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두 번째 공무원이 되었다.
"사고가 터졌어."
"무슨 사고?"
"아이들이 탈원을 감행했어."
"뭐? 자기 괜찮은 거야?"
"조금 다쳤어. 하지만 괜찮아."
소년원은 대체로 산골짜기에 있지 않다. 겉모양은 일반 학교의 모습을 하고 있고 심지어 이름도 일반 학교와 다르지 않다. 절대로 'OO 소년원'이란 간판을 내걸고 있지 않다. 그가 처음 근무했던 소년원도 평범한 동네 바로 옆에 있으면서 'OO 정보통신학교'라는 간판이 붙어 있었다. 뭐하는 곳인지 모르고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다. 시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고 폐쇄적인 곳도 아니므로 아이들이 답답함을 견디다 못해 탈원하는 일들이 종종 일어났다. 그러니 근무하는 사람들은 늘 긴장과 불안 속에 살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아이들이 탈원하면 그 아이들을 찾기 위해 모든 직원들이 직접 발로 뛰어야 했다. 도시 전체를 샅샅이 뒤져서라도 아이들을 찾아내야만 하는 것이다. 만약에 찾지 못한다면 그것은 전부 소년원에 근무하는 직원들이 책임져야 할 중차대한 과실이 되었다. 쉽게 말해 옷을 벗거나 강등이 되거나 어디 먼 도시로 징계성 발령을 받아 쫓겨나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런 일이 발생하면 모두가 액션 영화의 주인공이 되기를 불사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위험한 상황이 펼쳐지더라도 탈원하는 아이들을 막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그날도 몇몇 아이들의 선동에 흥분한 아이들이 뛰쳐나가려 했고 아이들을 저지하는 상황에서 폭력적인 부딪힘이 일어났다. 나는 현장에 있지 않았으니 그날의 상황을 생생히 알지는 못한다. 다만 그는 그 사건으로 몸을 다쳐서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평생 우리에겐 해당되는 일이 없을 줄 알았던 공무 중의 상해를 입은 것이다. 돈 때문이 아니라 마땅한 권리라 생각해서 공무원 산재 보험도 신청했다. 산재 보험을 신청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 모든 게 당사자가 기록하고 증명해서 제출해야 하는 것이라 굉장히 피로하고 회의감이 드는 일이었다. 명백히 근무 중에 발생한 일이고 마땅히 치료비를 지원해 주어야 할 일임에도 사건의 진위 여부부터 책임 여부를 하나부터 열까지 본인에게 입증하라고 했다. 참으로 잔인하고 비합리적인 처사가 아닌가? 그땐 나조차도 너무 화가 나서 어디에라도 따져 묻고 싶은 심정이었다.
물론 그가 심각하게 다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 그 일로 입은 마음의 상처는 말로 하기 힘들 정도였다. 산재 보험으로 우리가 돌려받은 것은 단지 몸에 대한 치료비 몇 푼이었다. 그간 아이들을 위해서 진심을 다했던 그에게 그 일은 심각한 심리적 타격이 되었다. 계속해서 소년원에 머물기엔 그가 입은 정신적, 육체적 고통이 너무나도 컸다. 그리고 이렇게 소모적인 삶을 평생 끌고 나갈 자신도 없었다. 결국 그는 그렇게 힘들게 합격한 공무원 자리를 제 손으로 버리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그때 난 임신을 하고 있었다. 마흔에야 뒤늦게 찾아온 소중한 아이였다. 머지않아 출산을 하고 육아휴직을 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러니 그는 예전처럼 직장을 버리고 뛰쳐나올 처지가 못되었다. 우리에겐 키워야 할 자식이 생길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때부터 그는 직장 생활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자투리 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시험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당직을 하면서 밤을 새울 때도 틈틈이 공부를 했다. 집에서는 아픈 나를 위해 살림을 도와주기까지 하면서 말이다. 나는 정말로 그가 얼마나 열심히 노력한 것인지 지금도 잘 알지 못한다. 눈에 보이지 않게 조용히 혼자만의 사투를 벌인 것이다.
그는 자기의 전공을 살리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이전에는 생계에 대한 절박함에 떠밀려 되는 대로 아무 곳에나 지원했다면 이번에는 목표가 뚜렷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9급 공무원보다 어려운 시험이었기에 큰 기대를 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 사이 나는 열 달을 꽉 채워 아이를 무사히 낳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소년원 교사에서 농촌지도사로 변신하는 데 성공하고야 말았다. 또다시 기적 같은 일이 우리 앞에 펼쳐진 것이었다. 도내의 다른 도시로 발령을 받으면서 살던 곳을 떠나야 했지만, 앞날에 대한 기대감으로 들떠 낯선 곳으로 떠나는 것이 하나도 두렵지가 않았다.
역시 계절은 또 한겨울이었다. 갓난쟁이 아들과 그와 나는 오래된 주택 이층으로 월세를 얻어 이사를 갔다. 이사 가자마자 몇 년 만에 찾아왔다는 폭설로 도시는 형체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 속에 파묻혀 버렸다. 그리고 그 눈은 세상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 위에도 무겁게 쏟아져 내렸다. 우리는 갑자기 쏟아진 폭설 안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이유를 명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그는 어느 때보다도 춥고 어둡고 캄캄한 곳으로 추락하고 있었다. 나는 무구하게 웃는 어린 아들의 눈동자를 바라보면서도 함께 웃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아이 앞에서 울 수도 없었다. 무너져내리는 그의 모습을 망연히 지켜보면서 혼자서 몰래 두려움만 삼켰다.
그렇게 그의 우울증은 예고도 없이 재발했다. 새로운 도시에서의 삶은 첫발을 내디디지도 못한 채 그 자리에서 꽁꽁 얼어붙어 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