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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위 Sep 18. 2023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심은

김소월의 '개여울' 과 아이유의 '개여울'

개여울


김소월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홀로이 개여울에 주저앉아서


파릇한 풀포기가

돋아나오고

잔물은 봄바람에 헤적일 때에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

그러한 약속이 있었겠지요


날마다 개여울에

나와 앉아서

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합니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심은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


https://youtu.be/kj71jzO5U8k


스산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제 입가를 끊임없이 맴도는 노래 한 곡이 있습니다. 바로 김소월 님의 시에 곡을 붙인 '개여울'이란 곡입니다. 저는 오래전에 적우가 부른 '개여울'을 통해 이 노래를 처음 접했습니다. 적우는 아주 독특한 목소리를 지닌 가수지요. 그녀의 허스키하고 중성적인 목소리는 거칠고 탁하지만 한없이 서글픈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아이유가 부른 '개여울'도 적우의 노래 못지않게 가슴을 적십니다. 아이유는 시리도록 맑고 투명한 목소리를 지녔지요. 아이유와 적우는 상반된 분위기를 자아내는 가수이지만, 둘 다 '개여울'의 시적 정서를 탁월하게 표현해 냈다고 생각합니다.  


 ‘개여울’은 ‘개천의 여울’을 말합니다. 물이 흐르는 지형에 경사가 생겨 흐름이 빨라지는 곳이지요. 나는 날마다 이 개여울에 나와 앉아 무엇인가 깊은 생각에 빠져 있습니다. 개여울과 그 앞에 앉아 있는 한 사람의 뒷모습이 이 시의 정경을 이루지요. 당신은 가도 아주 가지는 않겠노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무슨 일로 그리 떠나는지 알지 못한 채, 나는 그 약속만을 되새기며 개여울에 앉아 떠난 님을 기다립니다. 하지만 나는 압니다. 당신이 내게 한 약속은 돌아오겠다는 다짐이 아니라는 것을요. 헤어지더라도 영원히 잊지 말아 달라는 부탁의 말일 뿐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럼에도 나는 오늘도 홀로 개여울에 주저앉아 있습니다.  봄바람에 잔물결이 일고 파릇파릇 풀이 돋아나는 것을 바라보면서 그렇게 하염없이 개여울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출처   무아

 이 시와 노래에서 가장 애절한 대목은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이란 부분일 것입니다. 제 입가를 무한히 맴돌던 구절이기도 하고요.  '가는데 아주 가는 건 아니다.' 이런 역설적인 표현은 남겨진 이의 고통을 배가합니다. 속된 말로 희망 고문인 것이죠.  육신은 헤어져도 너와 나의 사랑은 잊지 말자는 말은 나를 사랑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도록 구속하는 말일 뿐입니다. 사랑하기에 헤어진다는 말처럼 무책임하고 비겁한 말로만 들립니다. 적어도 떠나가는 이가 할 말은 아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개여울에 나와 주저앉아 있는 시 속 화자의 뒷모습에 화가 납니다. 못 만날 줄 알면서도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이 가련하고 처량해 죽겠습니다.  


저 역시 어느새 사랑을 주고받는 거래로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나 봅니다. 이 시의 화자가 답답하다 처량하다 말하는 것을 보면요. 사랑하는 이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일도 떠나가는 이가 애틋한 사랑의 맹세를 남기는 일도 지금 시대엔 불가능하게만 보입니다. 사랑을 쉽게 시작하고 쉽게 끝내버리는 요즘 이런 사랑은 흔치 않습니다. 전화도 있고 메일도 있고 카톡도 있는 시대에 그와 함께했던 장소에서 홀로 하염없이 님을 그리며 기다리는 일이 과연 가당키나 할까요? 이런 사람이 있다면 다들 바보라고 비웃겠지요. 김소월 님이 이 시를 짓던 시대에는 전화도 메일도 없었기에 어쩌면 이렇게 느리고 답답한 사랑이 가능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바보는 망부석이 되어 평생을 한자리에서 한 사람만 기다렸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하지만 가만히 개여울을 들여다보면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날카롭게 가슴을 스치고 지나갑니다. 사랑은 하염없는 마음을 전제로 하는 것이며,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는 당연한 이치를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어린 시절 우리들이 꿈꾸었던 지고지순한 사랑은 이런 것이었지요.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라고 말할 수 있는, 평생을 가슴에 간직하고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사랑이었지요. 어느새 그러한 순수를 잃어버리고 '갈 테면 가고 올 테면 오라지' 하는 마음으로 셈놀이 하듯 사랑을 말하는 요즘 세태가 씁쓸해집니다. 


이 노래를 따라 부르는데 왜 이렇게 제 가슴은 아프고 아린 것일까요. 숭고한 사랑의 본능이 아직은 죽지 않고 제 안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까닭일까요. 그렇다면 참 다행입니다. 제게 아직까지 사랑을 노래할 자격은 있는 걸 테니까요.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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