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의 여운

~ 놀며 사랑하며~

by 강신옥

아직은 그리 덥지 않은 여름 저녁이다. 저녁을 일찍 먹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한낮의 열기가 식은 서늘한 저녁 산책이 좋았다. 답답한 운동화 대신 슬리퍼를 끌고 느릿느릿 걸으며 바람을 씌었다. 발이 가벼우니 마음도 자유로웠다. 해는 졌지만 어둡지는 않아서 시야도 편했다. 한적한 아파트 뒷길을 한 바퀴 돌아오니 아이들 소리 떠들썩하다. 아파트 놀이터이다. 땀도 식히고 다리도 쉴 겸 놀이터 앞 벤치에 앉았다. 놀이터를 바라보고 앉으니 놀이터는 무대가 되고 나는 관객이 되었다. 놀이터 무대에는 아이들만 출연한 것이 아니었다. 젊은 부부들도 보이고, 주인을 졸졸 따라다니는 강아지도 있었다.


코로나가 진정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잠잠했던 놀이터가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유모차에 누워서 엄마와 눈 맞춤을 하는 아기들로부터, 아장아장 걷는 아이, 그네를 타는 아이, 미끄럼틀을 내려오는 아이, 자전거를 타는 아이……. 바람은 멀찍이 떨어져 있는 나에게까지 놀이터 온기와 생기를 전해 주었다.


즐거운 그 순간 왜 문득 슬픈 이야기가 겹치는 것일까. 극과 극은 맞닿아 있는 것인가 보다. 요즘 매스컴을 달구고 있는 아동학대 기사가 생각났다. 쇠사슬에 매여 감금되었던 아이가 탈출한 기사가 떠올랐다. ‘그 아이도 엄마 아빠와 놀이터에 나와서 놀아봤을까’라고 생각하니, 엄마 아빠와 놀러 나온 아이들은 그래도 좋은 부모를 만났다고 생각되었다.


나중까지는 알 수 없으나 지금, 이 순간, 여기, 놀이터에 나와서 놀고 있는 아이들은 좋아 보였다. 지금은 행복이 뭔지 모르지만 살아갈수록 이 아름다운 추억이 그들을 행복하게 하리라 믿어졌다. 직장에서 돌아와서 피곤한 몸을 다시 일으켜서 아이들과 함께 놀이터에 나온 엄마 아빠들도 좋은 부모님들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렇다고 놀이터에 나오지 못한 부모와 아이들은 모두 불행하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또 다른 행복을 즐기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다 각자의 삶이 있으니까 말이다. 나 역시 퇴근하면 아이들 밥 챙겨주기도 바빴으니 아이들과 함께 저녁에 놀이터에 나올 여유가 없었다.

벤치에 앉아 지난날을 아쉬워하며 물끄러미 놀이터를 바라보자니 어른 아이 어우러져 놀며 배우는 곳이 놀이터였다.


분명 하루 일과에 몸과 마음이 피곤하고 지쳤을 텐데 놀이터는 하루 종일 갇혀 지낸 답답함을 풀어 주고 생기를 충전시켜 주는 곳이었다. 놀이 기구 하나라도 더 타게 해 주려는 엄마 아빠도, 엄마 아빠 손에 이끌려 놀이기구를 타는 아이들도 노는 것이 노는 것이 아니다. 마음도 크고 몸도 크는 순간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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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주인을 반기는 놀이기구들도 쉴 사이 없이 바쁘게 움직인다. 번호표 뽑지 않아도 차례를 지켜 놀이기구들을 타는 아이들이 기특하다. 오늘따라 바람까지 불어주니 아이들도 어른도 함께 나온 강아지들까지 더 신바람이 나나 보다.


어른, 아이, 강아지 할 것 없이 불러낸 놀이터의 위력이 무엇인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느껴졌다. 역시 삶이란 밥 먹고 일만 한다고 사는 것이 아니었다. 놀이터를 바라보고 있자니 꼭 아이들만 위한 곳이 아니었다. 아이들의 손을 잡아주고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소리를 들으며 엄마 아빠도 직장생활의 스트레스를 잊고 힘을 얻는 곳이었다. 마스크를 했지만 신명 나는 목소리, 밝은 웃음소리가 어두워지고 있는 아파트 단지를 울리고 있었다.


놀이터에는 밀어주고 붙들어주는 사랑이 있었다.

그네를 타는 대여섯 살 어린아이 옆에 젊은 엄마, 아빠가 함께 있었다. 엄마 아빠가 곁에서 붙들어주니 무서움도 불안도 잠시였다. 어느새 그저 좋아하고 재미있어한다.


뒤에도 엄마 아빠가 있었다. 그네가 뒤로 올 때마다 조금씩 밀어주었다. 눈앞에는 보이지 않지만 뒤에서 밀어주는 엄마 아빠가 있으니 제자리에서 흔들거리기만 하던 그네가 점점 올라가기 시작한다. 조금씩 높이 올라갈수록 탄성을 지르며 뿌듯해한다. 뒤에서 밀어주던 손을 놓아도 혼자서 잘도 올라간다. 하늘까지 올라갔다 온 듯 자신감이 넘치는 아이, 대견해하는 엄마 아빠 모두 신명이 난다.


놀이터 주변에서 자전거를 배우는 남자아이도 마찬가지였다. 뒤에서 붙들어 주는 아빠가 있기에 비틀거리면서도 아주 넘어지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제대로 잘 잡아달라고 불평하는 아이와 걱정 말고 앞으로 가기나 잘하라는 아빠가 벌이는 입 실랑이까지도 재미있고 편안해 보였다. 학대받은 아동에겐 별나라 이야기일 것이다. 야단은 맞지만 엄마 아빠와 함께 저녁에 놀이터에 나와서 놀고 있는 아이들은 얼마나 다행인가 싶었다.

사랑하니까 마음 편하게 부담 없이 함께 놀 수 있는 것이다.


뒤에서 그네를 밀어주고 자전거를 붙들어 주는 부모가 있다는 것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든든한 힘이 되고 자존감이 될까! 보는 사람 마음도 이렇게 흐뭇한데 직접 그네를 타는 아이는 오죽 신이 날까


해 질 녘 엄마 아빠랑 놀이터에서 놀았던 기억은 평생 아이들에게 추억이 될 것이다. 행복에너지가 될 것이다. 그 추억을 그리워하며 자신도 또 그네를 밀어주고 자전거를 잡아주는 엄마 아빠가 되지 않을까!


놀이터에서 한바탕 놀고 나서 엄마, 아빠, 강아지까지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가족의 뒷모습은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었다. 사진이라도 찍어주고 싶었지만 사전에 허락을 받지 않아서 참았다. 곧 잊어버린다 해도 언젠가는 문득 지금 이 순간을 떠올리며 그들의 시가 되고 그림이 될 것이다.


그냥 벤치에 앉아서 구경만 했는데 아직도 놀이터의 긴 여운이 가슴에 머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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