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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신옥 Jul 15. 2021

손 편지와 함께 한 세월

~ 나를 팔불출 만드는 천사 ~

 올해도 어김없이 내 생일에 손 편지를 받았다.

내용을 보기도 전에 파스텔톤의 핑크빛 편지 봉투에 곱게 물든 딸의 마음이 나에게 스며든다. 언젠가부터 날짜만 기억하지 생일을 잊어버리고 지내다가 딸이 아침 일찍 손 편지를 내미는 날이 생일이 되었다. 음력 생일 날짜는 매년 달라서 헷갈린다고  주민등록상의 날짜로 나와 남편의 생일을 챙겨 주기로 아들과 딸이 합의를 했다. 아들의 바쁜 일정을 고려해서 주말로 외식 날을 잡으니 생일이라는 날짜는 그저 명목상이고 딸이 손 편지를 주는 날이 나의 생일이 되었다. 아들은 이벤트성 외식을 담당하고 딸은 항상 선물만 주지 않고 손 편지를 써서 함께 주었다. 매년 딸의 손 편지를 받을 때마다 딸의 기억에는 없는 나의 오래된 기억이 손 편지보다 먼저 건너온다.     

 


 네 살, 다섯 살 유아시절 딸은 동화책 읽기를 너무 좋아했다. 

특별히 마음먹고 독서 교육을 시켜서 그런 것이 아니다. 책 읽기 습관이니까 다행이면서도 항상 내 가슴을 아리게 하는 죄책감이기도 했다. 딸의 독서습관은 살림하랴 직장 다니랴 엄마가 놀아 줄 여유가 없었기에 딸이 스스로 터득한 외로움을 달래는 습관이었다.      

 

 

 집안일에 바쁜 내 주위를 맴돌며 놀아주기를 기다리며 칭얼거리다가 포기해야 할 때마다  결국 혼자서 동화 테이프를 들으며 책을 보곤 했다. 딸은 혼자서 책을 보며 테이프를 듣기 시작하면 아이가 없는 것처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에 빠져들곤 했다. 문자해득을 하면서부터는 어디 멀리 가야 할 때도 장난감 대신 딸은 책부터 챙겼다. 하루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 때면 늘 “ 이제 책 좀 그만 봐.” 하고 말려야 했다.      

 


 책 읽는 것을 말리면서도 보채지 않으니 편해서 은근히 좋아하기도 했다. 이런 딸을 보고 언젠가  “ 우리 00은 나중에 커서 유명한 작가가 될 것 같다.”라고 했더니 딸이 “작가가 뭐냐?”라고 했다. 나는 별생각 없이 그저 딸이 잘 이해할 수 있는 말로 “ 응, 동화책을 쓰는 사람이야.”라고 했다.      

 

 어느 날 퇴근하고 돌아오니 딸이 나에게 선물이라면서 공책을 한 권 내밀었다. 공책을 넘겨보고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 졌다. 인어공주 동화책을 연필로 필사를 한 것이었다. 동화책을 쓰는 사람이 작가라고 했더니 동화책을 보고 쓰면 되는 것으로 이해를 했던 것이다.      

 

 연필로 꾹꾹 눌러쓴 필사 노트를 넘기면서 마치 딸이 지은 동화책을 보듯 “와, 와” 감탄사를 연발해 주니 딸은 마치 작가로 등단을 한 것처럼 의기양양했지만 혼자 보낸 긴 시간을 생각하며 소리 없이 가슴 한편이 아렸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글로 써야 작가라고 다시 설명을 해 준 후로 딸은 가끔씩 색종이에 고사리 손으로 쓴 편지를 주며 엄마는 바쁘니까 시간 날 때 읽으라고 했다. 그것이 딸이 나에게 써 준 손 편지의 시작이었다. 기특하다고 칭찬도 하지만 내 마음은 한 마디로 웃픈 날이었다.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면서부터는 매년 나의 생일, 어버이날, 결혼기념일마다 딸은 작은 선물과 함께 꼭 손 편지를 써서 주었다.

 삐뚤빼뚤한 글씨로 꼭꼭 눌러쓴 손 편지를 받을 때마다 딸의 마음과 정성이 내 마음을 채우기도 하지만 늘 가라앉아 있던 안쓰러움이 다시 차오르곤 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듯이 딸은 그 어린 시절 습관이 몸에 배이고 마음 근육이 되었나 보다. 컴퓨터가 나오고 메일이 오고 가고 스마트폰 문자가 날아다니는 지금 시대에도 여전히 때가 되면 손 편지를 써서 준다.  


 유아시절에는 빨강 노랑 형형색색 색종이를 편지지로 써서 줄 때도 있었고 초등학교 때는 예쁜 편지지에 쓴 편지랑 맛있는 과자를 선물로 주었다. 중고등 학생 때는 좋은 글을 옮겨 쓰는 나를 위해 예쁜 노트랑 주었고 더 커서부터는 좋은 책을 함께 주었다. 엄마와 수다 떠는 것을 좋아하면서도 특별한 날에는 꼭 손 편지를 건네준다.      

 

 요즈음 같이 바쁜 세상에 수정하기도 힘들고 시간도 걸리니 이제 메일이나 문자로 줘도 된다고 말해보지만 딸은 엄마한테 손 편지 쓰는 것은 늘 추억 여행이어서 재미있고 즐거워서 전혀 힘들지 않다고 한다.      

 


 가끔 서랍을 정리하거나 이삿짐을 정리하다가 딸의 손 편지를 읽어볼 때가 있다. 딸의 어린 시절, 엄마를 향한 기다림과 외로움이 배어있다. 그래도 불평 원망할 줄 모르고 감사와 축하로 승화시킬 수 있었던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늘 함께 했던 책의 힘이 아닐까 가슴을 쓸어내린다.       

 


 딸의 손 편지 한 장 한 장을 차곡차곡 모아 왔다. 

손 편지를 담은 상자를 무슨 보석함 열어보듯 가끔씩 열어본다. 몇십 년 된 편지로부터 며칠이 된 것까지 세월이 흐르고 있고  컴퓨터 자판이 아닌 손길의 온기가 남아있다.      

 

 어린 시절 딸은 손 편지로 나에게 칭찬을 받았지만, 이제 딸의 손 편지가 오히려 나를 북돋워주고 있다. 퇴직도 하고 나이도 들고 낡아지고 있는 내 삶의 허전함을 달래준다. 존재 가치를 다시 일깨워주곤 한다. 무미건조해지던 내 감정이 다시 촉촉해지고 부드러워진다.      

 


 빛바랜 편지지에서부터 금방 출력한 듯 따끈따끈한 손 편지까지, 유아시절부터 지금까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써준 딸의 손 편지가 내 삶의 소중한 보물이 되고 있다. 어쩌면 가보가 될지도 모른다. 오래오래 간직하며 두고두고 읽어볼 것 같다.      


 늘 엄마의 딸이어서 행복하다는 딸이 쓴 손 편지!

올해도 딸아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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