가 힘들어하는 것을 처음 실감했다. 고통이 심해서 잠을 못 이루었다. 짜고 매운 음식이 들어가면 몸이 저리고 더 아프다고 했다.
아픈 증상을 쏟아놓다가 그래도 늘 결론은 감사였다. 이 정도로라도 걸어 다닐 수 있고,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어디냐고 했다. 특히 코로나 감염자가 많았던 지역이라 코로나로부터 무사한 것도 감사했다. 무엇보다 친정엄마가 아직은 치매기가 전혀 없이 정신이 나보다 더 맑다는 것이 너무 감사하다. 어쩌면 하늘을 바라보듯 신앙과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은 친정 근처 동생의 힐링 캠프로 모였다. 별장으로 부를 정도로 화려하지는 않지만 황토로 지은 집과 넓은 잔디와 정원, 집을 두르고 있는 텃밭이 있어서 쉼터로 부족함이 없다. 듬성듬성 떨어져 있는 집들은 서로 사생활 방해받지 않고, 보이는 곳에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의지가 되는 시골 마을이다.
제부가 오늘 일정의 워밍업으로 쉼터 근처에서 채취한 여러 가지 꽃차를 끓여주었다. 봄 햇살에 건조한 노란 생강 꽃이 따뜻한 물과 어우러져 노란빛과 연둣빛이 도는 물빛이 되었다. 한 모금 한 모금 마실 때마다 몸속까지 봄의 온기가 스며드는 기분이다. 꽃차 이야기를 나누면서 코로나로 긴장했던 마음이 풀리고 꽃밭에 와서 앉아 있는 듯했다.
‘화무십일홍’이라고, 생명력이 짧은 꽃으로 보면 생강 꽃이 봄빛에 숙성되어 고운 생강 꽃차로 거듭나기까지 평생이 걸린 일일 수도 있다.
첫째 동생이 점심을 준비하는 동안 나는 엄마 목욕을 시켜드렸다. 단단한 신앙으로 슈퍼우먼 같던 엄마가 이제 삭정이처럼 가벼워진 몸이다. 으스러질까 봐 등도 살살 밀어야 했다.
초등학교 다닐 때 일요일마다 엄마는 가마솥에 물을 끓였다. 7남매 중 여섯 딸들의 머리를 감기고 동생들 목욕을 시켰다. 순서를 정해서 엄마 앞에 가서 머리를 감았다. 엄마는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물이 너무 뜨겁다고 말하면 그때마다 엄마는 “엄마 손도 참을 만 한데 뭐가 그리 뜨겁냐?”라고 우리를 나무랐다. 이제 엄마와 내가 역할이 바뀌었다. 내가 손을 넣어보면 딱 기분 좋은 정도인데 엄마는 자꾸 물이 뜨겁다고 했다. 노인이고 환자인 엄마를 나무랄 수는 없고 속으로 웃었다. 이래서 딱 그 자리에 가보지 않고는 모른다고 하지 않았던가.
목욕이 끝나면 엄마는 미용사처럼 차례를 정해서 우리들의 긴 머리를 빗겨서 땋아 주었다. 오늘은 우리가 엄마 머리를 빗겨주었다. 엄마가 시원해서 기분 좋아하니 우리도 덩달아서 마음이 가벼워졌다. 우리 모두를 씻기고 입히고 했던 엄마였는데 이제 엄마를 아기 돌보듯 해야 하다니 세월의 무상함을 느낀다. 세월이 우리 자리를 바꾸어 놓았다.
어디 친정엄마뿐이겠는가?
막내 동생이 두 언니의 머리를 염색해 주고 자기 머리도 염색을 했다. 우리 모두 다 어느새 흰머리가 올라오는 것을 막을 수 없는 나이가 되었다. 나도 작년부터 머리에 염색을 하기 시작했다. 염색을 집에서 한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동생이 미용사처럼 언니들을 염색을 해주었다. 어린 시절 막내라고 엄마가 바쁠 때는 우리가 동생 머리에 리본을 넣어서 땋아주곤 했는데 이제 그 동생이 우리 머리를 염색해 주고 있었다. 동생이 우리를 젊어지게 해주고 싶은 것은 마음뿐. 세월이 우리 자리를 바꾸어 놓았다.
첫째 동생이 닭백숙과 텃밭에서 따온 머위를 삶아 쌈을 준비하는 등 푸짐한 점심을 차렸다. 생강 꽃차, 갓차 등 꽃차에 이어 봄을 한 상 먹은 점심이었다. 엄마가 해주던 달래, 냉이, 쑥을 도대체 무슨 맛으로 먹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 고기보다 봄나물의 맛을 즐기는 나이가 되었다. 세월이 느끼게 해 준 맛인가 보다.
봄나물의 향기가 몸 전체에 퍼져 싹이라도 돋길 바라는 마음으로 서로서로 한 번이라도 쌈을 더 권했다.
설거지를 끝내고 동생들이 취미로 하는 악기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바이올린, 하모니카, 우쿨렐레, 오카리나를 번갈아 들려주었다.
학교에서 방과 후 바이올린 교사하는 막내 동생이 시범을 보이며 바이올린 강의를 했다. 여러 가지 악기를 서로 연주하며 오후 한 때를 보냈다.
어린 시절, 7남매 중 누군가 음악시간에 배운 노래를 부르면 너도 나도 따라 부르다 어느새 가족합창이 되고 말았던 생각이 났다. 그때 생긴 절대음감이 기본이 되어 악기 연주가 수월해졌고 음악을 즐기게 되었다.
세월이 바꾸어 놓은 자리에서도 즐겁게 놀았다. 50이 넘은 아줌마들이 되었지만 나이를 잊어버리고 어린 시절을 재연하듯 놀았다. 엄마는 우리가 노는 모습을 지켜보며 대상포진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친정에 오면 인터넷이 안 된다. 친정엄마 혼자 사는 집이라 TV는 나오지만 인터넷 가입을 하지 않았다. 답답하고 심심할 것 같지만 그 나름대로 삼삼한 맛이 있다. 엄마와 예배드리고, 이야기하고, 집안일하고, 재래시장 구경하고, 책 읽고, 산책하고……. 달콤하지는 않지만 밋밋한 듯 갈증을 해소해주는 물맛이랄까. 오랜 세월이 숙성시켜준 맛이다.
세월이 우리 자리를 바꾸어 놓았지만 우리는 그 자리에서 또 그냥 그저 즐기며 놀았다.
( 간간이 브런치에 올라온 글들이 궁금하지만, 인터넷 없이 사는 세상이 고요하고 오래된 세월을 돌아보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