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원은 학교인가? 교사도 학생도 있지만....

그는 소년원 과학 교사가 되었다.

by 소위 김하진

남편은 긴 수험생활을 마치고 국가직 9급 공무원에 합격하여 머나먼 전라도 땅에 첫 발령을 받았다. 그는 대학에서 교직을 이수했고 임용시험도 준비했으며 수험 생활 동안 기간제 과학 교사를 한 적도 있었다. 그러니 교사로서의 자질은 이미 충분히 갖춘 사람이었다. 교사가 되기를 바라던 그가 과학 교사로 임용되었다고 했을 때, 우리는 뛸 듯이 기뻤었다. 하지만 그가 근무하게 될 곳은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학교가 아니었다. 살면서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곳, 바로 '소년원'이었다. 그는 소년 보호직 과학 교사로 공무원이 된 것이었다.


우리는 국가직 공무원, 그것도 교사가 되었다는 사실에 만족했을 뿐 그 밖의 다른 것들은 생각하지 않았다. '과학 교사니 아이들에게 과학을 가르치면 되는 게 아닐까?'라고 막연히 추측할 뿐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우리가 예상했던 것과는 너무나 달랐다. 그는 소년원 교사 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부터 엄청난 혼란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나 역시 그를 통해 소년원이란 곳에 대해 알게 되자 늘 마음이 불안하고 조마조마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


소년원은 누구나 다 아는 것처럼, 성인이 되기 전의 아이들이 범죄를 저지르면 판사에게 소년보호처분이라는 것을 받아 들어가게 되는 곳이다. 세상에는 잠깐의 일탈이나 사춘기의 광기로 나쁜 길로 빠져드는 아이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그런 아이들의 경우 대개 소년원까지 가지는 않는다. 소년원에 가는 아이들은 보통 어른이 듣기에도 끔찍하거나 심각할 정도의 범죄를 반복적으로 저지른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뉴스를 떠들썩하게 했던 살인자도 있었다. 그런 아이들을 생각하면, 아직은 어리기에 함부로 아이의 인생을 재단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과 이미 되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 죄인들이라는 생각이 복잡하게 뒤얽혀 혼란스러웠다. 그런데 그 아이들과 24시간을 함께 생활해야 한다니 남편은 얼마나 마음이 고단하고 고통스러웠겠는가?


과학교사로 채용되었지만 과학을 가르칠 수는 없었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학습 능력이 현저히 떨어져 있었으므로 일반 학교의 정규과정을 이수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래도 아직은 어린 만큼 인생을 새롭게 개척하고자 하는 아이들도 더러 있었다. 그런 아이들을 데리고 그는 검정고시 공부를 가르쳤다. 소년원에 오기 전까지는 선생을 발아래로 보고 무시했던 아이들이 남편만은 진짜 선생님이라며 믿고 따르고 존경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아이들을 보며 그도 조금은 보람을 찾아가는 듯했다.


하지만 소년원에서의 근무는 일반적인 공무원의 삶과는 하늘과 땅 같은 차이가 있다. 소년원은 단순한 학교가 아니라 일종의 교정을 위한 합숙시설이다. 아직 성인이 안된 범죄자들을 가두어 놓고 감시하는 감옥인 것이다. 그러니 밤샘 근무를 해야 하는 당직이 있었다. 당직이라는 게 그냥 비상 전화를 받거나 건물을 관리하는 차원이 아니다. 마치 감옥의 교도관처럼 아이들의 방을 하나하나 CCTV로 보면서 혹시나 일어날 돌발 행동이나 위험 행동을 밤새도록 감시하는 것이었다. 일주일에 두 번 이상은 집에 올 수 없었다. 예민하고 불안이 많던 그는 일주일에 며칠씩을 쪽잠 한숨 자지 못한 채 꼬박 날을 새며 버티곤 했다.


아이들이 먹고 자고 심지어 싸는 것까지도 직접 관리해야 했다. 목욕도 정해진 시간에 하는데 혹시라도 벌어질 사고에 대비해 씻는 것도 눈으로 확인해야 했다. 그는 아이들의 벗은 몸을 보는 게 끔찍하다고 했다. 정말 무시무시할 정도로 온몸에 문신이 가득한 아이들도 많다면서... 덩치로는 남편을 한방에 제압할 만큼 힘센 아이들도 많았다. 실제로도 화가 나면 교사들에게 덤비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아이들이 나타나기도 해서 근무는 항상 긴장 속에서 이루어져야 했다.


차라리 감옥이라면 철저히 범죄자와 교도관이 분리될 것이다. 하지만 소년원은 학교라는 탈을 쓰고 있고 교사와 학생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다. 내가 듣기에 그곳은 결코 학교가 아니었다. 조금은 무방비하고 무책임한 환경에서 아이들도 교사도 힘겹게 공생하고 있는 곳일 뿐이었다. 그것은 근무하는 교사에게도 불행이었고 그곳을 다녀간 아이들에게도 불행일 터였다. 어쩌면 감옥보다 더 중요한 곳이 소년원이다. 그릇된 길로 접어들기 시작한 아이들에게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희망의 불씨를 놓아줄 수도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가 근무했던 소년원은 그런 역할을 하기엔 역부족이었고 참담할 정도로 열악한 곳이었다. 오히려 소년원에 있으면서 더 나쁜 길로 빠져버리는 경우도 심심치 않다고 했다. 그리고 한 번 소년원에 들어왔던 아이는 또다시 들어오는 일도 많았다. 소년원을 계속해서 들락거리다가 성인이 되면 감옥으로 그 장소만 바뀔 뿐 아이들의 삶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는 것이다. 시간이 꽤 흘렀으니 지금은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주변사람들이 남편의 직업을 물었을 때 소년원 교사라고 답하면 제대로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저 감옥의 교도관과 똑같은 것으로만 알았다. 하지만 엄연히 직렬이 다른 공무원이다. 교도관은 소년원 교사가 될 수 없고 소년원 교사는 교도관이 될 수 없다. 사회의 어두운 한 편에 소외되어 있는 학생들처럼 소년원의 교사 역시 그렇게 소외당하면서 사람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 일을 하는 공무원이었다. 어쩌면 이런 모든 것들이 그의 자존감에 나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곳에서 그의 도움으로 새 삶을 살게 된 제자들을 생각하면 의사, 판사, 대통령을 길러낸 교사 못지않게 훌륭한 일을 해낸 것임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알아주기는커녕 어두운 세계에 속한 사람이라는 불편한 색안경을 끼고 쳐다볼 뿐이었다.


그래도 그는 꿋꿋이 잘 버텨냈다. 자기가 가진 능력을 백분 발휘하여 아이들을 검정고시에 여러 명 합격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하얀 천에 검정물을 들이는 것은 먹물 한 방울이면 충분해도 이미 검어진 천을 하얗게 표백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육체적, 감정적으로 끊임없이 소모되어 가던 남편은 날이 갈수록 낯빛도 캄캄해져 갔다. 어찌할 수 없는 환경 속에서 그는 점점 침잠해 갔고 비관적이 되어 갔다. 하지만 내가 그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다 결국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그날 밤도 여느 때처럼 남편은 당직 근무를 하고 있었고 나는 집에 혼자 있었다. 느닷없이 걸려온 전화 한 통, 나는 순간 불길한 예감에 휩싸였다.


이 시간에 전화가 올 리 없는데....

출처 무아, '연필로 그리는 풍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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