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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위 Oct 31. 2023

소리를 보는 시각장애인 소년, 꿈이 빛나다.

2023 전주시 올해의 책, 김은영의 '소리를 보는 소년'

역사 속, 시각장애인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이 책의 시작을 함께한 질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미처 알지 못했던 세상을 보았습니다. 암흑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꿈을 좇아간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그 진정한 '밝음'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 '소리를 보는 소년' 작가 '김은영'의 말 중에서


앞이 캄캄하다. 이 말은 육신의 눈과 마음의 눈 모두에 해당되는 말일 것이다. 소년은 그야말로 앞도 보이지 않고 미래도 보이지 않는 절망 속에 살고 있었다. 그 캄캄한 상황 속에서 소년은 우연히 독경(경전을 소리 내어 읽는 불교의식) 소리를 만나게 되고 마음이, 꿈이, 세상이 환하게 빛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시각장애인 소년의 꿈을 향한 시련과 성장 이야기가 '소리를 보는 소년'이란 소설의 주요 내용이다. 이 책은 전주시가 올해의 책으로 선정한 청소년 문학이다. 책장에 몇 달째 꽂아두기만 했던 책을 이제야 꺼내 들었다. 청소년 문학이라고 하지만 성인이 읽기에도 충분히 재미있고 감동적이었다. 마지막 장을 덮을 땐 가슴이 훈훈하고 따뜻해져서 한참을 여운에 잠겨 있기도 했다. 지금도 어디에선가 소년의 맑고 고운 독경 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는 것만 같다.   



장만은 앞이 보이지 않는다. 어린 시절 지독한 열병을 앓은 후로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이 암흑으로 변해 버렸다. 눈먼 장만에게 세상은 무섭고 냉혹하기만 하다. 유일하게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아버지와 동생 덕수뿐이다.  그토록 사랑을 주고 장만을 사람답게 살게 하려고 몸부림치던 어머니는 전염병이 창궐했을 때 세상을 떠나버렸다.


장만은 자신이 점점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간다는 것에 자괴감을 느꼈다. 고향 마을에서는 침놓는 법도 배우고 있었고 마을 사람들의 배려 덕분에 맹인(소설의 표현을 빌려 '맹인'으로 통일합니다.)으로서의 삶에도 그럭저럭 적응해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먹고살기 위해 가족이 한양으로 나온 뒤부턴 장만이 할 수 있는  아무것도 없었다. 동생 덕수가 도와주지 않으면 집 밖에 혼자 나갈 수도 없었 아버지와 동생이 죽도록 일을 해서 벌어온 돈을 그저 가만히 앉아 축내기만 하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장만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은 새끼를 꼬는 것. 그것으로나마 살림에 보태려 하지만 가난한 식구들은 늘 배를 곯기 일쑤였다.


위험하니 밖으론 절대 나가지 말라는 아버지의 당부를 어기고 장만은 동생 덕수를 꼬셔서 관청에서 주는 새끼 꼬는 일을 하러 나갔다. 그 일만은 자신 있었기에 제 손으로 돈을 벌어오고 싶었다.  그런데 누군가의 실수로 그만 불이 나 버렸 장만은 죽을 뻔한 위기를 넘기고 화상을 입었다. 설상가상으로 장만은 불을 낸 범인이라는 누명을 덮어쓰고 곤장까지 맞게 되었다. 아버지는 그런 장만과 덕수에게 불같이 화를 냈다. 장만은 다친 몸보다 가슴이 더 아팠고 서러움에 복받쳤. '너는 집에 가만히 있어. 그게 우리를 덜 힘들게 하는 거야.'라는 아버지의 말에 장만은 부담스러운 짐이 되어버린 자신의 존재에 더 큰 비참함을 느꼈다.


그러던 어느 날 기우제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구경을 나갔다가 장만은 난생처음 독경이란 것을 듣게 되었다. 명통시라는 관청에서 나온 맹인들은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한 목소리로 장엄하게 독경을 외웠다. 한마음이 되어 올린 기도가 하늘에 가 닿기라도 한 듯이 때마침 하늘에선 비가 내렸다. 장만은 독경 소리에 마음을 홀딱 빼앗기고 말았다. 그리고 맹인도 나랏일을 하는 관청에 들어갈 수 있으며 배불리 먹고살 수 있게 된다는 말을 듣자 버지와 동생을 위해서라도 독경사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하기에 이른다.


장만은 유명한 독경사였으나 명통시의 세력 다툼에 신물이 나 초야에 묻혀 사는 하태수를 찾아갔다. 그의 제자가 되어 매일같이 눈만 뜨면 독경을 외우기 시작했다. 1년이란 시간 동안 갈고닦은 실력으로 명통시 시험을 보러 가던 날,  장만을 눈엣가시처럼 여기고 괴롭히던 춘택의 모략으로 장만은 시험장 근처에도 가보지 못하고 말았다.  또다시 1년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 앞에서 장만은 춘택을 원망할 새도 없이 그만 맥이 탁 풀려버리고 말았다. 그러던 어느 날 죽어가는 딸아이의 독경을 부탁하러 한 아줌마가 장만을 찾아왔다. 부담감에 거절하자 자기의 전 재산인 가락지를 빼어 주며 딸이 마지막 가는 길에 기도라도 올려 주고 싶다고 간청을 했다. 장만은 어린아이를 위해 진심을 다한 독경을 외우고 아이의 손에 가락지를 되돌려주고는 돌아왔다. 그날, 독경에 진심을 담는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조금은 알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태수와 친한 허소경이 장만을 명통시에서 일하게 해 주었다. 심부름을 하면서 독경을 배워서 어서 빨리 관리가 되라는 격려도 해 주었다. 하지만 장만은 그곳에서 얼굴이 반쪽이 되도록 시달리면서 일만 할 뿐 독경 실력을 기를 수는 없었고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시기와 질투, 모략과 다툼 등을 직접 목격하고는 상처받고 지쳐갔다. 춘택 역시 그곳에서 일어난 세력 다툼으로 쫓겨났다는 사실을 듣게 되었고 자기를 돌봐준다던 허소경도 장만을 자기의 세력을 기르기 위한 수단으로 여겼다는 걸 알게 되었다. 결국 명통시를 제 발로 걸어 나온 장만은 다시 하태수의 집으로 되돌아갔다.


하태수는 장만이 되돌아올 걸 미리 알고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장만에게는 진짜 독경사가 되고자 하는 순수한 꿈만이 남아 있었다.


"나를 행복하게 하는 독경, 나는 독경으로 부와 명예를 얻으려 했던 내 욕심을 놓고부터 진정한 행복을 보게 됐다. 남들 눈에는 이런 보잘것없는 집에서 자기 고집에 빠져 사는 노인네로 보일지 모르지만.... 허허."


하태수의 웃음소리를 들은 장만은 이제야 자신이 가야 할 방향을 찾은 듯 마음이 놓였다. 장만은 이제 하늘을 향해 독경을 외우는 것 자체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누군가에게 위로와 응원이 되는 독경을 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할 것 같았다.


출처  무아


나의 글쓰기도 소년의 독경과 마찬가지였다. 처음엔 나를 위로하기 위해 그리고 더 나아가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응원이 되어 주기 위해 시작한 글쓰기였다. 그런데 나 역시 소년처럼 어느 순간 부와 명예에 눈이 멀기 시작했고 나를 일으키는 글쓰기가 아니라 나를 소진시키는 글쓰기에 매달리고 있었다. 나를 행복하게 하는 글쓰기!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그것이 내가 글을 쓰는 목적이자 이유여야만 다. 가슴속에서 스멀스멀 올라온 욕심에 잠시 눈이 멀었었나 보다. 그럼에도 꿈을 향해 내딛는 발걸음은 그게 무엇이라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소년이 명통시에서 하찮은 심부름을 하던 순간들도 낯선 곳에 가서 돈을 벌기 위해 독경을 하던 순간들도 산에 올라가 하늘을 향해 진심을 다한 독경을 외던 순간들도 하나같이 꿈을 향한 과정의 일부였던 것이다. 나도 나의 글쓰기가 결코 무용하지 않았다고 되뇐다. 누군가에게 힘을 주기는커녕 나 하나도 위로하지 못하는 보잘것없는 글을 썼을 때에도 많은 이들의 공감 속에서 스스로 우쭐해지는 글을 썼을 때에도 돈 한 푼 나오지 않는 보람 없는 글을 썼을 때에도 먹고사는 일에 도움이 되는 글을 썼을 때에도 나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이 맹인 소년의 소망처럼 나중엔 모르지. 나도 최고의 작가가 되어 구걸하지 않아도 나를 불러주는 이들이 많아질지도 말이야. 그러한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르지 않는가.


장만아, 함께 꿈이 빛이 되는 세상에서 살자!


출처 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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