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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신옥 May 31. 2021

내 이름은 “THANK YOU "라는 꽃

~ 산책길에서 만난 인연들 ~

올봄에는 비가 자주 내렸다.

며칠 전, 아침부터 내리던 비가 오후가 되자 비도 그치고 구름도 물러가고 있었다. 며칠 쉬었던 산책을 나섰다. 곳곳에 물웅덩이를 피해 걸으며 아파트 뒷길 산책길에 들어섰다. 해가 비치는 숲도 좋지만 비가 그친 숲길도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그늘진 녹음이지만 비에 씻겨  더 선명해진 연초록에 눈과 마음이 맑아지고 편안해졌다.      

 


 햇살이 없는 숲길이라 약간 싸늘했지만 한적한 숲은 고요하면서도 맑은 기운이 느껴졌다. 미처 마르지 못한 빗방울들이 나를 맞이했다. 넓고 둥근 나뭇잎에서 또르륵 미끄럼을 타고 내려오는 빗방울, 가는 솔잎에서도 방울방울 매달려 있던 빗방울, 어디에서 떨어지는지 알 수 없이 내 어깨를 톡톡 치며 애교를 부리는 빗방울까지, 햇살 대신 빗방울들의 정겨움이 나를 반기는 숲이었다. 빗방울이 보석 같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봄비에 흡족해진 숲은 생기를 받아 살아 움직이며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푸름은 먼저 마음의 먼지들을 씻어준다.

마음을 비우고 나면 알고 지내던 나무들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한다.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메타세콰이어는 땅만 내려다보던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게 한다. 언제 봐도 거침없는 싱그러움이 답답하고 무거웠던 삶의 짐을 내려놓고 가벼워진 마음으로 하늘을 보게 한다.      


 “ 아카시아꽃이 활짝 피었네~”라는 노랫말을 떠올려 주는 아카시나무는 꿀 향기로 코끝을 간지럽히며 아이들과의 소풍길 추억의 동영상을 그려준다.      

 

 붉은 사과 열매를 꿈꾸며 기다리는 연분홍빛 감도는 사과나무꽃 , 순백의 아기를 닮은 아기자기한 당귀나무 꽃, 멀리서 보면 나비들이 와서 앉아 있는 듯한 우아한 산딸나무……등등 세파에 시달리지 않은 나무들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은 먼지를 털어내고 상큼해진다.     



산책길 숲에는 비바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초록과 어우러진 꽃들이 있기에 숲은 삭막하지 않고 답답하지 않고 아름답고 향기롭다.


 초록과 붉은색의 향연을 펼치며 오래된 한옥의 긴 담장을 멋지게 리모델링해주고 있는 장미를 보며 줄기에 난 가시를 잊어버렸다. 칭찬의 감탄사를 연발했다. 액세서리처럼 달고 있는 빗방울이 겹겹이 둘러싸인 꽃송이를 더 빛나게 했다.      

 


어디 화려한 장미뿐이랴!

녹음 속 산책길의 편안함에 소소한 기쁨을 더해 주는 것은 바로 누가 일일이 돌보지 않아도 자생력 강한 야생화들이다.


 비가 와서 산책을 며칠 쉬는 동안 나를 목 빠지게 기다렸나 보다. 혼자서도 훌쩍 컸다. 말끔해진 얼굴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야생화들을 보며 내 마음도 더 애틋해진다.      

 


 노란 봄을 전해주던 민들레는 나를 그리워하다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렸다. 은빛 갓털로 단장을 하고 씨앗이 되어 바람을 타고 나를 찾아 날아가길 꿈꾸고 있었나 보다.


 야리야리한 줄기에 의지해서 바람에 일렁이면서도 황금빛 웃음을 잃지 않은 금계국에게 미소로 답을 했다.      

 

 작지만 꼿꼿한 꽃대를 의지해서 어디서나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잔잔한 계란꽃, 붓을 닮은 꽃봉오리로 글을 쓰면 먹빛 대신 자줏빛 글씨가 그려질 것 같은 붓꽃, 어두운 숲길에 있어 더 깔끔해 보이는 샤스타데이지, 아기처럼 앙증맞은 애기똥풀……등등 야생화들을 보며 얼굴이 밝아지고 마음도 근육도 부드러워진다.



비에 젖고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자기 자리를 지키는 야생화들의 당당함이 기특하다.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수수하고 소박한 저마다의 겸허한 아름다움이 발길을 멈추게 하고 허리를 굽혀 꽃을 어루만지게 한다.

  

                                                         (산책길에 만난 야생화들)



가늘어진 빗줄기가 바람에 날렸다.

멈추었던 비가 오려나 서둘러서 걷는데 내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것이 있었다.


야트막한 비탈에 쓰러져있는 계란꽃과 금계국이었다.      

 자주 내린 봄비에 시달렸나 보다. 뿌리가 약했던 것일까, 하필이면 비탈에서 자라느라 몸을 지탱할 수 없었나 보다. 줄기가 휘어졌지만 꺾이지 않은 것을 보니 아직 살아는 있는 것 같았다. 내 모습과 겹쳐 보이고 내 삶과 닮아 보였다.      

 


 어쩌면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꽃을 꺾는다고 오해받는 것도 불사하고 쓰러진 꽃을 일으켜 세웠다. 비가 온 뒤라 뿌리까지 뽑아져 나오니 더 애처로웠다.


 집으로 가져왔다.

베란다에서 신문을 깔고 응급 치료하듯 만져 보았다. 자꾸 쓰러졌다.

비에 무른 줄기를 잘라주고 허리를 기댈 수 있는 빈 병에 넣어 주었다.      

 


 이왕 가져왔으니 며칠이라도 살려보고 싶었다. 

햇살이 비치는 창가에 자리를 잡아 주고 매일 물을 갈아 주며 살아나길 바라는 눈길을 보내 주며 기다렸다.

 말은 못 해도 내 진심을 알아차린 것일까. 하루 이틀 지나면서 꽃은 살아나고 있었다.           

 잠이 깨어 아침에 거실로 나오면 제일 먼저 밤새 더 살아난 꽃이 눈에 들어왔다. 고개를 못 들고 아래로 쳐져 있던 꽃 몽우리도 고개를 들 정도로 힘이 생겼다. 신기했다.


 정성을 들인 것을 헛수고로 돌리지 않고 기억해주며 살아나려고 애쓰는 꽃이 고마웠다. 다시 꽃을 피우고 싶은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꽃을 바라보며 나도 위로가 되고 기쁨을 얻고 있었다.

 

살아나서 고맙고, 진심을 알아줘서 고맙고, 잔잔한 기쁨을 줘서 고마웠다. 누군가에게 받은 것이지만 감사카드를 찾아서 꽃병 앞에 세워주었다.


나는 꽃에게, 꽃은 나에게 하고 싶은 말 “THANK YOU "카드를 명패로 세워주었다.


 내가 꽃을 살려준 것이 아니라 꽃이 내게 선물을 주었다.

살아있는 순간만이라도 진심을 소통하며 사는 기쁨을 선물해 준 꽃이다.

영원히 사는 것은 없기에 꽃이 살아 있는 순간이 소중해서,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서 셔터를 눌렀다.      


오늘도 꽃멍을 하며 우리는 소리 없는 소통의 기쁨을 나누었다.

꽃처럼 곧 시들고 짧은 것이 우리 삶이기에 살아있는 이 순간이 소중하다고…….


                              살아나며 기쁨을 주고 있는 THANK YOU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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