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바람을 이겨내고 피는 꽃이라 잔치를 열어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만발한 꽃들의 향연이 사람들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꽃보다 사람이 더 많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찾던 꽃 축제도 꽃이 지면 막을 내린다. 어쩌면 짧기에 놓치지 않으려고 사람들이 몰려드는지도 모른다. 화려하게 만발했다가 지는 꽃을 보며, 오버랩되는 사람들이 있었다. 꽃이 남긴 삶의 의미는 우리 가슴을 두드린다.
봄꽃 축제의 단연 으뜸인 벚꽃!
그 화려함이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발길을 끌어 모은다. 삼삼오오 어우러져 만발한 벚꽃터널 아래에서 봄을 만끽한다. 꽃을 배경으로 하고 싶어 한다. 꽃과 함께 즐거움을 누린다.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그것도 한 때이다. 벚꽃 역시 봄바람에 꽃눈을 흩날리며 진다. 아기 볼처럼 연한 분홍빛 화려함도 잠시였다. 알고 보면 너무나 얇고 가벼운 존재인 우리들과 닮았다. 벚꽃 잎처럼 작은 바람결에도 흔들리고 떨어지고 마는 것이 우리들이다.
벚꽃이 지던 날, 우리 인생의 결국이 보였다. 누구에게나 화려한 젊음과 나름대로의 전성시대가 있으리라. 하지만 때가 되면 너나 할 것 없이 다 바람결에 흩날리듯 떠나간다.
때마침 21대 국회의원 총선이 있었다. 떨어지는 벚꽃이 오버랩되었다. 당선자나 낙선자나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어서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던 사람들이다. 무슨 잘못이 있어서 낙선자가 된 것도 아니다.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바람결에 떨어진 꽃잎과 같았다. 당선자라 한들 앞서거니 뒤서거니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이천의 물류센터 대형 화재로 38명이 세상을 떠나가고 부상자도 있었다. 진정 국면의 코로나에서 한숨을 돌리려는데 또다시 우리 가슴을 아프게 한다.
어디 그들뿐이겠는가!
지는 벚꽃을 보면서 우리 모두의 덧없는 인생을 생각했다. 어쩌면 삶을 되돌아보게 하기 위해 축제까지 열며 주목(注目)시키는 것은 아닐지…….
순백의 자태가 고결해 보이는 목련!
어두운 밤일수록 가로등보다 더 밝은 등불이 되어 우러러보게 만드는 목련이다.
‘생명의 등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비만 한 두 번 오면 속절없이 지고 만다. 땅바닥으로 떨어지면 사람들이 무심코 밟으며 지나가기도 한다. 우아해 보이던 우윳빛, 상아빛은 누런 갈색으로 퇴색되고 만다. 우러러보았기에 더 초라해 보인다.
목련이 지던 날, 오비이락인지는 몰라도 자기 자리에서 수치스럽게 물러나는 유명 인사들이 TV 화젯거리였다.
그들을 비난하자는 것이 아니다. 유명인사가 아니어서 드러나지 않을 뿐, 누구나 자기도 모르게 누군가의 발에 밟히며 사는 것이 우리들이 아닐까 싶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우러러보고 있었기에 말 한마디, 행동 하나도 더 신중해야 했을 것이다. 목련처럼 더 아름답고 고귀했기에 퇴색하기 쉬웠는지도 모른다.
비에 젖어지는 목련을 보면서, 아무리 유명하고 힘 있는 자리에 있다 해도 약한 것이 인간이라는 생각을 했다. 목련은 비를 피할 수 없지만 사람은 피할 것을 피할 수 있다. 그래서 비난을 피하지 못하고 자리에서 떨어지는 것이다. 우아하게 돋보이지는 못해도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자기 빛깔을 잃지 않는 삶을 생각했다.
4월이 간다. 화려한 벚꽃도 우아한 목련도 피었다가 지고 말았다. 꽃은 떨어지고 없지만 어떤 설교 못지않은 의미를 남겨 주었다. 화려함도 우아함도 비바람을 견디지 못하면 떨어지고 만다. 그래서 잔인한 4월 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바람이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갈지 알 수 없기에,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
‘화무십일홍’이라고 그렇게 빨리 져버릴 꽃이지만, 우리에게 이 말을 해주고 싶어서 피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