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정리하고 나를 만나는 시간이다. 하루 일과를 모두 마치고 드디어 오롯이 나만을 마주하는 시간이다. 새벽기도로 하나님을 만나면서 시작된 하루, 저녁 설거지를 하고 나서 저녁 기도로 하루 일과를 마무리한다. 분주한 하루 일과를 마치면 하루에 대한 보상처럼 받는 시간이다. 하루 세끼를 비롯한 먹는 일도 끝났고, 처리해야 할 일도 더 이상 진행할 수 없는 시간이고, 누구를 만나러 외출할 일도 없는 밤이다. 싫든 좋든 피할 수 없는 삶의 하루 숙제를 끝냈기에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은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홀가분해지는 시간이다.
일단 책상 앞에 앉는다.
나뭇결이 드러난 작은 원목 책상 앞에 앉으면 아늑하고 마음이 가다듬어진다. 의자를 당겨 앉아 스탠드를 켜면서 나를 만나는 시간도 ‘ON-Air’가 된다. 따로 서재는 없지만 안방 구석에 놓인 작은 원목 책상이 나를 만나는 베이스캠프이다. 나는 거기 앉아서 숨을 고르고, 음악을 듣고 성경을 읽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등 내 삶의 에너지를 공급받는다. 퇴직을 하면서 나를 돌아보고 삶을 정리하는 곳으로 더 가까워졌다.
노트북을 열고 즐겨찾기에서 먼저 클래식 음악 사이트를 연다.
클래식 음악을 찾는 것은 내가 고상해서가 아니다. 스트레스를 확 풀어주는 트롯도 좋고, 찬송과 함께 경건해지는 것도 좋고, 심지어 동심으로 돌아가 보는 마음의 고향, 동요도 좋다. 하지만 이 시간은 하루를 살면서 묻은 마음의 때를 클래식의 흐름에 먼저 헹궈내고 싶어 한다. 한 방에 스트레스를 확 날리기엔 마음이 너무 거칠고 굳었다.
잔잔한 클래식 선율이 마음을 섬세하게 어루만져 주며 씻어준다. 시끄럽던 마음이 고요해지고 쫓기던 마음이 여유로워진다. 널뛰기하던 감정도 끊어질 듯 이어지는 절제의 선율로 평정을 찾게 된다. 때로는 세미클래식의 감미로움에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보기도 한다. 아무 대가도 받지 않고 나와 함께하며 마음에 스며드는 음악의 선율은 어쩌면 삶에 필수품이기에 무료 인지도 모른다.
음악의 흐름에 마음을 씻고 나서야 글이 눈에 들어온다.
온라인 시대에 살면서도 나는 아직 종이에 써진 글이나 책의 매력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꼰대의 오랜 습관인지도 모르겠다. 마음 깊이 흡수되는 종이 책의 다정함에 중독되었는지도 모른다. 아침에 대충 읽으면서 오려둔 신문의 칼럼도 다시 음미하며 읽어 보고, 한 번 읽고 버리기 아까워 스크랩을 해두기도 한다.
자기중심적으로 마구 쏟아놓아 자기도 기억 못 하는 말들보다, 시간을 두고 고심하며 거르고 다듬은 글들이기에 나는 글 읽는 것을 좋아한다. 즐겁다. 공감하며 밑줄도 긋고 메모도 한다. 정말 속 깊은 친구를 만난 듯 적잖은 위로와 힘을 얻는다.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칠 수 없듯이 브런치에 들리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브런치는 내가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곳이다. 얼굴은 모르지만 글을 통해서 내 마음이 이끌린 사람들이 많다. 세상살이의 구석구석, 삶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아낌없이 보여주는 곳이 브런치이다. 세대와 장르를 아우르는 브런치 글들을 읽으며 시공을 초월해서 공감으로 무릎을 칠 때가 많다. 정말 세상은 넓고 할 일은 참 많다는 생각이 든다.
거창한 이벤트 없이도 하루하루를 살아낸다는 것이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 짧은 하루에도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 흔들리고 가라앉고 길을 잃고 헤매기도 했던 부족한 자신이었다. 처음부터 아주 내 것은 아니지만 음악의 선율과 진심과 열정이 깃든 글들로 그럴싸하게 덧입는 시간이다. 그 음악이 내 속까지 흐르고 그 글이 내 삶에 녹아주길 바라는 시간이다.
다시 삶의 이정표가 보이기 시작한다.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일기를 쓴다. 혼자 간직하는 일기지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과 여유를 얻는다. 다시, 걸어가야 할 길이 보인다.
내가 좋아하는 시간이다.
하루를 정리하고 나를 돌아보며 나를 만나는 시간이다. 매일매일 이 시간이 있기에, 이 시간에 얻은 힘을 잠자면서 충전시켜 다시 하루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하루를 마감하며 나를 만나는 이 시간은 내 삶이 끝나는 날까지 나를 붙들어주고 내 삶을 이어가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