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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위 Oct 04. 2023

올리브나무 아래, 천 년의 사랑을 배운다.

박노해의 여섯 번째 사진 에세이 '올리브나무 아래'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자신이 선 자리에서 힘겹게 양심과 원칙을 지켜가는 사람들. 대가나 보상을 바라지 않고 자신이 가진 소중한 것을 기꺼이 내어주는 사람들.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해 나가는 사람들. 누가 보아주지 않아도 좋은 삶을 살아가며 선한 메아리를 울려오는 사람들. 나에게 빛이 되고 힘이 되고 길이 되는 사람 하나 올리브나무처럼 몸을 기울여 나를 기다리고 있다.


출처  올리브나무 아래, 박노해 사진 에세이



박노해 님의 신간인 여섯 번째 사진 에세이 '올리브나무 아래'를 펼쳐 들었다. 그분의 시가 내 삶에 큰 지진을 일으켰듯 그분의 사진들 역시 언제나 깊고 감동적인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번 신간은 특별히 박노해 님의 사진을 전시하고 있는 라 카페 갤러리 측에서 선물로 보내주신 것이라 더욱 뜻깊었다. 박노해 님의 사진과 글에는 한참을 머물러 사유하게 하는 강한 힘이 있다. 천 년을 산다는 올리브나무! 그 나무가 오랜 세월 사랑으로 지켜온 상처 가득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사진마다의 사연과 함께 아름답게 담겨 있는 에세이였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유실수이자 가장 오래 살아남는 나무인 올리브나무는 "나무 중의 으뜸", "우주의 기둥"으로 불려왔다. (p20)


올리브나무는 나에겐 다소 낯설고 멀게만 느껴지는 나무였다. 이국의 땅에서 나고 자라는 올리브나무를 사랑하게 된 것은 오로지 이 책 때문이었다. 사시사철 푸른 잎을 유지하고 봄에는 꽃을, 가을에는 열매를 맺는 올리브나무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 사는 나무이기도 하다. 그리스 크레타 섬에는 무려 3,000년을 넘게 산 나무도 있다고 하니 그 신성함을 말로 표현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한 그루의 올리브나무는 긴 세월 동안 수많은 인간들의 삶과 죽음을 지켜보았으며 그들의 영혼은 올리브나무 안에 고이 깃들었을 것이. 인간의 기준으로는 영겁의 세월이나 마찬가지인 천 년! 올리브나무는 구멍 나고 상처 나고 주름진 을 하고도 쉬지 않고 새순을 돋아낸다.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듣고는 왜 하필 올리브나무지? 하는 의문을 품었었지만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어느새 왜 올리브나무여야만 했는지 고개를 끄덕거리게 된다.   

"우리에게 많은 일이 있었지요. 땅을 빼앗기고 길을 빼앗기고 앞을 빼앗기고, 아이들이 자라나 청년이 되면 하나 둘 죽어가고.... 그런 날이면 올리브나무가 말해주곤 하지요. 오랜 세월 동안 나에게도 많은 일이 있었다고. 그래도 살아왔다고, 푸른빛을 잃지 않았다고. 고난 속에서도 최선의 열매를 맺어 주었다고. 그렇지요... 그렇게 살아가는 거지요." (p36)


팔레스타인의 어머니는 모든 걸 빼앗긴 채 폐허가 된 인생을 살아왔다. 하지만 그녀 사랑으로 안아주고 보듬어 주었던 것은 천 년의 시련을 이겨내며 살아온 올리브나무였다. 그녀는 올리브나무를 보며 위안을 받고 살아갈 힘을 얻었다. 자신의 온몸을 쥐어 짜내어 열매를 아낌없이 내어주는 올리브나무는 어머니와 같은 사랑을 품고 있는 존재이다. 올리브나무가 곧 어머니의 어머니이자 대자연의 어머니이다.


이스라엘은 2006년 레바논을 침공했다. 주변의 고층 건물은 다 파괴되었는데 폭격에 살아남은 올리브나무는 잿빛 먼지를 뒤집어쓴 채 새잎을 내고 있었다. 매일 폐허 더미를 헤치며 세간살이 하나라도 더 건져보려 애를 쓰는 여인들은 살아남은 이 나무를 '희망의 나무'라 불렀다. 이것도 희망이라고... 그래, 이것이 희망이라고. (p78)

 

나는 이 책에서 올리브나무의 강인한 생명을 보았고 자신을 희생하는 한결같은 사랑을 보았고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솟아나는 간절한 희망을 보았다. 모든 것이 황폐해진 땅 위에서도 여린 새잎을 피워내고야 마는 올리브나무, 그것을 보며 삶의 희망을 건져 올리고 있는 절박한 사람들. 이러한 작지만 위대한 희망의 연대가 우리를 살아 숨 쉬게 하는 게 아닐까?


"제가 맨 처음 타고 올라갔던 나무예요. 이 나무 아래서 놀고 일하다가 숙제도 해요. 제가 잘못하고 부끄러운 날에는요, 이 나무에 속삭이며 기대 울기도 해요. 저도 이 올리브나무처럼 단단하게 자라서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p98)


열두 살 마흐무드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늘 함께 있어주는 올리브나무이다.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부모님처럼 늘 곁에서 힘이 되어주는 존재. 그리고 소년은 올리브나무 아래에서 자기도 그러한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한다. 아무리 인생이 고달프고 척박할지라도 기댈 수 있는 존재가 하나만이라도 있다면 우리는 이 소년처럼 환하게 미소 지을 수 있으리라. 내 삶의 올리브나무는 과연 무엇일까? 가슴에게 묻는다.


나무는 나무를 부른다. 숲은 숲을 부른다. 오랜 기억과 투혼을 이어받은 후대가 힘차게 자라나는 땅에서, 희망은 불멸이다. 그가 앞서 걸어온 수백 년의 걸음 따라 100년, 30년, 어린 나무들이 푸르게 빛난다. (p100)


다시 희망이다. 한 그루의 나무가 두 그루의 나무가 되고 숲을 이루는 동안 수많은 어린 생명들이 뒤따라 태어나고 용감하게 앞장섰던 이의 발자취를 조용히 따라간다. 희망은 희망을 부르고 마침내 커다란 불길이 되어 세상을 환하게 밝힌다. 나의 삶이 희망의 길이 되기를, 나의 삶이 사랑의 길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저 천 년의 올리브나무처럼!!



2023. 10. 4 ~ 2024. 8. 25 ㅣ 무료 관람

서촌 '라 카페 갤러리'에서는 22번째 전시, [올리브나무 아래] 전이 열린다고 합니다. 박노해 님의 사진 에세이나 사진전을 통해 천 년의 올리브나무가 전해 주는 깊은 감동과 사랑을 느껴보시길 권합니다.


"나에게 올리브나무는 오래고도 한결같은 사랑 그 자체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 시대, 나는 천 년의 올리브나무를 바라보며 깊은 숨을 쉬고 다시 나의 길을 간다."

 - 박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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