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연잎에 누워

by 소위 김하진

비 오는 날, 연잎에 누워


소위


비가 내린다

연잎 위로 쏟아지는 빗방울들이

데굴데굴 구르다

또르륵 또르륵 잎 가운데로 모여든다

연못 안에 연잎, 연잎 안에 또 다른 연못

빗물은 계속해서 고이고 또 고인다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휘청

빗물이 가득 찰 때마다 휘청

연잎들은 이리저리 춤을 추듯 분주하다

그 곁에 배시시 홍조 띤 얼굴을 한 연꽃은 홀로 도도하다

너는 겨우 나흘짜리 꽃이라며?

가시 돋친 내 말에 낙화하던 연꽃들이 돌아눕는다

새빨개진 얼굴로 연잎 뒤에 숨어서 훌쩍거린다


나흘짜리 꽃을 안쓰러이 쓰다듬는 투박한 너의 손바닥이 좋다

온몸으로 빗물을 받아내는 오래된 우물 같은 너의 배가 좋다

빗물 한 방을 탐하지 않고 소중히 모으다가 어느 날 어느 순간 한꺼번에 쏟아버리고 홀연히 빈손으로 되돌아가는 너의 무욕이 좋다

빼곡히 자라나 한 치의 틈도 없이 연못을 뒤덮어버리는 너의 가멸참이 좋다

연꽃의 화려한 부활 뒤에서 소리 없이 할 일만 하는 너의 수더분함이 좋다


비 오는 날

연잎 위에 누워 잠이 든다

나는 연잎으로 다시 태어나는 꿈을 꾼다

여름의 절정을 탐하며

화려한 꽃으로 피고 지려 하기보다

수많은 평범한 아무개가 되어

이파리로 나고 죽기를 택하리라

그만하면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