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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현 Oct 05. 2020

물방울의 힘

김창열의 미술 읽기


현상 No.1-캔버스에 유채, 152x152cm, 1971 Ⓒ 김창열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며 누구 하나 어렵지 않은 시기를 보내던 때에 미술가 김창열 역시 고난의 시간의 중심에 있었다. 평안남도에서 태어난 김창열은 이쾌대가 운영하던 성북회화연구소에서 처음 그림을 배웠다. 이후 검정고시를 거쳐 1948년 서울대학교에 입학하였으나 한국 전쟁으로 인하여 졸업하지 못하였고, 생업을 위하여 경찰로 잠시 일하는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김창열의 예술에 대한 강력한 의지는 미술 협회 활동으로 이어졌고 1961년 제2회 파리 비엔날레의 출품을 계기로 미국과 프랑스로 향하게 되었다. 세계적인 미술가가 되고 싶었던 김창열은 1966년 도미하여 뉴욕의 넥타이 공장에서 도안을 그리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록펠러 재단의 장학금을 받아 아트 스튜던트 리그 오브 뉴욕에서 그림을 배웠다. 이후 1969년 도 불하여 파리 인근의 팔 레조라는 곳의 마구간에서 생활하며 창작 활동을 이어갔다. 질곡의 한국사의 한 복판에 서 있던 김창열은 그야말로 혼자만의 힘으로, 그리고 미술에 대한 강인하고 순수한 의지를 원동력으로 하여 오늘의 미술가가 된 것이다.


물방울-신문지에 아크릴릭, 49.6x33.6cm, 1987 Ⓒ 김창열

‘마구간 화실’의 물방울, 미술의 언어가 되다

   김창열은 이른바 ‘마구간 화실’이라고 불리던 프랑스 작업실의 어려운 형편에서 창작활동을 지속하기 위하여 캔버스를 재사용하곤 하였다고 한다. 캔버스에서 물감을 떼어내기 위하는 과정에서 김창열은 햇빛에 비친 캔버스 위의 물방울들을 발견하였고, 이것은 그만의 물방울이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다. 프랑스에 온 지 3년 차인 1972년 김창열은 물방울을 그리기 시작하여 1973년 물방울 작품들로 파리에서 개인전을 개최하여 많은 호평을 얻었다. 서구인들은 반짝이는 물방울들을 바라보며 동양의 정신을 읽어내기도 하였다. 김창열의 물방울은 물방울의 존재를 위하여 캔버스를 가득 채워내기보다 비워내는 것도 중요하기에 절제되고 또 신중해 보였기에 정신성이 투영된 산물로 해석되었다. 또한 화면 위에 맺혔으나 흐르지 않는 물방울은 영원성을 상징하고 있다고 보였다. 이후 1976년 현대화랑에서 선보여 한국에서도 큰 호응을 얻었다. 김창열의 물방울은 그의 바람처럼 미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그리고 중국과 대만, 홍콩에 이르기까지 전시하며 세계적인 미술 언어가 되었다.    


대비의 시각적 유희

   김창열의 물방울은 유난히 맑고 빛이 나는 듯 보인다. 이것은 단순한 유려한 손의 기술에서 나아가 그가 그림을 그리는 화폭의 소재의 다양성에 기인하여 효과를 극대화한 것이다. 김창열은 흰 캔버스보다 마포에 물방울을 그린다. 마포는 흰 면천보다 질감과 색이 거칠고 투박한데 이러한 마포의 물성을 그대로 살려 그 위에 영롱한 물방울을 그렸다. 또한 신문지 역시 그가 자주 활용한 소재이다. 지성을 대변할 수 있는 신문의 빼곡한 글자들 위의 물방울은 감성적으로 표현되어 마치 현실을 초월한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1980년대 이후에 한자를 직접 화면에 그리기 시작하였다. 한자는 상형문자로 글자 안에 다양한 의미를 형상화하고 있다. 한자는 글자이며 동시에 그에게는 세상의 이치를 대변하는 그림과도 같이 사용하였다. 그리고 그 위에 맺힌 물방울은 보는 이들에게 속세를 초월한 듯 시간이 정지한 시간성을 느낄 수 있다. 김창열의 작품은 이러한 미술의 요소들을 대비시키며 그것이 유발되는 감성을 잘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거친 천과 영롱한 물방울의 대비를 주거나, 논리와 이론으로 무장한 지성으로 대변되는 글자 위에는 이와 반대되는 감성인 물방울을 한 화면에 합친 것이다. 또한 시간성 역시 마찬가지이다. 본래 물방울은 중력에 의해 흐르거나 시간에 의해 마르는 무無의 존재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캔버스 위에 실재같이 그려진 물방울들은 순간의 시간을 정지시켜 그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물성의 대비와 이성과 감성 그리고 시공간 성의 움직임까지 한 화폭에 여러 속성의 대비의 효과를 주는 미술 언어들은 국가를 초월하여 김창열의 물방울에 더욱더 많은 서사를 가능하게 하고 있다.

물방울-목판에 유채, 193x161cm.1989 Ⓒ 김창열
회귀-캔버스에 유채, 먹, 130x162cm, 1992 Ⓒ 김창열


김창열은 이우환과 박서보 그리고 백남준에 이르기까지 한국 미술계의 거장들과 함께 발전해 온 미술가이다. 이들은 모두 미술에서 도구로 활용되는 물物성에 대한 연구에 집중한 작품을 창작하였다. 김창열은 그들과 다른 그만의 기법으로 끈기 있게 접근하였다. 초기 김창열의 작품에서는 추상적인 표현의 작품을 시도하였으나 물방울이 등장한 이후 초현실주의에 가까운 화풍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서양의 초현실주의 미술가들인 달리나 마그리트처럼 사물의 형태를 변화하거나 인위적인 힘을 가하여 형태를 왜곡시키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김창열의 미술을 서술하는데, 당시 어떤 화파에 속하여 활동하였다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김창열 이후 한국 화단에는 실재하는 것 같지만 실재하지 않는 것들을 실재와 같이 그리는 미술가들이 다수 등장하였다. 20세기 말 한국 화단을 장식하였던 하이퍼 리얼리즘이라 불리던 미술이 바로 김창열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다. 이것은 추후 용어적인 재정의가 필요하지만, 한국식 초현실주의라 할 만큼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 그리고 이 흐름에 앞장서고 있는 김창열의 물방울은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2016년 김창열이 피난 시절 머물렀던 제주도에 그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미술관이 건립되었다. 제주도립 김창열 미술관에는 그의 중요한 작품을 한자리에서 관람할 수 있다. 이곳에서 복잡한 세상에서 벗어나 자신의 감성에 집중하는 시간을 보낸다면 좋은 휴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회귀-캔버스에 유채, 아크릴릭, 162x130cm, 2014 Ⓒ 김창열


*이 글은 월간 비자트와 중기 이코노미에 기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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