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6학년 때, 나는 늘 교실을 지키는 아이였다. 아니 엄밀히 말해 교실에 남아 있는 아이였다. 일어서지도 걷지도 못해 두 달 가까이 누워서 생활을 한 병력 때문이었다. 어린 마음에 평생 걷지 못하는 장애인이 될까 봐 두려웠다. 다행히 걸을 수 있게 되었지만 늘 다리에 무리가 가지 않아야 한다는 불안과 염려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체육시간마다 교실에 남아서 선생님의 잔심부름을 하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했다. 때때로 혼자 교실에서 창문으로 운동장에서 달리거나 게임을 하는 아이들을 구경하며 부러워하기도 했다. 교실에 TV가 없던 시절이라 학교 모든 행사는 운동장에서 했기에 거의 모든 행사 때도 교실 지킴이를 할 때가 많았다.
6학년 가을 대운동회, 그날도 예외가 아니었다.
사정상 매스게임 무용 연습도 하지 않았고 달리기 조편성에서도 빠져 있어서 사실 운동회 참가할 의욕이 없었지만 결석을 하고 싶지 않았다. 개근상을 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혼자서 교실에 남아 있었다.
학교는 온통 축제 분위기였다. 평소와 달리 북적거리는 분위기에 가만히 앉아서 독서만 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눈과 귀가 운동장으로 자꾸 쏠렸다. 4층 교실에서 창문으로 보이는 운동장에는 푸른 하늘에 화려한 만국기가 펄럭이고 아이들과 구경 온 학부모들로 인산인해였다. 운동장에서 펼쳐지는 각종 경기를 구경하느라 나는 매미처럼 창문에 붙어서 떨어질 줄 몰랐다.
그러다 언제부턴가 내 눈길이 운동장 트랙을 달리는 아이들의 모습을 계속 좇아가고 있었다. 달리고 있는 아이들이 운동장의 주인공처럼 보였다.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출발 신호 총소리와 함께 경쾌한 음악 속에 눈에 불을 켜고 온 힘을 다해 달리는 모습이 편안하게 쉬고만 있는 나를 흔들고 있었다. 꼴찌를 하더라도 달리고 싶다는 마음이 출렁대기 시작했다. 창문에서 떨어져 나왔다.
복도로 나와 보았다.
전교생이 모두 운동장에 나가고 없는 텅 빈 복도가 고속도로처럼 길게 뻗어 있었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으니 달려볼 용기가 났다. 복도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달려 보았다. 마룻바닥이라 쿵쿵거렸지만 나도 모르게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있는 힘을 다해 달려보았다. 놀라웠다. 주저앉지도 않고, 넘어지지도 않고 나도 달릴 수가 있었다. 아무도 박수를 쳐주는 사람이 없었지만 잘 달렸다는 뿌듯함에 가슴이 벅차오르고 자신감이 일기 시작했다.
그 자신감에 등 떠밀리듯 발걸음이 운동장으로 향했다.
때마침 6학년 장애물 경기가 진행되고 있었다. 1반부터 한 줄에 여덟 명씩 조를 이루어 뛰고 있는 중이었다. 한 줄 한 줄이 순식간에 뛰어나가고 있었다. 금방 4 반인 우리 반 순서가 되었다. 나는 소속된 조가 없었다. 그냥 옆에 서 있었다. 친구들 중에 더러는 구경 오신 부모님한테 갔는지, 미리 짜 놓은 조별 구성원이 차질을 빚는 것 같았다.
여덟 명씩 인원수를 세며 조를 확인해가던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다. 구구절절 속을 털어놓을 여유도 없는 짧은 순간, 선생님은 나의 간절한 눈빛을 읽으셨을까. 옆에 서 있는 나를 끌어당기며
“신옥이도 한 번 달려볼 거야? 꼴찌해도 괜찮아, 다리 아프면 그냥 걸어가도 돼”라며 한 팀 인원을 맞추었다.
서로 앞뒤 사정을 헤아릴 틈도 없었다. ‘탕’하는 신호 총소리에 친구들과 나는 총알처럼 그냥 튀어나갔다.
정작 본무대인 운동장에 나오니 가슴이 두근거리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혼자서 복도에서 끝까지 넘어지지 않고 달릴 수 있었던 가녀린 자신감이라도 붙들었다.
6학년이라고 그냥 달리는 것이 아니라 장애물 경기였다.
달리다 보니 점프를 해야 하는 허들이 앞을 가로막았다. 친구들은 펄쩍펄쩍 경주마처럼 잘도 넘었다. 나도 얼떨결에 점프도 없이 그냥 다리를 들어서 넘었다.
조금 더 달리니 다음 장애물은 그물망 아래로 기어가기였다.
매트 위에 낮게 드리워진 그물 아래를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배밀이를 하며 기어 나왔다.
마지막 장애물은 편지봉투 속에 기록된 물건이나 사람을 찾아서 함께 달리는 것이었다. 내 앞에 놓인 편지 봉투를 열어보니 ‘핸드볼’이라고 써져 있었다. 모두 자기 봉투에 써진 물건이나 사람을 찾느라 다급하게 외쳐대며 흩어졌다. 나도 ‘핸드볼, 핸드볼’하며 외치며 뛰어다녔다. 그때, 준비물을 모아놓고 있는 곳에서 어떤 선생님이 나에게 핸드볼을 던져주었다. 내가 공을 가지고 결승선을 향해 뛰면서 보니 주위에 친구들이 보이지 않았다.
‘내가 꼴찌구나’ 짐작하면서도 선생님 말씀이 기억나서 부끄럽지 않았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나도 뛰고 있다는 뿌듯함에 결승선을 향해 온 힘을 다해 뛰어 들어갔다. 그 순간, 누군가 내 손을 잡으며 ‘3등!’이라고 외쳤다.
그랬다. 내가 정말 8명 중에 3등을 한 것이었다. 제시된 물건이나 사람을 찾아오느라 앞에 친구들이 없었던 것이다.
꿈만 같았다. 괜히 눈물이 핑 돌았다. 올림픽 금메달을 딴 것도 아닌데…….
(자세히 보면 모든 꽃 한 송이 한 송이가 다 아름다웠습니다. 산책하며 만난 꽃들~)
운동장 한 바퀴를 돈 몇 초가 내게는 엄청 긴 여정이었다.
혼자서 교실 창문에 붙어서 얼마나 부러워했던가. 복도에서 혼자 달려보며 남몰래 얻은 자신감이 아닌가. 걸을 수 있는 것만으로 감지덕지해서 포기하고 있었던 달리기였다. 달릴 줄을 몰라서가 아니라 꼴찌가 두려워서 달리지 못했던 것은 아닌지…….
마음을 일으키고 직접 달리는 진정한 힘은 결국 자신의 몫이었다.
상품으로 받은 공책 한 권과 비교할 수 없는, 진정한 자신감을 상으로 받았다. 그날 이후 나는 더 이상 교실에 남아있는 아이가 아니었다.
돌아보니, 그때 장애물 경기는 삶의 모형이었고 예행연습이었다.
삶이란 힘에 넘치도록 점프를 해야 할 때도 있었고, 힘들어서 기어가듯 할 때도 있었다. 내 의지와 상관없는 선택지를 받을 때도 있었다.
오랜 세월이 지나고서야 장애물 경기의 깊은 맛을 깨달을 수 있었다.
된장처럼 오랫동안 발효된 장애물 경기의 맛은 '깊고 은근'했다. 어릴 때는 미처 다 몰랐다. 나이 들수록, 달콤하지는 않지만 장애물 경기의 깊고 은근한 맛이 삶의 입맛을 돋우어 주곤 했다.
달리기는커녕 주저앉고 싶고, 포기하고 싶을 때, 마음의 항아리에서 오랫동안 발효된 장애물 경기의 의미를 되새겨보곤 했다. 수 십 년 발효된 된장을 찍어먹어 보듯, 문득문득 그때 얻은 빛바랜 자신감을 꺼내보며 힘을 얻을 줄이야!
발효된 장애물 경기의 ‘깊고 은근한 맛’에 군침이 돌아 오늘 하루를 달릴 힘을 얻는다.
장애물이 가로막고 있다 해도, 잘 달리지 못해도 그냥 달리다 보면 누구나 결국은 결승선에 도달하리라 믿는다.
(제부가 제주도 여행하면서 찍어서 보내준 사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