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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신옥 May 24. 2021

손편지 릴레이

~  손편지는 진심을 싣고  ~


글이 살아 움직이는 느낌이다. 

층간소음을 해결한 손편지가 바통처럼 이어지고 있다. 

지난 4월 23일 브런치에 올린 글 “시끄럽지 않은 소음”을 읽고, 

알고 지내던 달선생님(필명)이 연락을 주셨다. 

수필집 『삶을 사랑하고 배움을 즐기며』의 저자이신 달선생님이 삶 속에서 손편지를 바통 터치해 주셨다. 


    


 메일로 보내주신 달(moon) 선생님의 글에서 추린 글이다.


어버이날을 맞아 가족들이 모두 모였다. 

특히 장인, 장모님이 오셔서 점심 식사를 함께 하시고 뒤풀이가 이어졌다. 일곱 살 외손자가 주인공이 되어 재롱 잔치가 벌어졌다. 주로 신나는 음악을 틀어 막춤 추기였고 이어 한창 열을 내며 배우고 있는 태권도 시범이 있었다.

한 대목이 끝날 때마다 가족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우레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어버이날 잔치도 막을 내리고, 날이 어두워지기 전, 장인 장모님을 모셔다 드렸다.

 그런데 신나게 박수를 받으며 한번 달아 오른 외손자의 열기는 좀체 식을 줄을 몰랐다. 한창 자라나는 아이들은 어디서 그렇게 자꾸만 힘이 솟아나는지 저녁 식사 후에도 손자의 재롱은 계속되었다. 이제 그만 해라고 말려도 온 가족이 저를 주목하며 ‘잘한다! 잘한다!’ 하니 뛰고, 흔들며 지치지도 않았다.           

 


 이렇게 재롱잔치 2부 순서가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인터폰이 울렸다. 

‘지금 전화 올 사람이 없는데 어디서 온 전화일까?’ 아내가 전화를 받고 아연해했다. 

경비실로부터 연락을 받은 것이다. 바로 아래층에서 밤늦은 시간에 소음 민원이 들어왔다고 전해주었다. 깜짝 놀랐다. 

그러고 보니 정말 이렇게 늦은 시간인 줄 잊고 있었다.


 어버이날 효도하는 재롱 잔치로 시작했지만 이웃에게 민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아래층에서 얼마나 참고 견디다 못해 전화를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곧바로 자리를 정리하고 신이 난 손자에게도 잘 타일러 이르고 그만 잠자리에 들게 했다.



 다음 날,  민폐를 끼친 이웃에게 사과를 드리긴 드려야 할 텐데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하다 어른인 내가 나서기보다 어린 손자가 직접 하면 손자에게는 남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상대방 이웃에게는 어린아이, 그 주인공의 얼굴을 보면 일어났던 화도 잘 풀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는 할머니 집에 놀러 온 외손자 태희입니다.

 어젯밤에 늦게까지 뛰어서 많이 미안하고 죄송합니다.

 앞으로 그러지 않도록 조심하겠습니다.

                                             외손자 태희 올림.”


외손자가 쓴 쪽지 편지글과 서로 별 부담되지 않게 참외랑, 과일 몇 개를 넣어 일곱 살짜리 손자를 앞세우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아래층 현관문에는,

‘초인종을 누르지 마시오. 강아지가 짖습니다.’ 하는 안내 쪽지가 있어 할 수 없이 현관문 손잡이에 살짝 걸어 놓고 올라왔다.


 다음 날 아침, 신문을 가져오려 현관문을 열고 내다보니 역시 현관문 손잡이에 꽤 긴 내용의 손 편지와 새벽에 사 오신 듯 신선한 빵을 넣은 봉지가 걸려 있었다.


“태희야! 안녕! 정말 반갑단다.

우린 000호 아줌마, 아저씨란다.

우선 과일 선물 너무 고맙게 잘 받았단다.

할머니 집에는 주말에 또 올 거니?

태희가 오는 날이면 밤늦게 뛰어도 이젠 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 것 같구나.

왜냐면 아저씨가 네가 가져온 참외를 좋아했거든.

그래도 12시 이후에는 자야 한다.

그래야 키가 크거든.

마음 예쁜 태희 덕분에 우리도 한결 마음이 따뜻해졌구나!

태희야! 고마워, ‘코로나 19’ 조심하고∼!!!”


 감동을 받은 것은 오히려 우리 부부였다.

언제 서로 편한 시간에 사과도 드릴 겸 차라도 한 잔 따듯하게 대접해 드리고 싶다.*          


층간소음을 해결한 손편지 이야기가 릴레이처럼 이어졌다. 

잘 쓰고 못쓰고를 떠나 글이 삶으로 이어지고, 삶 속에서 글이 살아 움직이고 있어서 가슴이 뭉클했다. 


 내가 받은 손편지의 감동은 층간 소음을 순하게 받는 귀를 주었다. 

이사 올 손편지의 이웃을 기다리게 했다. 


 다음 손편지의 주자는 달선생님의 일곱 살 외손자 태희였다. 

고사리 손으로 쓴 사과의 손편지는 이젠 뛰어도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상대의 마음을 넓혀 주었다. 


 그 바통을 이어받은 손편지의 주자는 답장을 쓴 아저씨 아주머니였다. 

밤 12시 이후에는 자야 키도 큰다고 센스 있는 글로 미소를 짓게 했다. 


손편지 주자의 바통은 바로 ‘진심’이었다.  

진심이 담긴 손편지가 행복바이러스가 되길 빌어본다.    


또 다음 손편지의 주자는 누가 될까! 

곧 손편지 주자가 바통터치를 할 것 같은 기대감에 가슴 설렌다.



(일곱 살 태희 손편지와 아줌마 아저씨의 답장이 만발한 장미와 닮은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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