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의 방

by 소위 김하진

유년의 방

- 책


소위



밥을 달라면 밥을 주고 술을 달라면 술을 주는

손님이 오면 문을 열고 손님이 가면 문을 닫는

식당이었습니다.


아무거나 아무렇게나 파는

그 식당엔

어미와 어린 계집애 둘이 살고 있었습니다.


손님들이 밤늦도록 술판을 벌이면

계집애는 길거리로 내쫓겨

하염없이

땅바닥에 그림만 그리고 또 그렸습니다.


하루는 테이블에 놓인 물을

벌컥벌컥 마셨는데

알고 보니 그것은 물이 아닌 소주였습니다.

계집애는 술이 다 깰 때까지

벌건 얼굴로 퀙퀙거리며

길바닥에 누웠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며 뒹굴었습니다.

식당 안에선 어미의 해사한 웃음소리가

사내들의 거친 목소리 사이로 간간이 새어 나왔습니다.

계집애는 땅바닥에 누워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까르르 웃었습니다.


식당 옆에는 책방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책방 주인은 먼지투성이 계집애를

책방으로 불러들였습니다.


생전처음 맡아보는 책 냄새에

계집애는 소주를 떠올리며 킁킁거렸습니다.

버석거리는 길바닥이 세상의 전부였던 계집애는

책방의 반질반질 윤기 나는 바닥과 사방 가득 어지러운 글자들이 맘에 들었습니다.


어린애가 글을 아는 게 신기하다며

책방 주인은 뭐든지 읽게 해 주었습니다.

명작동화도 전래동화도

닥치는 대로 읽고 또 읽었습니다.


계집애의 집은 식당 안 쪽 단칸방이었습니다.

방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식당에 걸려 있는 작은 흑백 TV는 오직 손님용이었습니다.

계집애는 책방 주인의 맘에 들기 위해 열심히 책을 읽었습니다.

책만 읽으면 흙먼지 날리는 땅바닥도 반짝거리는 책방 바닥이 되었습니다.


책방에는 계집애와 같은 또래의 여자아이 하나가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 여자애는 계집애를 데리고 2층에 있는 집으로 올라갔습니다.

문을 열자마자. 계집애보다 큰 궤종시계가 무시무시한 눈으로 노려보며 호통을 쳤습니다.

계집애는 소스라치게 놀라 밖으로 도망쳐 나왔습니다.


그날 이후로 책방 주인은 다시는 책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계집애는 책방에서 쫓겨났고

식당도 때마침 문을 닫았습니다.

어미와 어린 계집애는

더 작고 텅 빈 방으로

몸을 옮겼습니다.

계집애는 날이 밝으면 다시 길바닥으로 나갔습니다.

시궁창 냄새에 코를 킁킁거렸습니다.

책방 주인의 딸은 여전히 글을 읽지 못하는지 궁금했습니다.

그 많은 책들이 계집애만 기다리고 있을 게 분명했습니다.

계집애는 온종일 발만 동동 구르다

해가 지면 흙투성이가 되어 돌아갔습니다.


텅 빈 유년의 방으로...


room-540833_1280.jpg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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