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 맞으면서도 자란다

~ 비에 젖고 바람에 흔들리면서 자라는 나무처럼 ~

by 강신옥

장맛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일요일이어서 다행이었다.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 날, 외출해야 하는 식구가 없이 온 가족이 집에 있다는 것에 마음이 편하고 감사했다.

잠시,하던 일을 멈추고 열린 창문으로 비오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니 세찬 빗소리에 지나간 기억이 돋아났다.


직장 다니는 엄마들은 다 마찬가지일 것이다.

예보에도 없던 비가 내리는 날이면 마음은 안절부절했다. 그럴 때마다 갑자기 내린 비에 우산을 가지고 아이들을 데리러 달려온 엄마 아빠, 아니 할머니 할아버지라도 부러움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현관에서 아이들이 나오길 기다리는 웅성거림은 소음이 아니라 정겨움이었다. 꾸미지 않은 옷차림에 민낯으로 달려온 모습도 더 떳떳해 보였다. 갑자기 비가 와도 누군가 자기를 위해 우산을 가져올 사람이 있는 아이들은 비가 와도 믿는 구석이 있었다. 어깨가 으쓱해지고 마음 든든해하는 모습이었다.


우리 아이들처럼 아무도 데리러 올 사람이 없는 아이들은 그저 비가 그치길 바라는 눈길로 창밖을 자꾸 주시할 뿐이었다. 비가 그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그 눈빛에 내 마음도 실어줄 뿐이었다.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 나는 우리 아이든 우리 반 아이든 학교 사물함에 비상용 우산을 갖다 두라고 누누이 일러주었다. 잔소리 덕분에 갑자기 온 비에 사물함 속의 비상용 우산을 아주 유용하게 쓰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다시 가져다 놓는 것을 깜박하는 것이 문제였다. 비가 그치면 우산은 대수롭지 않기 때문이었다.

1596758466465.jpg
20200804_094642.jpg

갑자기 비가 내리는 날이면 우산 없이 집에 올 우리 아이들이 눈에 밟혔다.

우리 아이들 생각해서, 우산 없는 아이들과 집이 같은 방향인 우산 있는 아이들을 함께 쓰고 가라고 짝을 지어주곤 했다.


대책 없이 비가 마냥 주룩주룩 내리는 날은 아이들이 돌아간 교실에서 창밖을 내다보며 마음이 비에 젖곤 했다. 내 마음과 달리 아이들은 우산이 없었는 날도 괜찮았다고 했다. 신발주머니를 쓰고 왔다고도 하고, 친구가 씌워줘서 괜찮았다고 했다.


어느 해 7월이었다. 근무하던 학교 개교기념일이었다. 학교가 달라서 아이들은 모두 학교에 갔으니 모처럼 생긴 보너스 같은 공휴일이었다. 같은 학년 교사 모임이 예정되어 있었다.


모두들 홀가분한 마음으로 미술 전시회 관람을 하고 점심을 먹으려고 식당으로 갔다. 날씨가 더워서 냉면으로 메뉴가 쉽게 정해졌다. 비냉이냐 물냉이냐를 정하고 냉면을 기다리며 관람한 이야기로 한참 동안 왁자지껄 떠들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

“어머, 비 오나 봐.”라고 외쳤다. 창밖으로 눈을 돌리니 우산을 쓰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분명 비 예보도 없었는데 난데없이 비라니…….

긴장을 풀고 넋 놓고 앉아 있었는데 갑자기 신경이 곤두섰다. 냉면이고 그림이고 머릿속이 하얗게 되고 말았다. 아이들에게 우산을 갖다 줘야겠다는 생각만 뾰족하게 가슴을 찌르는 것이었다. 옆에 선생님들이 소나기이니 금방 지나갈 수도 있다고 해도 아무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냉면이 넘어가지 않을 것 같았다.


할 수 없었다. 뒤에서 뭐라고들 만류를 하는데도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서둘러 식당을 나왔다. 우산을 가져오지 않아서 가까운 편의점에서 우산을 두 개 샀다. 행여 아이보다 늦어서 길이 어긋날까 봐 택시를 탔다. 그치지 않고 계속 내리는 비가 밉지도 않았다. 그래도 우산 한 번이라도 갖다 줄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4학년 딸아이 교실을 찾아갔다. ‘기대도 하지 않고 있을 것이니 얼마나 좋아할까’라고 생각하니 복도에서 기다리는데 가슴이 두근거렸다.


5교시를 마치는 종이 울렸다. 쉬는 시간이었다. 복도로 나오던 딸이 나를 보자 깜짝 놀랐다. 내가 우산을 들어 보이자 딸이 어이없어하면서 말했다. 언제 비가 올지 모르기 때문에 자기는 아예 가방에 항상 작은 접이식 우산을 가지고 다닌다는 것이었다. 비 예보가 없는 날도 무조건 가지고 다닌다는 것이었다.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그것도 모르고 한 걸음에 달려왔다니 자신이 한심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속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올라왔다.

딸은 그동안 비를 맞고 오는 날, 말은 괜찮다고 했는데 괜찮은 것이 아니었다. 갑자기 비가 와도 우산을 가져올 사람이 없다는 형편을 이해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불편을 겪으면서 나름대로 비 오는 날을 대비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거듭되는 반전에 점심을 굶었는데도 배고픈 줄을 몰랐다. 집에 돌아와서 딸이 좋아하는 떡볶이를 해놓고 기다렸다.

집에 돌아온 딸은 우산을 현관에 놓으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친구랑 함께 우산을 쓰면 친구가 말은 하지 않았지만 두 사람 다 비를 맞아서 미안했다고, 그냥 아예 가지고 다니는 것이 편했다고 했다. 정말 아이들은 키우는 것이 아니라 자라 가는 것이었다.


그날 이후 갑자기 비가 와도 우산 걱정은 하지 않지만, 늘 우산을 가지고 다니는 딸에게 미안했다. 딸은 서른이 넘은 지금도 일기예보와 관계없이 하늘이 흐리면 우산을 챙겨서 외출한다. 그런 딸의 뒷모습을 보면서 늘 가슴 한편이 아리다.


지나고 보니, 비를 맞으면서도 아이들은 자라고 있었다. 비에 젖고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자라는 나무처럼…….

20200804_082647.jpg

( 우산을 쓰고 걷다가 만났다. 장맛비를 맞고 있는 작은 사과 나무~~ )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장애물 경기의 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