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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신옥 May 05. 2021

그냥 문득 생각나서 해봤어

~ 그냥 궁금해도 연락하는 천사 ~

 5월 5일 어린이 날이다. 왠지 마음이 맑아지는 날이다. 

연둣빛 새순을 닮은 어린이날을 좋아하는 마음으로 산책길에 나섰다. 바람에 일렁이는 이파리들이 삶에 지친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듯했다. 숲에 들어서면서 잠시 마스크를 벗고 심호흡부터 했다. 마음 항아리 깊숙이까지 맑은 바람으로 마음이 헹구어지는 듯 후련했다.            

 

 화사한 벚꽃도, 우아한 목련도 화무십일홍이었다. 져버린 꽃을 아쉬워하지 않고 다시 푸른 세상을 꿈꾸며 여전히 진득하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무의 멋에 심취되어 걷고 있을 때였다. 주머니 속 핸드폰이 울렸다. 오래된 친구 이름이 떴다. 가족끼리 나들이 나왔다가 내가 사는 동네를 지나가며 문득 생각이 나서 ‘그냥 한 번’ 해본 것이라 했다.


“그냥 문득 생각나서 해봤어.”라는 짧은 한 마디가 그냥 스쳐 지나가지 않고 이렇게 오래도록 가슴에 머물러 있다. 대단한 말도 아닌 ‘별일 없이 잘 지내냐?’라고 늘 듣는 말로 서로 물어봤을 뿐인데 반가움이 아직도 식지 않고 있다. 서로 안부를 주고받는 동안 새들도 지저귐으로 추임새를 넣어주고 5월의 연둣빛 이파리들도 두런두런 우리를 흉내 내고 있었다. 숲 속은 한순간 밝은 햇살과 어우러진 웃음이 퍼져 나갔다.      

통화가 끝난 후에도 초록들은 바람에 춤을 추고 친구의 정겨운 목소리는 가슴을 맴돌며 산책길을 동행했다.           

 


 누군가에게 ‘문득 생각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 새삼 사는 기쁨을 주었다. 가슴이 뭉클했다. 일상생활 중에 순간순간 문득 떠올랐다 사라지는 사람, 일, 말들이 허다하다. 순간적이기에 그냥 가라앉혀 버리기 일쑤이다. 흘러가버리면 그만이다.           

 


생각 너머에 있는 누군가에게 곧바로 마음을 그대로 전하기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다시 이것저것 재어보고 망설이다 괜한 연락이 될까 봐 생각을 덮고 그리움을 묻어버릴 때가 많다. 시공을 초월해서 마음에 떠오르는 대로 연락을 할 수 있는 허물없는 사이가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어떤 의무감도 예의상 하는 인사도 아닌 ‘문득’ 떠오른 생각을 따라서 갑자기 오는 연락이라 가슴이 더 두근거린다. 나이도 체면도 잊어버리고 호들갑을 떨며 반가워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어김없이 전달되는 광고나 동네 마트 할인행사 안내가 나를 기쁘게 할 수 없는 것은 내가 아닌 나의 연락처 번호로, 자동적으로, 단체로 날아오기에 무감각할 뿐이다. 아니 때로는 시큰둥하게 무시하기까지 한다.     



‘그냥 해봤어’라고 솔직히 말해 줘서 더 고마웠다. 

무슨 일 때문이 아니라 그냥 생각이 나서 했다는 이유가 더 진한 그리움이 묻어나서 좋았다. 용건 없이 그냥 연락한다는 것이 실없는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기에 아주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면 쉽게 말할 수 없는 이유라고 생각되었다. 어떤 일이 아니라 오로지 내가 그립고 궁금한 안부가 가장 중요한 용건이라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일상 중에 문득문득 떠오르는 사람도 있고 문득문득 떠오르는 말도 있다. 

30초간 한 말이 30년을 간다는 말이 있듯이 장황한 설교보다 더 오래 가슴에 남는 말은 핵심이 들어있는 간단한 말이었다.            

 


 때때로 자존감이 떨어지고 의기소침해질 때마다 30여 년 전 내가 첫 발령받은 학교를 방문해서 “제가 보증하는 제자입니다.”라고 나를 소개해 주었던 고1 담임 선생님의 음성이 가슴을 울리곤 한다. 모든 사람이 아니라 단 한 사람이 한 그 한 마디가 평생을 두고 문득문득 내 가슴을 울컥하게 할 줄은 몰랐다. 


 정말 내가 그 정도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그만큼 제자를 아끼고 위해주려는 선생님의 진심이 세상을 살아갈수록 희귀하기까지 고마운 일이었다. 이미 고인이 되신지도 오래지만 그 한 마디는 내가 흔들릴 때마다 문득 떠오르는 울림이 되었다. 그때마다 문득 그리워지는 선생님을 떠올리며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힘을 내서, 하던 일을 계속 이어갈 때가 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문득문득 떠오르는 사람일 수도 있고 문득문득 떠오르는 말을 남겼을 수도 있다. 이 순간도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문득 그리움의 대상으로 떠오를 수도 있고,  반대로, 무심코 툭툭 찬 돌이 우물 속 개구리들에겐 목숨의 위협이 되듯 상처를 준 사람으로 떠오를 수도 있다. 


 오늘 친구가 해준 전화가 지금도 문득 내 가슴을 두드리고 있다. 

문득 좋은 기억으로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면 용기를 내어 ‘문득 생각나서 그냥 해봤어’라고 연락해 보는 것이 얼마나 가슴 설레는 좋은 일이냐고 말이다.           



 문득 떠오른다고 누구나 언제나 다 연락을 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친구가 참으로 돋보였다. 나의 안부를 궁금해하는 친구가 있다는 것에 세상이 새로 봄기운으로 가득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떤 것도 아닌 짧은 통화였지만 가슴속 여운이 길었다.     

 ‘문득’이라는 짧은 순간이기에 더 밀도 높은 시간이었고, 순도 높은 진정성이었기에 더 소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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