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고로 바뀌는 건 글이 아니라 나 자신이다

by 소위 김하진

이 연재북은 '내 글이 작품이 되는 법' 시리즈(첫 문장의 힘, 시점의 힘, 묘사의 힘, 퇴고의 힘)의 내용에 제 개인의 경험과 생각을 결합하여 쓴 글입니다. 그러므로 작법에 대한 이론은 개인 의견이 아니라 책의 내용을 토대로 한 것임을 미리 밝혀 둡니다.



작가의 논리를 남겨두지 마라


문학적인 글에서 독자가 원하는 건 작가의 논리가 아닙니다. 글 속에 작가의 논리를 남겨두면 독자를 방해하는 꼴이 될 뿐만 아니라 읽는 즐거움을 빼앗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작가는 작품의 논리라면서 결국 자신의 경험을 기록해 놓습니다. 그 기록은 지워버려야 합니다. 노골적인 설명이나 상세한 배경 이야기를 줄여 작가만의 논리를 없애고 그것을 좀 더 은근하게 구현할 방법을 찾아내야 합니다. 설명이나 해설은 반감만 일으킵니다. 해석을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작가의 논리라는 것이 단박에 드러나는 표시가 있습니다. '왜냐하면'같은 접속사가 대표적입니다. 이 접속사 뒤에는 앞 내용에 대한 작가만의 논리를 담은 해설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와 '그러나'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문장 사이를 작가의 논리로 연결 짓는 장치들입니다. 이 연결을 끊으면 적당히 간극이 생기면서 독자만의 논리적 감각이 되살아날 수 있습니다.


소설 쓰기는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는 것입니다. 허구의 세상을 만들어내기에 이해받지 못하리라는 두려움에 시달리곤 합니다. 저 역시 그러합니다. 그런 불안 때문에 나만의 논리를 작품 속에 마구 욱여넣기도 합니다. 이유를 자세히 설명하고 논리적인 관계를 명시하면서요. 물론 작가만의 논리가 전혀 없으면 이야기가 성립될 수조차 없겠죠. 논리가 허술하면 개연성이 없어지고 소설 속 세상이 허구라는 느낌이 강해져 몰입하기도 힘듭니다. 여기서 우려하는 건 작가의 논리를 지나치게 강요하는 경우입니다. 독자의 몫을 남겨두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작게는 접속사부터 크게는 해설하는 부분까지 꼼꼼히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잘라낼 건 모조리 다 잘라내라


잘라낼 때는 이것저것 따지지 마십시오. 없는 게 상상조차 되지 않고 이야기를 충실히 발전시킬 수 있는 내용만 남겨두어야 합니다. 지워버리는 게 아깝습니까? (예전 글에서 그런 구절들은 따로 저장해 두자고 제안한 적 있었지요. 14화 초고를 전략적으로 수정하라) 없애 버린 페이지들의 내용이 어떤 식으로든 작품 속에 남아 있으리라는 걸 믿으세요. 눈에 보이지만 않을 뿐이죠.


출간을 준비하시는 분들에게도 말씀드리고 싶은 게 원고는 부족하기보다 넉넉한 게 훨씬 낫다는 겁니다. 억지로 늘려 쓰다 보면 내용이 빈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넉넉히 써놓은 가운데 지울 건 지우고 꼭 필요한 내용만 추려서 책을 만드는 게 낫죠. 300페이지를 썼는데 100페이지짜리 책이 되었다고 해서 속상해하실 것 없습니다. 100페이지 안에 이미 300페이지의 내용이 전부 녹아들어 있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작가가 딱 100페이지만 써서 출간한 책과 300페이지를 쓰고 거기에서 꼭 필요한 내용만 100페이지 추려내어 출간한 책!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어느 쪽의 원고가 더 풍성하고 깊을지 예상할 수 있지 않나요? 그러니 실컷 쓰고 모조리 잘라내 버립시다.


얼마 전 초단편소설 한 편을 썼는데요. 애초에 중장편을 쓰려고 고민했던 작품이었습니다. 그래서 내용을 다소 억지로 늘리고 있었죠. 왠지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퇴고의 힘'에서 말했던 신박한 방법을 사용해 봤습니다. 앞부분을 통째로 날려 버린 거죠. 근데 신기하게도 대폭 지우고 나니 훨씬 더 제가 원했던 작품에 가까운 모습이 되었습니다. 결국 초단편소설로 완성 지었습니다. 지우기의 마법은 언제나 통한다는 걸 말하고 싶습니다.


끝내지 말라. 아주 조금, 더 남았다


이제 그만하고 싶으시죠? 하지만 아직 끝이 아닙니다. 조금, 더 남았습니다.


모든 단어를 시험대에 올려 살릴지 말지를 판단하라. 수식어를 바꿔보고, 불필요하게 뒤따르는 문장을 잘라내고, 쉼표를 없애보고 넣어보기를 반복하라.

프랜신 프로즈


1. 족제비 단어 찾기


족제비 단어란 족제비처럼 주변 단어들의 생명을 빨아먹는 단어를 말한다고 합니다. 두루뭉술한 단어, 땜빵용 단어, 빼버려도 티 하나 안 나는 무의미한 단어 등을 의미합니다. 그런 경우는 지우거나 더 나은 단어로 바꾸는 게 좋습니다. '퇴고의 힘'에서 지적한 족제비 단어의 예시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아래 예시를 보며 충격을 받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침내, 드디어, 갑자기, 꽤, 항상, 그러니까. 엄청난, 종종, 또, 심지어, 그중, 그래도, 일단, 약간, 처럼, 무언가, 단지, 겨우, 거의, 아마, 분명, 이상한, 어쩌면, 매우, 듯하다, 생각하다, 이해하다, 궁금하다, 깨닫다, 끄덕이다, 알다, 보다, 웃다 등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단어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단어들을 많이 쓰면 문장의 생동감이 죽어 버립니다. 저도 퇴고를 하면서 이런 단어들을 없애거나 바꾸려고 노력하기 시작했습니다.(저도 이전엔 의식하지 못했거든요.ㅠㅠ) 물론 꼭 써야 할 경우도 있으니 무조건 다 없앨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자기도 모르게 무의미하게 반복하고 있는 단어는 없는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수정 전> 그는 거대한 거인 같아 보였다.

수정 후> 그는 거인이었다.


'거대한'이란 단어는 중복이고 '같아 보였다'는 의미를 모호하게 만들어 버리는 표현입니다. 이런 식으로 무분별하게 사용한 단어들이 있는지 살펴보고 고치도록 합니다. 찾기가 힘들다면 한글의 '찾아 바꾸기' 기능을 활용해 원고에서 예시의 단어들을 직접 찾아서 고치는 것도 좋습니다. 작가들은 자기도 모르게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단어나 표현이 있습니다. 자신의 잘못된 언어 습관을 꼭 확인해 봅시다.


2. 자투리 행 끌어올리기


각 문단의 자투리 행을 찾아 모두 없애는 것입니다. 자투리 행이란 문단의 마지막 줄에 달랑달랑 매달려 있는 한두 단어를 가리킵니다. 사실 이건 출간하면서 원고를 교정할 때도 많이 하는 작업입니다. 한두 단어만 남아서 행갈이를 하면 보기에도 좋지 않으니 편집자들은 되도록 자투리를 잘라내 달라고 요구합니다. 한두 단어 때문에 페이지가 한쪽 늘어나는 경우도 없애는 게 낫지요. 또 책의 분량을 맞출 때도 필요하고요. 그러면 작가는 행을 끌어올리기 위해 수정해야만 합니다. 우선은 군더더기가 없는지 확인하게 되지요. 만약 도저히 뺄 게 없을 때는 문장 전체를 좀 더 압축하여 간결하게 고치기도 하고요. 확실히 글이 좋아지는 게 느껴질 겁니다.


3. 큰 소리로 낭독하라


일전에도 말씀드렸던 방법입니다. 퇴고 중에 소리 내어 읽기도 도움이 되고 완성한 원고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소리 내어 읽어 봅니다. 독자의 눈으로 읽는 것이죠. 내 책을 자기 자신에게 낭독해 주는 것입니다. 가능하면 크게 소리 내서요. 그러면 문장과 단어를 하나하나 곱씹으면서 작품 속에 머무를 수 있게 됩니다. 운이 좋다면 이 마지막 순간에도 반드시 고쳐야 할 무언가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다만 이때는 큰 것을 손대기 보다 작은 실수나 단어 교체 정도만 합니다. 성급하게 고치다 오히려 이전보다 큰 실수를 저지르는 수도 있으니까요. 특히 공모전에 제출하는 글이라면 마지막엔 오타 정도만 본다는 느낌으로 소리 내어 읽습니다.


퇴고해도 완벽해지지 않는다.


아무리 많이 퇴고해도 완벽해진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조금 나아지긴 하겠죠. 천 번을 고쳐도 공모전에서 떨어질 수 있고 출간한 책이 외면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퇴고는 내 작품을 최고로 만들기 위해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 퇴고를 왜 이렇게 열심히 하는 걸까요? 가장 큰 성과는 바로 글을 쓰고 고치는 동안 달라진 나 자신일 겁니다. 스스로 실력이 나아져가고 있다는 자신감, 최선을 다해 글을 완성해 냈다는 보람과 성취감, 다음번엔 이보다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믿음 등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글을 완성한 순간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은 이미 다 얻은 거죠. 소설(글)이 세상에 나가 어떤 평가를 받게 되느냐는 더 이상 작가가 관여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니까요.


최고의 보상은 소설을 쓰는 동안 바뀐 당신이다.
당신은 이미 그 보상을 받았으며 이제 아무도 빼앗을 수도 보탤 수도 없다.
이 점을 기억하라.

퇴고의 힘, 멧 벨

이상으로 멧 벨의 '퇴고의 힘'을 마무리합니다. <작품이 되게 써라>는 다른 책으로 계속됩니다.


밀리의 서재에서 우수작품상을 수상한 초단편소설집 <돈 워리>가 출간됩니다. 얼마 전까지 퇴고를 마쳤는데요. 일정이 촉박하여 많이 아쉽더군요. 밀리의 서재에서 4월 13일 출간됩니다. 지금 밀리의 서재에서 '내 서재에 담기' 해 두시고 책으로 완성된 <돈 워리> 감상해 보세요!!


밀리의 서재 회원이 아닌 분들은 '한 달 무료 읽기'로 우리나라 최대의 전자책 플랫폼인 밀리의 서재를 한 번 경험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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