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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위 Dec 27. 2023

오직, 너뿐이야!

사랑인가 집착인가. 취향인가 중독인가.

오직

 - 여러 가지 가운데서 다른 것은 있을  없고 다만.


'오직, 너뿐이야.' 연인이나 부모, 친구로부터 들었을지도 모르는 말 '오직'. 나는 '오직'이란 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오직은 진퇴양난, 사면초가를 떠오르게 한다. 상대를 가둬두고 답은 하나뿐이라고 강요하는 상황은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삶에서 '오직'이 적용될 경우가 과연 얼마나 있을까? '오직'은 말을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숨 막히게 한다. 서로를 감옥에 가두어두고 괴롭히는 잔인한 말이다. 그럼에도 종종 우리는 그 말을 듣고 싶어 한다.


연인이나 부모, 친구에게 듣는 이 말은 그들의 나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확인시켜 주고, 직장에서 듣는 이 말은 나의 존재 가치를 한층 부각시켜 주는 듯하다. 왠지 내가 다른 사람보다 특별해지는 느낌마저 든다. 마음이 가난한 자들이 빠지기 쉬운 전형적인 덫이다. 타인의 인정과 사랑에 목마른 자들이 걸려드는 잔인한 거미줄이다. '오직'이라는 말. 그것은 사랑이 아닌 집착일 수 있으며, 믿음의 증표가 아닌 지배의 무기가 될 수도 있는 무서운 말이다.


오직, 너뿐이야!



나는 외동딸이다. 그래서인지 태어나서 지금까지 '오직, 너뿐이야!'라는 말을 귀가 닳도록 들어왔다. 문제는 대부분의 경우 '오직 너만을' 깊이 사랑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오직 너뿐이니' 네가 모든 걸 책임지고 잘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내게 지워지는 부담감과 책임감이 너무 커서 외동딸인 것이 저주처럼 느껴지던 날들도 많았다. 그것은 평생을 따라다니는 굴레였고 지금 이 순간에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오직'의 감옥 속에서 한 발짝도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부모님 역시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내 삶을 '오직'의 창살 속에 가둬두는 것을 당연시했 권력을 휘둘렀다.


물론 어떤 외동은 나와는 정반대의 삶을 살지도 모르겠다. 주도권이 어느 쪽에 있느냐에 따라 '오직'의 칼자루를 쥔 사람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천하의 말썽쟁이 외동이 있다고 치자. 부모는 '오직 하나뿐인 자식'이기에 온갖 고통과 희생을 감내하면서도 자식을  바라지한다. 사람은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다고 하지 않던가? 형제자매가 여럿인 집안에서는 문제아 자식 한 명에게 부모가 모든 걸 올인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자식들도 잘 안다. 그러나 오직 하나뿐인 자식은 자신이 받는 대접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오직'의 권력을 휘두르는 왕으로 군림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남녀 간에도 마찬가지다. 사랑이 절정에 달했을 때는 서로의 눈에는 오직 상대방밖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서서히 상대방 말고도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래야만 정상이다. 끝끝내 '오직 너뿐이야'를 외치는 연인은 위험한 사랑을 하는 경우가 많다. 스스로 만족할 만큼의 사랑을 얻고자 상대를 구속하고 지독하게 강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오직, 너뿐이야'는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고백이지만 더불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협박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직장에서도 그렇다. 이 일을 할 사람은 오직 당신뿐이야.  나를 인정해 주는 달콤한 말을 하며 부담스럽거나 과다한 업무를 맡긴다. 능력을 인정받고 노력한 만큼의 대가도 충분히 돌려받는 상황이라면 상관이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오직'은 '노동력 착취'를 위한 감언이설에 머무를 때가  많다. 번아웃이 올 정도로 밤낮없이 일만 하다가 어느 날 문득 미친 듯한 억울함이 밀려온다면, '오직'은 에게 달콤한 당근이 아닌 잔인한 채찍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나를 구속하고 지배하기 위한 권력자의 수단이었을 뿐이다.


물론 '오직'이 이렇게 부정적인 의미로만 쓰이는 것은 아니다. 열정적이고 지고지순한 관심과 사랑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사랑이 집착과 한 끗 차이일 뿐이라 구분하기가  어렵다는 게 문제다. 아들은 만화광이다. 아홉 살이나 되었으니 이제 아들의 취향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도덕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문제가 있거나 안전에 위험한 일이 아니라면 되도록 아이의 자유 의지를 제약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아들은 점점 더 깊이 만화에 빠져들어 버렸다. 거리를 걸으면서도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도 밥을 먹으면서도 만화책을 한시도 눈에서 떼지 못하는 아들을 보며 나는  탄식했다. '오직 만화, 만화, 만화!' '오직'이라는 말을 할 때의 내 마음을 곰곰이 들여다보니 아들의 지독한 사랑을 감탄하는 마음이 반, 집착이나 중독이 아닐까 걱정하는 마음이 반이었다.


내게도 '오직, 너뿐이야'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나 취향있었? 머릿속에 스치듯 떠오르는 대상들이 있지만 서둘러 커다란 걸레로 깨끗이 닦아내 버린다. 앞뒤를 가리지 않는 음의 전력 질주에 제동을 걸어보는 것이다. 나는 이제 치기를 다스릴 줄 아는 진짜 어른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사랑이 집착이 되는 순간, 또는 취향이 중독이 되는 순간, '오직'의 칼날은 상대를 찌르고 결국엔 자신까지도 공격하 될 테니까.


그러니

오직, 너뿐이야!

아니고

너는 너일 뿐이야!



#오직

#부사

#공감에세이

#집착

#중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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