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생겨서 죄송할 법도 한 '밀수'의 그 남자, 조인성
로맨스도 아닌데 권 상사 당신만 생각 나.
*이 글은 영화의 줄거리를 노출하지 않습니다.
'밀수'
현재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고 있는 한국 영화이다. 킬링타임용 오락영화로는 손색이 없고 무더운 날씨에 딱 어울리는 해양 영화이기도 하다. 공포까진 아니어도 조스?를 능가하는 상어가 등장하고 바닷속을 누비고 다니는 해녀들과 한국 영화에 빠지면 섭섭한 거친 액션, 미워할 수 없는 어설픈 빌런, 심심함을 달랠 반전에 적당한 코믹까지 흥미로운 요소들은 죄다 섞어서 맛있게 버무려 놓은 작품이다.
거기다 레트로 감성까지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다. 이 작품의 배경이 70년대가 아니었다면 모든 건 눈 뜨고 못 봐줄 코미디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그런데 70년대라니 왠지 다 용서가 된다. 아니 실은 그래서 더 좋다.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그 시절 노래들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중년 이후의 세대들에겐 설렘이나 아련함을 느끼게 할 테니까.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나는 감독 이름을 보자마자 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아무런 정보도 없이 단지 시간을 때우기 위해 보러 들어간 영화였다. 류승완 감독은 언제나처럼 관객들에게 설득력이 있다. 감각적이고 깔끔하고 조금은 기발하기도 하다. 이 영화는 엑시트를 보고 났을 때의 느낌과 많이 겹쳤다. 무겁지 않고 그렇다고 가벼울 거까지는 없으면서 2시간이 아깝지 않게 흘러가는 꽤 잘 만든 오락영화였으니까.
특히 주인공은 김혜수, 염정아, 고민시라는 여자 배우 삼인방이다. 여자판 독수리 삼 형제나 삼총사를 방불케 할 정도로 여자 영웅들의 활약이 돋보인다. 특히 김혜수와 염정아는 정말 해녀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수중신을 잘 찍었는데 그녀들의 나이를 감안했을 때 박수 쳐 줄 만하다. 이 영화를 찍는 동안 하드한 액션 영화 못지않은 육체적 고충이 있었을 것 같다. 바닷속 장면들 대부분이 CG일지도 모르지만 일부러 눈을 모로 뜨고 비판할 거리를 찾는 스타일만 아니라면 대체로 실감 나게 즐길 수 있는 완성도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말해 해녀들 씬은 내겐 꽤 신선하고 멋있었다. 나는 어떤 영화를 보든 좋은 점을 많이 찾으려 하는 편이므로 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지금까지도 조연으로 등장한 이 남자가 자꾸만 눈에 밟힌다. 누군가는 이 남자가 최선을 다한 잘생김으로 영화 내내 열일을 했다고 하던데 그 말에 진짜 물개박수라도 쳐주고 싶다.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 상사가 아니라 새하얀 권 상사를 연기한 조인성, 그가 바로 잘생김을 위해 최선을 다한 배우였다.
설득력 없는 캐릭터였다. 소위 한국판 거친 액션 영화들에 등장하는 악역과 비교하면 말도 안 되게 나긋나긋하고 곱기 때문이다. 물론 등장할 때부터 천사의 미소 뒤에 잔인함을 장착한 악역으로 설정되어 있긴 하지만 어째 나쁜 놈 같지가 않은 거다. 얼굴이 문젠가? 왜 면도날을 들고 김혜수를 가해하는데도 눈빛이 달콤한 거냐고!! 그러더니 권 상사의 매력은 끝이 없다. 박정민이 연기한 악역 장도리의 패거리들이 몰려와 잔인한 살육이 난무할 때, 김혜수를 마치 보호해야 할 어린애나 연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애틋하게 숨겨주는 게 아닌가? 거기다 공포에 떠는 김혜수를 안심시켜 주기 위한 살인 미소까지 날리는 거다. 끝내 조인성은 박정민의 칼에 맞고 만다. 하지만 잔인하고 거친 칼부림 장면이 로맨스처럼 달콤해서 도통 잊히질 않는다. 칼 들고 얼굴에 피 묻히고 그렇게 곱기는 힘든데 말이다.
출처 밀수
여자들에겐 아저씨의 윈빈에 대한 환상이 조금씩 있다. 아무리 잔인하게 사람을 죽인다 해도 왠지 나에게만은 죽을 때까지 웃어주기만 할 거 같은 사람. 현실에서도 그런 남자는 있다. 밖에선 차갑고 냉정하지만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만은 한없이 부드럽고 너그러워지는 남자 말이다. 물론 절대로 좋은 사람일리 없는데도 여자들은 그렇게 나쁜 남자에 속고 끌릴 때가 있는 것이다. 밀수 속 조인성처럼!
이 남자 배우를 좋아하기 시작한 건 '발리에서 생긴 일'을 보고 나서부터이다. 그는 믿기지 않는 조각 외모에 모성애를 심하게 자극하는 인물이었다. 곧 깨져버릴 것 같이 아슬아슬하고도 자기 파괴적인 캐릭터를 어찌 보호해주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는 유독 어딘가 조금 아픈? 남자 캐릭터에 끌리는 묘한 취향이 있기도 했다. 한국에 조인성이 있다면 외국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있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게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 건 길버트 그레이프에서 지적장애인을 연기했을 때였고 토탈 이클립스에서 시인 랭보를 연기했을 때엔 결국 깊이 빠져들게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디카프리오를 사랑했지만 난 그 영화 이전에 이미 그를 알아봤다.
출처 토탈 이클립스
천사 같고 순수한 얼굴, 그러나 조금은 타락한 듯한 눈빛, 금세라도 소멸해 버릴 거 같은 불안정한 자아 등 현실 세계에서는 당장이라도 병원에 입원시켜야만 할 것 같은 캐릭터가 가상 세계 속에선 참으로 매력적이고 신비한 존재로 느껴지는 것이다. 내게 조인성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처음에 각인된 그 인상이 지금까지도 잘 희석되지 않고 있다. 그들의 다양한 작품 활동들을 고려했을 때 나 같은 팬은 그다지 달갑지 않으리라.
출처 토탈 이클립스
그나마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흐르는 세월과 함께 외모가 망가지면서 연기의 폭이 넓어진 측면도 있지만 조인성은 십수 년 전 미모가 지금도 그대로이다. 뭔 역을 해도 조인성은 조인성인 거다. 비열한 거리의 양아치 병두도 피비린내 난무하던 그 살육 현장 속에서 참으로 보호해주고 싶은 안쓰러운 캐릭터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조인성은 연기를 아주 잘한다. 그는 맡은 배역에 충실하면서도 타고난 얼굴까지도 스스로 알아서 연기를 빛내주고 있을 뿐이다. 오히려 너무 잘 생겨서 손해 보는 배우가 아닐까!
밀수 속 권상사는 조금은 억지스럽게 만들어낸 인물인 듯도 한데 그게 또 감독의 의도였던 것도 같다. 코믹 액션 영화일지라도 약간의 로맨스는 조미료 같은 감칠맛을 더해 주니까. 이 영화를 보고 해녀들의 물질보다 조인성의 피 묻은 얼굴에 더 깊이 감동한 나 같은 관객들이 분명 많을 것이다. 여하튼 영화는 꽤 재미있었다.
출처 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