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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신옥 Jun 30. 2021

소나기를 피하며

~돈거래를한 천사들 ~

 본격적인 여름으로 들어가고 있다.

낮에는 더워서 이제 저녁 산책으로 일정을 바꾸었다. 저녁을 일찍 먹고 아주 어두워지기 전에 나서는 저녁 산책은 선선한 바람처럼 은근한 맛이 있다.           

 


 며칠 전 산책길은 뜻밖에 받은 편지 같았다.

분명 집을 나설 때는 맑은 하늘에 햇빛까지 빛나고 있었는데 걷다 보니 갑자기 천둥소리가 들렸다. 뜻하지 않은 상황이다. 우산도 없고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왔다.           

 


 속으로 ‘어쩌나 어쩌나’하며 걸음을 재촉하다 보니 굵은 빗방울이 땅바닥에 점을 찍기 시작한다. 할 수 없었다. 일단 비를 피해 근처 아름드리 느티나무 아래로 들어갔다. 누가 갖다 놓았는지 플라스틱 간이 의자까지 놓여 있었다.



 낡고 허름한 플라스틱 의자가 내겐 VIP석이었다.      

의자에 앉아서 올려다보니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하게 드리워진 진한 초록잎 지붕이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다. 소나기를 피해 들어온 초록 그늘이 내 마음까지 초록으로 편안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비를 피해서 들어왔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하염없이 기억 속을 보고 있었다.      


 


 지금까지 걸어오면서 오늘처럼 갑자기 만난 소나기를 피할 수 있는 초록그늘이 되어 준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들이 만들어준 초록이 수채화처럼 번지며 지난 일을 그려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맞아 미처 우산을 준비하지 못한 나에게 소나기를 피할 수 있는 초록 그늘이 되어준 사람들이었지…….’라고 혼자 읊조렸다.    

 


 나는 평생 돈 빌리는 일이 없을 줄 알았다.

넉넉한 살림이어서가 아니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그냥 살아왔기 때문이다. 안사고 안 쓰고 말지, 굳이 빚을 져가면서까지 뭘 하고 싶어 하지 않고 살았다. 촌스럽게 보일 수도 있지만 할부도 빚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기에 일시불이 아니면 물건도 거의 사지 않았다. 덕분에 넉넉하지는 않아도 늘 마음은 편했다. 남보다 앞서 가지는 못해도 쫓기며 살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삶이란 소나기처럼 예기치 않을 때가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돈을 빌려야 할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었다. 결혼을 하면서 대구에서 갑자기 서울로 전근이 되었을 때였다. 대구에서 얻은 전세로 서울에 전세를 얻으려니 턱없이 부족했다. 거의 불가능이었다. 대출도 벅찼다. 그때만 해도 은행 대출은 보증인을 세워야 하고 빌리는 이자도 높았다.           



 막 첫 출산까지 임박해 있는 형편이라 여러 가지 문제가  우리를 당황하게 했다. 전전긍긍하다가 할 수 없이 서울 근교에 위치한 작은 아파트 전세를 얻게 되었다. 그때 우리에게 소나기를 피할 수 있는 초록 그늘이 되어 준 사람이 있었다. 남편의 고향 선배이면서 같은 교회를 다니고 있던 부부교사였다.


 그들도 그리 넉넉한 형편도 아니었다. 그들도 우리가 얻으려는 같은 아파트에 전세를 살면서 오르는 전세금을 위해 모아가던 돈을 선뜻 빌려 주었다. 봉급이 사십만 원도 채 안되던 시절에 몇 백만 원을 그것도 정기예금을 해약하고 우리에게 무이자로 빌려 주었다. 그러면서 돈보다 같은 아파트에 살게 되어 가까이 살게 된 것 자체를 무척 좋아했다.     

 

 인터넷이 나오기 전이라 현금으로 돈을 건네주면서 남편의 선배가 하던 말이 아직도 귀에 맴돌고 가슴에 남아있다

“서로 아는 처지인데 그냥이라도 주고 싶은 마음인데, 그러지 못해 안타깝네.”라고 하면서 우리 사이에 이자는 안 받을 테니 되는 대로 원금만 돌려 달라고 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우리 부부도 그들도 법 없이 살아온 사람들이었나 보다. 영수증이니 차용증서도 쓰지 않고 그냥 돈을 주고받았다. 내가 그렇게 살아온 것이 얼마나 바보 같은 일이었는지는 요즘에 와서야 뒤늦게 깨달았지, 그때는 그러고도 불안하지도 않았다. 그저 받은 대로 주면 된다는 단순한 논리였다.


 그들은 우리를 믿었고 우리도 그들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크게 드리워준 그늘이 우리에게는 소나기를 피하게 해 준 푸른 쉼터였다.          

 서로 음식도 나누어 먹고 육아, 직장생활, 신앙생활 등에 대해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한 번도 돈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우리 부부는 그들의 선대에 실망을 주지 않으려고  최소한의 생활비를 제외한 나머지를 무조건 열심히 모았다.           

 


 봄에 빌린 돈을 해를 넘기지 않고 갚았다.

돈을 받으면서 남편 선배는 생각보다 돈을 너무 빨리 준다고 자기 돈을 받으면서도 오히려 무척 고마워했다. 그때는 당연한 일에 고마워하는 그들이 이상할 정도였지만 이제는 세상살이가 조금 이해가 되기도 한다. 앉아서 빌려주고 서서 받는 것이 돈이기도 하니 말이다.


 

 우리를 철석같이 믿어 주며 자기 형편에는 큰돈을 아무 대가 없이 빌려준 그들에 대한 고마움이 살아갈수록 새록새록 되살아난다. 우리 부부는 지금도 그 고마움을 되새김질하곤 한다. 이제 모두 퇴직자가 되어서 애경사가 있을 때에나 가끔 만난다. 나이가 들고 주름진 얼굴이지만 그들의 얼굴이 더없이 새로워 보이곤 한다.                     

 


 잠시나마 우리에게 푸른 그늘이 되어준 그들이었다. 우리는 돈을 빌린 것이 아니라 살아갈 힘을 얻었고 믿어 주었다는 자존감을 얻은 것이었다.

그들이 드리워준 초록 안식처에서 뜻하지 않은 소나기를 피하고  한숨을 돌리고 청량한 기운을 얻어 다시 걷고 또 걸을 수 있었을 것이다.     

 


 어느새 소나기가 그쳤다.           

지나가는 소나기를 피할 수 있는 나무 그늘이 되어준 사람들을 떠올리며 걷는 길은 소풍길이었다. 시원해진 저녁 바람에 땀도 식히고 발걸음도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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