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정할 수는 없지만 미루어 짐작하거나 생각하여 볼 때 그럴 가능성이 크다는 뜻을 나타내는 말. 개연성이 높을 때 쓰는 말이나, ‘틀림없이’보다는 확신의 정도가 낮은 말이다.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 아니 겨울이었던가? 살아온 시간이 몇 년이든 우리는 모든 걸 다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한다. 내가 무엇을 했건 들었건 보았건 확신할 수가 없다. 특히 기억이라는 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영역이어서 더욱 그렇다. 한 건지 본 건지 들은 건지조차 명확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렇게 아스라이 먼 기억이나 흐릿한 마음,정확하지 않은 생각에 대해 우리는 조심스럽게말한다. 작은 목소리로 주저하면서 '아마'라고...
나의 마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내 마음인데?라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말로 내 마음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안다고 착각하거나 안다고 믿을 뿐이다.백 퍼센트 맞다고 주장하긴 어려워도 왠지 아니라고 말하기는 싫을 때, 우리는 '아마'를 소환한다. 흔들리는 다리 위에서 '아마'라는 안전장치에 기대어 내 생각이나 마음을아슬아슬하게 꺼내 보인다. 속으론 이대로 거짓의 나락으로추락해 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품고있으면서도 겉으론 적어도완벽한 거짓은 아니니까라고자위하면서.
아마, 그는 그랬을 거야.
한 영화배우의 비보를 들었다. 연기도 잘하고 이미지도 좋았던 그가 바닥으로 추락하는 데는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마약'이라는 범죄에 연루되었다고는 하나 우리는 그 배우의 진실을 다 알지 못한다. 모든 건 '아마'로 시작해서 '아마'로 끝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경찰과 검찰의 조사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진실을 밝혀냈는지도 잘 모른다. 다만 우리가 접한 것은 언론의 보도와 죄인처럼 참담하게 망가져버린 그의 잿빛 얼굴일뿐이었다. 그가 세상을 등지면서 하고자 했던 말 역시 무엇인지 잘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건,'아마'라는 기사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고 그'아마'는 또다시사람들 입에 한동안 오르내릴 것이란 점이다.
'아마 그럴 거야.'라는말은 그렇다거나 아니라는 것보다 훨씬 무섭다. 우리는 '아마'라는 말을 아주 믿지도 않지만 전혀 안 믿지도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지인이 한 말을 두고 '아마 거짓말일 거야.'라고 말했다고 치자. 그 말을 듣기 전과 후가 똑같을 수 있는가? 예전처럼 온전히 다 믿을 수 있는가? 그렇다고 믿지 않을 수 있는가? 우리는갑자기엄청난혼란에 빠져 버린다. 하지만 적어도 지인에대한 마음에 미세한 균열은 생기게될것이다. 그 배우에 대해서도 그랬다. 진실이 어떻든 간에 무수한 추측이 난무했고 '아마 그는 그랬을 거야.'라는 말이 온 세상을 뒤덮자, 더 이상 그는 믿을 수 없는 사람인 것으로치부되기 시작했다. 나부터도 그랬다.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그럼에도 우리는 '아마'라고말하고싶은 유혹을 느낄 때가 참 많다. 확신은 없어도 내 생각이나 의견 또는 기억이 맞다고주장하고는 싶기 때문이다. '아마'라는 보험에 들어 놓으면나중에 발뺌하기도 훨씬 쉽다는 걸 잘 안다.내가 언제 확실하댔어?어쩌면 약아빠지고 교활한 마음이 '아마'와 손을 잡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주로 나 자신을 속이거나 합리화하는 데 이 말을 써 왔던 것 같다. 나의 마음을 증명해야만 할 때, 그냥 '아마'라고 답함으로써 책임을 회피하려 했던 것이다. 나의 진심을드러내는 것이 피로했고 어떨 땐 나조차도 나의 마음을 확신할 수가 없었으니까. 그를 사랑하니? '아마, 사랑하나 봐.' 이 정도만으로도 나는 결혼을 하고 잘 살 수있는 사람이니까.
어떻게 보면 '아마'는 아주 영악하지만한편으론꼭 필요한 말 같기도 하다.안타까운 배우의 사건처럼 타인에 대한 '아마'는 잔인한 공격이 되기도 하지만,나 자신에 대한 '아마'는 나를 지나치게 궁지에 몰아넣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나도 모르겠는 내 마음에 대고 혹은 기억이나 생각에 대고 똑바로 진실만을 답하라고 심문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우리 삶이 백 퍼센트의 확신과 믿음으로 이루어질리는 없기에 우린 비싼 대가를 치르면서도 '아마'라는 언어의 보험을 들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나약한 인간들이 휘두르는 잔인한 무기이자 마음을 기대고 싶은 목발 같은 '아마.' 오늘도 나는 이 말을 나도 모르게 많이 쓰게 될 것이다. 부디 나의 '아마'가 죄 없는 누군가에게 억울함을 주지 않기를 간절히 빌어 본다. 더불어 내 마음에 있는 '아마'에게 스스로를 속이는 비겁한 짓은 그만두자고 전한다. 그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