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가족이 즐겁게 웃으며 먹던 점심 수저를 놓을 수밖에 없었다. 남편이 조기조림을 먹다가 가시가 걸린 것이다. 누구나 마찬가지 듯이 전에도 가끔 가시가 걸린 적이 있었다. 근거 없는 민간요법인지는 몰라도 크게 한 숟가락 뜨거운 밥을 삼키면 해결되곤 했다.
“다행이다 넘어갔다. 괜찮아.” 하던 예전과는 달랐다.
밥을 먹다 말고 세면대에 가서 힘껏 토해내려고 안간힘을 써 봐도 소용이 없었다. 남편은 웬만큼 아파서는 약도 먹지 않고 병원도 잘 가지 않고 그냥 버티면서 넘어가는 편인데 이번은 달랐다.
참아서 될 일이 아니었다.
가시가 깊이 들어가 박힌 것 같다면서 침을 삼킬 때도 아프다고 했다. 오늘따라 딸 친구가 날짜를 잘못 알고 보내온 생크림 케이크까지 후식으로 대기하고 있었건만 온 식구의 기분은 다운되고 말았다. 도리가 없었다. 얼른 동네 이비인후과에 가서 가시를 빼내고 오는 수밖에 없었다. 병원 점심시간에 걸릴까 봐 남편을 재촉했다. 다행히 몇 분 거리에 이비인후과가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남편도 어쩔 수 없는지 거부하지 않고 병원으로 갔다.
딸에게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라고 부탁했다. 남편 혼자 보내놓고 나니 마음에 걸려서 나도 병원으로 가봐야 할 것 같았다. 옷을 챙겨 입고 막 나가려는데 대문 번호 키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사이에 벌써 가시를 제거했는가 별 것도 아닌 것에 너무 호들갑을 떨었는가’ 주춤거리는데 남편이 들어왔다.
그것이 아니었다.
의사가 오전에 휴진이어서 오후 2시가 되어야 진료를 한다고 그냥 돌아온 것이었다. 한숨 돌리려다 다시 긴장이 고조되었다. 마냥 기다리며 손 놓고 있을 수가 없었다.
인터넷 검색을 해서 인근 동네 이비인후과를 찾아갔다. 생선가시가 걸려서 왔다고 하자 바로 진료실로 들어갔다. 남편의 진료가 끝나길 기다리며 당혹감과 초조함을 가라앉히느라 대기실 벽에 붙은 목, 식도 사진을 보며 하염없이 멍해 있자니 차츰차츰 몸이 하는 말이 들려왔다.
수십 년간 하루 세끼씩 먹고 살아온 것이 그저 숟가락으로 내가 먹으니 내 힘으로 다 되는 일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고 했다. 별 것 아닌 줄 알았는데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 내 몸 속이지만 지금껏 눈길 한 번 주지 않고도, 그 좁은 목이며 식도를 아랑곳하지 않고 잘도 먹고 잘도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나도 가족도 가시가 한두 번 걸린 것이 아닌데 지금껏 용케도 잘 넘겨준 목과 식도에게 고마운 줄도 몰랐다. 지금껏 그냥 눈감아 준 것이었는데 당연한 일로 여겨왔다.
가시처럼 나를 찌르는 말들이 내 마음에 꽂히고 있었다.
내 몸이지만 내 마음대로 내 능력으로 무사한 것이 아니었다. 우리 몸의 신비였다. 하나님의 은혜였다. 매일매일 일어나는 기적이었다.
진료는 생각보다 시간이 지체되었다.
가시가 커서가 아니라 작아서 문제였다는 것이다. 화면상에 보이지 않아서 의사 선생님이 감으로 해보긴 했다는 것이다. 가시가 제거되었는지 눈으로 확인한 것은 아니었다. 제거되지 않았을 경우 약을 먹으면 가시가 녹아서 나올 수도 있고 만약 그것이 안 되면 큰 병원에 가서 내시경 하면서 수술로 제거해야 한다고 했다.
약국에 들러서 약은 받아 왔지만 지금까지처럼 신비한 우리 몸이 알아서 해주어야 하는 일이라 생각되었다. 이번에도 하나님이 가시를 처리해 주리라는 믿음이 내 마음을 토닥여주었다.
집에 와서 다시 국을 데워서 점심을 몇 숟가락 먹었다. 남편은 음식이 닿을 때마다 통증이 좀 있다고 했다. 가시가 제거되지 않은 것인지, 가시는 제거되었으나 치료의 흔적 때문에 통증이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첨단 컴퓨터보다 더 신비한 몸이 알아서 해주리라는 막연한 믿음이 오히려 불안을 잠재워 주었다.
약 기운에 한 숨 자고 일어나더니 남편은 가시가 제거가 된 것 같다고 했다. 눈에 보이지 않아서 눈으로 확인은 안 되었지만 의사 선생님이 진료하는 틈을 타서 가시가 제거된 것 같다고 했다. 침 삼키는 것도 부드러워졌고 통증도 사라졌다고 했다.
‘휴~ 다행이다.’라며 온 가족이 무척 기뻐했다.
무겁게 가라앉아 있던 공기가 다시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남이 보면 ‘흥, 별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우리는 크게 기뻐하고 감사했다.
그 작은 가시가 평범한 일상의 기쁨과 감사를 움트게 해 주었다.
저녁 식탁에서 딸이 다른 날짜에 받은 생일 케이크가 가시가 빠진 것을 축하하는 케이크가 되었다. 온 가족 함께 마음에 걸렸던 가시가 빠져서인지 오늘따라 생크림 케이크가 더 부드럽고 달콤했다.
고 작은 가시 하나가 너덜 해진 감사를 다잡아 주었다.
걸렸던 가시가 빠진 것도 감사하지만 아예 가시에 걸리지 않은 수많은 날들, 감사하지 못하고 살아온 날들에 대해서 다시 감사를 소환해 주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오늘,
고 작은 가시 하나가 무디어진 일상에 일침을 가해 주었다.
삶이란 순간순간으로 점철되는 것이고, 아무 일 없는 평범한 일상이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신비한 우리 몸처럼 알게 모르게 일하는 수많은 이들이 연결되어 나의 평범한 하루하루가 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