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지방의 작은 소도시에 살고 있었다. 남자가 사는 집은 지은 지 사십 년도 더 되어 보이는 낡은 아파트였다. 외벽으로는 짙은 마스카라를 한 여자의 눈물 같은 검은 얼룩들이 여러 개의 선명한 세로줄을 긋고 있었다. 문득 여자가 사무실에 처음 찾아오던 날 한쪽 뺨에 길게 패어 있던 땀자국이 겹쳐 떠올랐다. 왜 오래되고 슬픈 것들에는 하나같이 보기 싫은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일까? 묵은 슬픔은 어째서 아래로 아래로 흘러내려 어둡고 좁은 틈 속으로 고이고 잠기기만 하는 것일까. 하지만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고통은 진짜 고통이 아닐지도 모른다. 고통의 응축물 같은 오래된 아파트 안에는 엘리베이터조차 없었다. 검은 얼룩들이 곰팡이 꽃을 만나 수많은 포자로 퍼져 나가며 아파트 내부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양쪽 허벅지가 뻐근하게 저려 오기 시작할 즈음에야 남자가 산다는 꼭대기 층에 도착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아파트는 꼭대기 층이 일 층보다 값이 싸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일반적인 아파트와는 정반대인 것이다. 인생을 뒤로만 걸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오래 살수록 존재가 점점 더 희미해져 가기만 하는 사람들. 한 사람의 인생은 그 사람이 사는 공간이 많은 것을 대신 말해주기도 한다. 육십이 넘은 남자는 자신의 나이보다 많은 계단을 하루에도 여러 번 오르고 내리며 고통을 양 옆구리와 허벅지에 주렁주렁 매단 채로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남자에게 그런 고통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전단지가 덕지덕지 붙어 있는 빛바랜 현관문 앞에서 너는 깊은 한숨을 토해 냈다.
초인종을 아무리 눌러도 안에서는 인기척이 없었다. 재이는 갑자기 현관문을 세게 두드리기 시작했다. 쿵쿵쿵 울리는 소리가 낡은 아파트 전체로 짐승의 포효처럼 퍼져 나갔다.
“그러지 마. 너무 시끄럽잖아.”
“노인들은 종종 초인종 소릴 못 듣기도 하잖아요. 이렇게 문을 두드리면 들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소용이 없었다. 이번엔 남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중단될 때까지 기다려 봤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 며칠 전부터 전화도 되지 않았다고 했다. 불길한 예감 탓인지 으스스한 소름이 등줄기를 타고 찌릿하게 온몸을 쓸어내렸다. 너는 애써 대수롭지 않은 척하며 말했다.
“집에 안 계시네. 어디 나갔나 봐. 나중에 다시 올까 아니면 근처에서 좀 기다려 볼래?”
“아뇨. 그분이 거의 매일 가는 북카페가 하나 있어요. 거기 한 번 가 봐요.”
북카페는 아파트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규모는 별로 크지 않았지만, 주인의 섬세한 손길과 다정함이 느껴지는 다붓한 공간이었다. 손님들이 마음 놓고 책을 꺼내 읽을 수 있도록 사방 벽을 모두 책장으로 만들어 놓은 게 눈에 띄었다. 카페 구석에는 한 여자가 이미 커피를 앞에 두고 책 속에 빠져들어 있었다. 주인 역시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조용히 자기가 읽고 있는 책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타인의 독서를 방해하지 않으려는 조심스러운 배려와 누구든 자유롭게 머물러도 좋다는 무언의 허용이 카페 전체를 느긋한 온기로 휘감고 있었다. 너는 그 공간이 단박에 마음에 들었다. 카페 내부를 구석구석 돌아보던 너와 재이는 책 한 권씩을 집어 들고 주인에게로 갔다. 너는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 소설을 골랐고 재이는 와인 색 표지의 작은 시집 한 권을 골랐다.
“사장님, 죄송하지만 여쭤볼 게 하나 있어서요.”
“네, 말씀하세요.”
“여기 단골이시던 남자분에 대해 궁금한 게 있어서요. 60대 후반에서 7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나이 든 분이시고 저기 사거리 앞 수정 아파트에 사시는 분인데 혹시 기억하시나요?”
“그럼요, 당연히 알죠. 연세 드신 분들은 아무래도 시력이 안 좋아져서 책 읽기를 그만둔 경우가 대부분이거든요. 근데 그분은 매일같이 책을 읽으러 오셨어요. 두꺼운 돋보기를 끼고도 몇 시간씩 앉아서 읽다 가곤 하셨죠. 근데 그 어르신에 대해선 왜 물으시는 거죠?”
“그분과 아주 가까운 분이 행방불명되셨는데, 혹시 아는 게 있으신가 물어보려고 왔어요.”
“실은 어르신도 며칠째 오지 않으셨어요. 안 그래도 걱정하고 있던 참이었지요. 연세도 많으시니 어디 아프신 건 아닌가 싶어서요.”
“집에도 안 계시고 전화도 받지 않으세요. 여기엔 계시길 기대하고 왔는데……. 혹시 그분을 찾는 데 단서가 될 만한 게 있다면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글쎄요. 평소 늘 점잖고 과묵하신 분이었어요. 근데 얼마 전부터 무척 들떠 있으시더라고요. 그렇게 어린아이 같은 표정을 지으시는 건 처음 봤지요. 그러더니 느닷없이 말도 못 붙일 만큼 어둡게 가라앉아 있으시더라고요. 걱정이 돼서 물었더니 섬이 사라졌다는, 알 수 없는 말만 반복하셨지요. 다른 말은 일절 하지 않으셨고요.”
재이와 너는 자정이 다 되어서야 사무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아무런 소득도 없는 출장이었다. 정훈은 퇴근도 하지 않고 둘을 기다리고 있었다. 세 사람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다시피 하고 날이 밝자마자 함께 남자를 찾아 나섰다. 이번엔 여자가 편지에 적어 준 장소로 가보기로 했다. 두 사람이 젊은 시절에 갔다던 그 바닷가로. 그들을 당장 찾아내지 못하면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말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끊어질 듯한 오래된 현을 타고 세 사람 사이를 팽팽히 지나가고 있었다. 너는 어린 시절 이후로 단 한 번도 바다에 가 본 적이 없었다. 두 남자와 함께 도착한 바다는 여전히 낯설고 어색했다. 하지만 예전처럼 두렵지는 않았다. 겨울의 한기에 바닷물도 꽁꽁 얼어붙은 채 입을 다물고 있었다. 열기가 한소끔 빠져나가 버린 바다는 어쩐지 바짝 주름진 얼굴처럼 보였다. 너는 그런 바다 앞에서 왠지 모르게 안도했다. 이제야 아무 공포심 없이 바다 가까이로 다가갈 수 있었다.
세 사람은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했지만 어디로든 일단 가봐야 했다. 한때 두 사람의 열정이 서로를 열렬히 끌어안았던 장소를 찾아내기만 한다면 둘의 행방도 금세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냥 그런 막연한 기대를 했다. 하지만 세 사람이 품고 있는 바다가 다르듯, 두 남녀의 바다도 전혀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각자의 바다가 밀려 들어오고 쓸려 나가는 동안 세 사람은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는 낯선 이방인일 뿐이었다. 코끝이 떨어져 나갈 듯 시릴 때까지 바닷가 주변을 걷고 또 걸었다. 살이 에일 듯한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바닷가를 거니는 사람은 셋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어느 시인은 말했다. 겨울 바다에 가서 미지의 새를 찾으려 했지만 보고 싶은 새들은 다 죽고 없었다고. 너는 무엇을 찾으러 바다에 왔는가? 문득 두 남녀를 찾는 것은 죽은 새를 찾는 것만큼이나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모든 소란의 원인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존재한다고 믿었던 두 남녀의 해묵은 갈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들은 미지의 새를 찾아 이미 멀리 떠났거나 스스로 미지의 새가 되어 다른 세상으로 날아가 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어리석은 이방인들은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것을 찾아다니는 틸틸과 미틸이 되어 한겨울 바닷가를 정처 없이 배회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