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방 내린다 생각하니

~ 삶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느낌 ~

by 강신옥

버스를 탔다. 세 정류장 거리에 있는 마트를 가기 위해서였다. 걷는 것을 좋아해서 운동삼아 걸어가려고 나섰는데 때마침 버스가 오는 것을 보자 순간적으로 마음이 바뀌었다. 산책코스도 아니니 일단 빨리 다녀오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버스에 올라 단말기에 정산을 하자 빈자리가 눈에 띄었다. 오늘은 샐리의 법칙이 통했다. 버스도 때맞추어 와 주었는데 자리까지, 그것도 옆 사람 방해받지 않는 창 가에 일인석으로……. 행운이라도 잡은 듯 '옳거니' 하는 마음으로 눈도장 찍은 자리로 갔다.



막 앉으려는데 거의 동년배로 보이는 아주머니 한 분이 바로 앞에서 멈춰 서면서

"아이고 한 발 늦었네."라는 것이 아닌가.

순간, 깜짝 놀라서 자리에 앉으려다 멈칫했다. 내가 자리를 향해 갈 때 아주머니가 뒤에서 나오고 있어도 나는 아주머니가 다음 정류장에서 내리려는 사람인 줄 알았다.

" 내가 뒷자리에 앉았다가 여기 앉으려고 나왔는데" 하시는 것이었다.

버스 안의 시선이 우리 둘에게 쏠림을 느꼈다. 민망하고 머쓱했다. 앞뒤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얼른 " 아, 앉으세요. 저는 금방 내립니다." 하며 물러섰다.

아주머니가 고맙다며 자리에 앉았다.



건너편에 앉았던 다른 아주머니가 나보고 그 아주머니 앉았던 자리에 가서 앉으라고 권했지만 금방 내릴 것이니 괜찮다고 했다. 정신을 좀 차리고 싶었다.


손잡이를 잡고 그냥 창밖을 보며 마음을 추슬렀다. 시선은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지만 마음은 내가 한 말을 되새김질하며 황당했던 마음을 가라앉히고 있었다.



'금방 내릴 것인데 뭐, 그래 금방 내린다면 내 자리도 아닌데 뭐……. '

얼마나 멀리 갈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니 그 자리에 연연하는 마음도 쉽게 떨쳐버릴 수 있었다. 금방 내린다 생각하니 내 자리라고 할 수도 없었다. 자리를 놓쳤다고 그리 아쉬워할 일도 아니었다.


어느새 내릴 정류장이었다.

벨을 누르고 내릴 준비를 하는데 그 아주머니도 내리려고 나왔다.

나를 보자 “ 아, 같이 내리네요. 난 또 금방 내리는 줄 알았는데, 아이고 미안해요.” 라며 쑥스러워했다. 아주머니도 가시방석이었나 보다.

그냥 웃었다. 우리는 마트까지 함께 동행을 했다.



차를 가져가지 않아서 몇 가지만 사서 가벼운 몸으로 걸어오면서 생각했다.

'맞아, 너무 멀리까지 간다고 생각하지 말자. 금방 내릴 수도 있다 생각하면 훨씬 쉽게 내려놓을 수도 있지. 금방 내릴 것이라 생각하면 자리에 연연하지 않을 수도 있지.'


삶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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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책하다 잠시 쉬어가는 자리에서 만난 장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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