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고, 지겨워도 견뎌라

by 소위 김하진

이 연재북은 '내 글이 작품이 되는 법' 시리즈(첫 문장의 힘, 시점의 힘, 묘사의 힘, 퇴고의 힘)의 내용에 제 개인의 경험과 생각을 결합하여 쓴 글입니다. 그러므로 작법에 대한 이론은 개인 의견이 아니라 책의 내용을 토대로 한 것임을 미리 밝혀 둡니다.



실감 나는 대화로 만들어라


1. 직접 대화 VS 간접 대화 VS 대화 요약


대화에는 세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인물 간의 대화를 독자에게 직접 전달하는 '직접 대화', 대화의 핵심만 전달하는 '간접 대화', 비교적 긴 대화를 요약해서 전달하는 '대화 요약'이 그것입니다. 이런 대화 방식들을 다양하게 섞어서 활용하면 글을 더 짜임새 있고 신선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시나리오나 희곡은 '직접 대화'가 주를 이루지만 소설이나 에세이에선 다릅니다. '직접 대화'가 많아야 독자가 더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때로는 과도한 대화가 독자의 몰입을 방해하기도 합니다. 장면에 대한 묘사나 인물의 심리, 행동 등이 전혀 없이 대화만 주고받는다면 독자는 머릿속에 인물의 대사만 시끄럽게 오갈 뿐 해당 장면 안으로 깊게 빠져들 수가 없지요.

세 가지 대화 방식을 적절히 섞어서 사용함으로써 더욱 풍성하고 리듬감 있게 장면을 전달해 주세요. 특히 쓸데없거나 진부한 대화는 빼 버리고 좀 더 중요한 장면에만 초점을 맞추는 게 좋습니다.


수아에게 그런 글자를 왜 새겼는지 물었지만 낙서일 뿐이라고 했다.

- 김하진, '왕따' 중에서

대화의 내용을 생략하고 핵심만 전달한 '간접 대화'를 사용해 대화 장면이 쓸데없이 길어지지 않도록 만든 예입니다. 장면에서 '직접 대화'가 꼭 필요한지 아닌지 판단하는 것은 오직 작가의 몫이겠지요.


혹시 살면서 죄를 많이 지어서 이렇게 된 건 아닐까요? 하고 물었더니 셋 다 도끼눈을 떴다. 큰 선행을 베풀진 못했지만 그렇다고 누구에게 죄를 지은 적도 없는 평범한 삶이었다고 했다.

- 김하진, '고구마 맛탕' 중에서

이 장면의 등장인물이 모두 넷이었습니다. 모두 '직접 대화'로 처리했다면 상당히 많은 대화가 오가는 상황이 연출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소설의 흐름상 그렇게 장황하게 다룰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 들었기에 압축적인 '대화 요약'으로 처리했습니다.


2. 대화는 경쟁이라는 것을 기억하기


소설 속 인물들뿐만 아니라 사람은 누구나 대화할 때 자신의 목적을 관철하려는 의도를 숨기고 있습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상대의 이야기는 잘 듣지 않으려 하고 자기 말만 하려는 경향이 있지요. 그러므로 작가는 대화에서 인물이 지닌 의도나 욕구를 은밀하게 담아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 대화 상황에서 사람들이 듣고 말하는 방식을 모방하면 소설이 훨씬 현실적으로 보입니다.

이를 위해 인물들이 맘껏 수다를 떨게 내버려 둔 다음, 퇴고할 때 두 줄에 한 줄꼴로 대화를 삭제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럼 대사가 더 생동감 있어진다고 합니다. 아주 신박한 방법이지요. 사실 저 역시 소설 퇴고 시 대화를 늘이기보다 삭제하거나 줄이는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실제 사람들의 대화 장면을 떠올려 보세요. 대충 얼버무리거나 마음을 숨기려 하고 화제를 돌리려 하기도 합니다. 이런 보편적인 대화의 경향을 살려 주면 대화의 긴장감이 살아나고 인물 간의 갈등도 더욱 고조시킬 수 있습니다.


3. 대화 시 불필요한 행동 줄이기


인물의 말에 숨어 있는 감정은 효과적인 행동을 통해 실감 나게 보여 주는 게 좋습니다. 한숨, 웃음, 끄덕임 같이 너무 뻔해서 자리만 차지하는 불필요한 행동은 빼 버립니다. 인물 고유의 몸짓을 고민하고 대체할 만한 다른 행동이 있는지 찾아보는 게 좋습니다.



형광펜으로 표시한 후 고쳐라


1. 설명하고 있는 부분

무언가를 설명하고 있는 문장에 전부 표시합니다. 독자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라면 지우고 다시 써야 하고, 필요 이상으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면 긴 설명은 지우고 장면만 남겨두어야 합니다. 이 부분 역시 참으로 어렵습니다. 어디까지 독자의 상상이나 생각에 맡길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장황한 것보단 간결한 게 답인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잔소리도 짧고 굵은 한마디가 더 임팩트 있지요? 구구절절 장황한 설명은 독자의 이해력을 무시하는 것이거나 아니면 작가 자신도 납득되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안타깝지만 그런 부분은 다시 쓰거나 긴 설명을 생략하는 것이 작품을 더 낫게 만드는 방법이겠죠.


2. 배경 이야기가 들어간 부분

배경 이야기가 필요 이상으로 많이 들어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도 이 부분은 많이 찔리네요. 인물이 하는 행동의 인과관계를 획득하고 개연성을 부여하기 위해 배경 이야기를 집어넣곤 합니다. 배경 이야기를 무조건 쓰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인물의 심리가 그들의 개인사, 즉 배경에 따른 결과로 쉽게 처리되어 넘어가지 않도록 유의하라는 것입니다. 자칫 인물이 평면적이고 뻔하게 느껴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멧 벨은 인물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드는 배경 이야기가 더 효과있다고 하네요.


3. 가장 약한 문장

약한 문장들을 전부 삭제합니다. 그 문장 없이도 충분히 설득력을 가지는지 판단해 봅니다. 이런 문장은 없어도 지장이 없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대신 비어 있는 자리에 새로운 문장을 써 넣으십시오.


4. 가장 강력한 문장

가장 강력한 문장에 표시한 후, 나머지 문장을 이와 비숫한 수준으로 끌어 올리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생각해 봅니다.


3번과 4번의 방법은 쉽게 말해 원고의 모든 부분을 상향 평준화시키기 위한 노력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5. 감동을 주는 부분

가슴을 울리는 문장이다 싶은 부분에 표시합니다. 그러고 나서 스스로에게 질문합니다. 왜 감동했을까? 내 글인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그런 반응이 나올 수 있었을까? 하고요.

자기가 쓴 글 안에서도 유난히 가슴을 울리는 부분을 맞닥뜨릴 때가 있습니다. 부끄러워하지 마시고 그 기분을 만끽하라고 하네요. 그러고나서 분석을 하는 겁니다. 어떤 점이 그런 반응을 이끌어냈는지를! 자아도취를 하라는 게 아닙니다. 자신의 글에서 미덕을 찾아내고 분석해 보는 것은 앞으로도 그런 부분을 더 많이 쓸 수 있게 하기 위한 의도적인 노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모양을 이리저리 바꿔보라


이젠 원고를 보는 게 지긋지긋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멈추지 마십시오. 저 같은 경우는 퇴고의 마감 기한은 따로 두지 않고 있습니다. SNS 발행글이라면 발행하기 직전까지 쉬지 않고 퇴고하고 발행 후에도 컴퓨터에 있는 원고를 반복해서 퇴고합니다. 공모전에 제출하는 글이라면 제출 기한까지 퇴고하고 결과 발표가 날 때까지 원고를 건드리지 않습니다. 출간할 글도 출판사와 약속한 마감 날짜까지 쉬지 않고 퇴고합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요? 하지만 실제로는 퇴고에 지쳐서 적당히 포기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고통을 견뎌나갈 특단의 방법들을 스스로 강구해 놓아야겠지요.


이럴 때 쓰면 좋은, 재미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기존 원고를 다양한 방법으로 형태를 바꾸어 보는 겁니다. 그러면 내용은 동일한데도 무언가 달라 보이기 때문에 원고를 새롭게 퇴고할 수 있게 됩니다. 예를 들어 폰트, 글씨 크기, 행 구분, 페이지 여백, 화면 확대/축소 비율 등을 바꾸어 보는 것입니다. 그게 뭐든 한 가지라도 바꾸면 신기하게도 글이 이전과 '달라' 보입니다.


출간을 해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한글 문서(A4)로 퇴고를 마친 원고를 출판사에 보내면, 내지 레이아웃을 확정한 뒤 원고를 조판하여 교정지로 출력합니다. 그러면 그때부턴 교정지 상태로 퇴고하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이제 작가는 실제 책의 형태로 인쇄된 원고를 받아 볼 수 있게 되는 거지요. 그때 더욱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이전 원고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문제점들이 책의 형태로 바뀐 원고 위에선 갑자기 두드러져 보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원고를 다양한 형태로 바꾸어 퇴고하면 지겨움도 줄일 수 있고 작품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각도 생겨서 일석이조입니다.


할 수 있는 방법을 모두 동원해서 시간 날 때마다 당신의 소설(글)과 교감하라.
모든 관점에서 작품을 바라보게 될 때까지.

퇴고의 힘, 멧 벨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글에서도 퇴고에 대한 내용이 이어지겠습니다.



부사와 1년 넘게 동고동락하면서 쓴 참신한 에세이가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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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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