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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신옥 Apr 23. 2021

시끄럽지 않은 소음

~  귀를 순하게 열어준 천사 ~

 ‘훅’하고 금방 끝나버릴 봄이 아까워 오후에 산책을 하고 돌아왔다. 

엘리베이터가 열리자 우리 집 대문에 붙어있는 메모지가 눈에 띄었다. 

‘외출한 사이에 누가 다녀갔는가?’ 궁금해하면서 메모지를 뜯어보았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000호로 이사 오게 된 예비 입주민입니다. 이웃으로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이사를 앞두고 부득이 내부 리모델링 공사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하여 댁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 시기에 이렇게 불편함을 드리게 되어 죄송합니다. 최대한 이웃 주민분들께 피해가 덜 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가정에 행복한 일들만 가득하시길 바라겠습니다. 

(환경을 생각하여 선물은 종량제 봉투에 담았습니다.) 000호 예비 입주민 드림     

 


 손편지만으로도 벌써 마음속엔 봄꽃이 피며 환해지고 있는데, 종량제 봉투에는 키친타월 2개와 물티슈 1개와 목캔디 사탕 한 통이 들어 있었다.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손편지만으로도 충분히 이해하는데……’하면서도 선물에 담긴 마음까지 더 고마웠다.     



 오래된 아파트여서 여기저기서 리모델링 공사를 자주 한다. 그때마다 공사업체에서 서류상 동의만 받아갔고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여겨왔다. 공사 소음에도 함부로 내놓고 불평할 수도 없는 것은 살다가 보면 나도 언젠가 공사를 하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역지사지했다.          

 


 그냥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동의를 받았으니 할 일 다 한 것으로 지나갈 수도 있는 일인데 이렇게 손편지와 정성을 담은 선물까지 준비한 입주민에 대한 감동에 딱딱한 콘크리트 아파트 벽 사이로 소통의 부드러운 숨결이 느껴졌다. 얼굴은 모르지만 마음은 벌써 가까운 이웃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예고한 날짜부터 망치소리, 드릴 소리 요란했다. 

그래도 듣지 않는다고 불평하거나 투덜거리지 않았다. 감동의 손 편지로 미리 마음을 넓혀 두었고, 귀를 순하게 열어두었기 때문일 것이다. 


 드릴 소리 위치에 따라 ‘오늘은 베란다를 넓히나 보다, 오늘은 화장실을 개조하나 보다.’ 하면서 공사에 마음을 보태주고 있다. 다행히 초반에만 뚫는 소리로 시끄러웠지, 하루 이틀 지나니 각오했던 소음도 없었다. 오히려 기다리기라도 한 듯 소음이 들리지 않으면 '오늘은 왜 공사를 하지 않는가.' 궁금했다.      



날이 갈수록 층간소음 문제로 관리소에서 방송을 자주 한다. 신경을 곤두세우기 전에 서로의 진심이 전해지면 소통이 훨씬 수월해질 것 같다. 작은 소음이 큰 싸움으로 번지는 것도 진심이 전해지지 못해서 소음이 더 크게 들릴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역시 진심이었다.

벌써 손편지의 주인공인 이웃이 이사 올 날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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