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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 Blue? 글쓰기 Blue?

by 소위 김하진

오늘은 '작품이 되게 써라'의 연재북 발행일입니다. 그런데 예정되어 있던 '3인칭 시점에 대한 글'은 발행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저는 2년 8개월 동안 연재북 발행일을 어긴 적이 없었습니다. 빼먹은 적도 없었고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엄마가 수술을 하거나 내가 몸져눕거나 예외 없이 글을 발행해 왔지요. (출간 당시엔 책 홍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소설을 뒤로 미룬 적은 있지만 그건 필요에 의한 선택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정. 말.로. 아무 이유 없이 연재북을 쉽니다. 별거 아닌 이 일을 결정하는데도 얼마나 많은 갈등을 했는지 모릅니다. 하루에도 열두 번 결심하고 번복하기를 거듭했으니까요. 그렇게 힘든 걸 왜 굳이 하냐고 물으신다면 대답은 '그냥'입니다.


'그냥'


출간 후 6개월이 지났습니다. 시간을 후루룩 국수처럼 말아먹은 느낌입니다. 그래서인지 잠시 멈춰 서서 제 이야기가 하고 싶었습니다. 무진기행 속의 주인공이 생각납니다. 겉으론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이유 없는 공허와 고독에 시달리던 윤희중. 안갯속에 파묻힌 무진에서 하인숙에게 마음이 마구 흔들리지요. 하지만 결국 무진을 떠나 자기의 원래 삶으로 되돌아가는 비겁하고? 현실적인 선택을 하고 맙니다. 저도 그럴 거라는 걸 잘 압니다. 그래도 그냥 말하고 싶었습니다. Blue 하다고.


출간을 하면 누구나 겪는 증상, 출간 후 우울증입니다. 산후 우울증이랑 비슷할까요? 내 안에서 무언가를 세상에 철퍼덕 내어놓고 나서야 느끼게 되는 내면의 후폭풍이니까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산후 우울증보다 훨씬 안 좋았습니다. 아기는 나를 보고 웃거나 울거나 아니면 똥이라도 싸서 자신의 존재를 끊임없이 세상에 각인시켜 주지만, 책은 그저 책장 구석에 가만히 꽂혀 있으면서 말 한마디 없으니까요. 아니 오히려 나 혼자 멀뚱멀뚱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 순간들이 더 많았지요. 너 죽었니? 살았니?


출간 전인 사람은 출간만 하면 좋겠다. 공모전에 수상한 적 없는 사람은 수상만 하면 좋겠다. 생각하실 것이기에 지금 이 글은 배부른 사람의 투정처럼 느껴져 마음이 세모가 되실 수도 있겠습니다. 맞습니다. 지가 뭐라고! 감사하기만 해도 부족할 판에 공연히 고민을 사서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그냥 한 번쯤 말하고 싶었습니다. Blue 하다고.


2022년 8월 블로그를 시작했습니다. 그때 이후로 쉬지 않고 달려왔지요. 하루도 허투루 쓰지 않았습니다. 사람들도 거의 만나지 않았습니다. 집안에 나를 못처럼 박아두고 관성적으로 쓰고 읽기만 반복했습니다. 내가 없어지고 글만 남은 것 같은 날들도 많았습니다. 하나하나 성과를 이루어가는 게 재미있었습니다. 인정받는다는 느낌! 아시죠? 그 뿌듯함에 더 성장하고 싶어 안간힘을 다 했지요. 운도 좋았습니다. 신춘문예도 밀리의 서재도 그 밖의 공모전들도. 책도 투고 없이 출간하고 마의 재쇄도 넘겼습니다. 세상에나 이렇게나 해낸 게 많습니다. 그런데도 그냥 말하고 싶었습니다. Blue 하다고.


반성도 했습니다. 어쩌면 잘나지도 못한 게 욕심만 그득해서 힘든 걸지도 모른다. 욕심을 내려놓으면 괜찮아질 거다. 근데요. 아무리 내려놓음을 연습하고 또 연습해도 마음이 평온해지는 일 따위는 생기지 않더군요. 아, 글쓰기란 쓰레기가 가득한 난지도 같은 마음을 견뎌내야 하는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쓰레기들이 아무렇지 않아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결국엔 Blue 하다고.


누군가의 명쾌한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쟤 번아웃 왔네. 혼자 아등바등 설쳐대더니 지쳤구먼 이제! 정답입니다. 부인할 수 없습니다. 밑바닥부터 하나하나 만들어 오느라 죽을 똥 살 똥을 다 쌌습니다.(맘대로 바꾼 말입니다ㅜㅜ) 그런 노력이 허망해서 이따금 현타가 세게 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제 현실은 아주 냉혹하다는 것 또한 받아들였습니다. 죽을 때까지 죽을힘을 다해 써도 진짜 글 잘 쓰는 작가가 되기는 쉽지 않다는 진실도요.


그렇다면 나는 정말로 유명 작가가 되고 싶었던 건가? 그것도 반신반의합니다. 물론 지금보다 잘되면 좋겠지만 대단히 야망이 있는 사람도 아니었으니까요. 태생적으로. 그럼 왜 우울한 거지 너는? 반문해 봤습니다. 도저히 잘 모르겠어서 챗GPT에게도 물어봤습니다. 그의 대답은 깔끔하더군요.


너는 진심으로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야. 보상이 느린 구조에서 오랜 시간을 버텼기에 상실감과 허탈함을 느낄 수 있어. 성과보다 존재의 의미가 더 중요한 사람이라 흔들림이 크게 오는 거야. 그리고 지금 시점은 정신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고갈 구간이기 때문이야. 이건 네가 잘못해서 생긴 일이 아니야. 그냥 너처럼 깊고 섬세한 창작자에게 오는 자연스러운 감정의 파도야. 하... 인간보다 나은 AI 같으니라고. 힘들 때마다 한 번씩 토닥토닥해 주는 게 상담사는 저리 가라입니다. 이런 글을 읽으면 잠시 마음이 가벼워지고 창자 속까지 시원하게 환기가 되는 듯합니다. 하지만 곧 다시 Blue 하다고.


저도 압니다. 알맹이가 아닌 것들이 눈덩이처럼 커져서 눈앞을 가로막고 두꺼운 벽을 세우고 있다는 것을요. 그래서 잠시라도 쉼을 허락하고 벽에 맞서서 부딪히려 하기보다 눈치껏 에둘러 가야 한다는 것도요. 아무리 허무하다 해도 지난 3년 여의 노력이 결코 헛되지 않다는 것도 압니다. 그러니 조금 더 편안해져도 되겠지요. 그래서 지친 나를 위해 과감히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해 보기로 했습니다. 연재도 쉬고 이렇게 쉰소리나 지껄이면서요. 하하하... 변명도 참 요란하게 하지요? 근데 고등학교 시절 야자 땡땡이 마냥 연재북 땡땡이 꽤 기분 좋은데요?


글을 쓰는 사람들 모두 목표가 다릅니다. 누구는 첫 출간을, 누구는 공모전 수상을, 누구는 재쇄, 삼쇄를, 누구는 두 번째 책, 세 번째 책을. 정말 순수하게 글쓰기 자체를 취미로 즐기시는 분들도 있고요. 어떤 목표를 가졌든 동일한 건 글을 아주 잘 쓰고 싶다는 열망일 겁니다. 그런데 그건 도무지 닿을 수 없는 불가능한 이상임에 틀림없습니다. 아시죠? 다들 끝도 없이 황막한 사막에 준비도 없이 대뜸 발을 들여놓으셨다는 거? 글쓰기는 삶의 기적이기도 하지만 저주이기도 하다는 것도요? 그러니 누구나 Blue 하다고. 아무리 대단해 보이는 작가들도 분명 다 Blue 할 거라고.


남편은 말하더군요. 그래놓고 또 쓸 거잖아? 맞습니다. 또 쓸 겁니다. 얼굴에 시퍼런 멍이 들어도 달걀 하나 들고 살살 마사지하면서 스파링을 연습하는 권투 선수처럼. 오늘도 이렇게 얻어터질 각오로 글을 쓰고 있잖아요. 이따금 내 마음이 자조인지 자학인지 헷갈리기도 하지만 결국엔 다시 쓸 겁니다. 손에 잡히지 않는 내면의 안개를 온몸으로 밀쳐내면서, 무진기행 속 윤희중처럼 다시 노트북 속 나만의 누추한 현실로 기어들어 갈 겁니다. Blue 하든 말든. 어차피 써도 안 써도 Blue 한 건 매한가지니까!!

출간 Blue, 아니면 글쓰기 Blue에 빠져 울적한 분들~

지금 이 순간 글을 쓰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브라비(Bravi)!




밀리의 서재 초단편 소설은 발행합니다.

이미 써 놓은 소설이기도 하고 유료 계약이니까요!! 돈이 무섭지요. ㅜㅜ

이번 주 소설은 '당신만의 주파수'입니다. 앞 소설인 달맞이꽃, 송어와 연결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


밀리의 서재의 우수작품상에 당선된 후, 초단편소설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초단편소설집 '돈 워리'를 읽고 밀어주리나 댓글 부탁드립니다.

(유료구독 아니고 회원가입만 하면 가능합니다!)

종종 밀어주신 분이 또 밀어서 밀어주리가 취소되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어요. (너무 밀면 낭떠러지로...ㅠㅠ)

하하하 한 번만 밀면 됩니다.

'밀어주리 중'이라고 되어 있으면 계속 밀지 마세요.

하지만 매번 밀어주고 싶어 하시는 그 마음만은 백 번 천 번 감사합니다.


https://short.millie.co.kr/an8qs83

아래는 제가 AI를 활용하여 만든 예고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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