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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신옥 Aug 23. 2021

풍족한 상금

~ 사라지지 않은 잔고 ~

 상금이 생겼다. 

모 월간지에 응모한 글이 채택이 된 것이다. 자화자찬이 될까 봐 조심스러워서 차일피일 미루다 속에서 맴돌고 차오르는 의미를 참을 수 없어 기어코 노트북을 열었다. 글 쓰기 재능이 남보다 뛰어나서 받은 상이 아니라 내용으로 받은 것이고 이 사실도 내 삶의  한 역사이기에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내가 잘한 일이라기보다 남이 잘한 일이다. 이 상은 나에게 도움을 준 사람이 받아 마땅한 것이다. 나는 그저 있는 그대로 썼을 뿐이기에 상금을 받기 송구스러웠다.  그러기에, 상금도 글 써서 돈 벌었다고 할 정도가 아니라 그저 한여름 폭염을 잊게 하는 한 잔의 시원한 물이었다. 위로와 격려를 준 행운이었다.     

  


 응모를 할 때는 꼭 채택이 된다고 기대하지 않는다. 

그저 채택만 되어준다면 공감을 얻은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상금은 몽땅 기부해도 아깝지 않다고 장담을 했다. 


 언젠가도 그렇게 생각하고 응모한 글로 상금을 받았다.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느라 몽땅 기부를 하고 나니 상금이 금방 사라져 버려서 좀 허전했다. 내가 전혀 모르는 아프리카로 전달이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이번에는 상금을 받은 기쁨을 나누고 더 풍족하게 쓰고 싶었다.      

돈에 이름이 써진 것이 아니기에 같은 돈이지만 상금으로 쓰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기 위해서 입금 문자를 받고 나서 돈을 쓰기 시작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상금만큼 의미 있게 써보고 싶었다.     



 먼저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싶었다.(어디까지나 저 개인 신앙입니다.)  

내게 글을 쓸 수 있는 건강과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감사헌금을 드렸다. 사람은 받고도 잊어버리지만 하나님은 나의 지난날을 기억해 주셔서 원고가 채택이 된 것이라 믿어지는 내용이었기에 더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으로 친정엄마한테 작은 것이라도 사주고 싶었다. 94세 엄마가 날씨도 덥고 입맛도 없어서 물김치가 제일이라고 해서 나는 구경도 못한 유명 맛집 물김치 택배를 보냈다. 

 친정엄마는 지난날 내가 친정을 위해 한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그 물김치를 친정엄마가 못 먹고 가까이에서 엄마를 돌보느라 늘 애쓰는 동생한테로 상이 갔다. 고생하는 동생이 그 물김치에 밥을 먹고 더위에 지친 몸이 사는 것 같았다고 하니 참 다행이고 감사했다.          

 


 아무래도 장본인은 월간지 잡지사였다. 

알지도 못하는 나에게 행운을 준 잡지사가 고마웠다. 나에게 삶에 기쁨을 주고 힘을 준 잡지사에 보답을 하고 싶었다.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그곳에서 발행하는 책을 두 권 골랐다. 물론 매상을 올려주기 위해 억지로 산 것은 아니었다. 나에게 필요한 책이기도 했다. 서로에게 부메랑이 되어 날아가고 날아온 것이다. 책 두 권을 읽으며 책 속의 글귀들이 다시 내 가슴에 머물며 내 삶에 다시 상을 주는 것 같았다.     

 


 꼭 챙겨야 할 사람이 또 있었다. 

우리 딸이었다. 응모했는지도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딸도 함께 응모를 했던 것이다. 딸은 문예창작을 전공해서 나보다 훨씬 글을 잘 쓴다. 다만 나보다 삶의 연륜이 짧아서 발효가 덜 된 탓에 탈락을 한 것 같다.           

 

 딸보다 잘 쓰는 것이 아니기에 딸에게 미안했다. 딸은 물론 받지 않으려 했지만 나에게 양보해준 양보상으로 주고 싶은 엄마 마음이라고 우기면서 거금을 주듯 억지로 금일봉을 주었다. 엄마가 경쟁률만 높였다고 해서 우리는 서로 눈물을 찍어내며 웃었다. 


 딸은 하나님이 고생한 엄마에게 주는 상이라며 나를 격려해 주었다. 딸의 마음이 참 예쁘고 말이 고마웠다.     



 그러고도 상금이 남았다. 

아파트 단지 내에 생긴 무인 판매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여덟 개 샀다. 주말 저녁에 후식으로 가족들이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온종일 시달렸던 폭염을 녹여버린 달콤하고 시원한 아이스크림이었다.     

 


 돈으로 셀 수 없는 감사와 기쁨을 나누어 준 상금이었다. 

얼마나 글을 쓰는 재능이 대단해서 받은 자랑스러운 상금이 아니라, 위로와 힘을 준 감사의 상금이었다.           

 


 살다 보면 누구나 각자의 삶을 열심히 살아왔다고 이런저런 방법으로 주는 ‘상’이라 여겨졌다. 시공을 초월해서 누군가가 주는 위로였다. 


 통장 잔고에서는 사라졌지만 내 마음속엔 아직도 남아있는 감사의 잔고, 부족함 없는 풍족한 십만 원이었다. 


(산책길에서 만났다. 더위 속에서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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