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재북은 '내 글이 작품이 되는 법' 시리즈(첫 문장의 힘, 시점의 힘, 묘사의 힘, 퇴고의 힘)의 내용에 제 개인의 경험과 생각을 결합하여 쓴 글입니다. 그러므로 작법에 대한 이론은 개인 의견이 아니라 책의 내용을 토대로 한 것임을 미리 밝혀 둡니다.
문장 퇴고는 언제 하시나요? 멧 벨은 말합니다. 어떤 작품이든 많은 내용을 고칠 수밖에 없으니 너무 이른 단계에서는 문장에 힘을 쏟지 않아야 한다고요. 하지만 그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저도 퇴고할 때 숲보단 나무를 먼저 보게 될 때가 많더라고요. 문장의 부족함은 즉각적으로 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문장을 고치는 데 주력하게 되지요. 하지만 글 전체의 흐름에 맞지 않는다면 아무리 공들여 쓴 문장이라도 한꺼번에 지워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니 보다 크고 중요한 과제들을 해결한 후에 문장을 퇴고해도 늦지 않습니다.
서술어가 최선인지 점검합니다. 너무 평범하고 진부하지는 않은가? 당연하다 싶을 만큼 뻔해 보이지는 않는가? 좀 더 명확하고 재미있는 서술어가 글의 수준을 올려 줍니다. 또 다양한 서술어가 문장도 다채롭게 만듭니다.
다만, '말했다'와 '물었다'처럼 대화 장면에서 흔히 쓰이는 서술어는 대표적인 걸 쓰는 게 좋습니다. 독자는 이런 서술어들은 별로 의식하지 않습니다. 누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혼동하지 않도록 분명하게 알려주는 역할을 하므로 굳이 다른 것으로 바꾸려고 애를 쓸 필요가 없습니다.
인물이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서술어를 줄입니다.
예> 생각했다, 궁금했다, 이해했다, 깨달았다, 알게 되었다 등
1인칭 시점이나 3인칭 깊은 시점의 경우, 독자는 이미 화자의 머릿속에 들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서술어를 사용할 필요가 없습니다. 소설뿐만 아니라 작가가 곧 화자인 수필도 마찬가지겠지요? 서술어를 쓰지 말고 내면의 생각 자체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게 좋습니다. 독자는 이미 화자의 생각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이런 서술어를 자주 사용하면 독자를 화자 밖으로 밀어내 화자의 생각을 관찰하는 듯한 느낌을 주게 됩니다. 그럼 독자가 직접 화자의 생각과 감정을 겪는 걸 방해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습니다. 1인칭 시점이나 3인칭 깊은 시점을 사용한 효과가 오히려 반감하게 되는 것이지요.
서술어를 지우고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확실히 드러나는 문장이라면 그 서술어는 지우는 게 맞습니다.
인물이 무언가를 보고 있음을 나타내는 서술어를 줄입니다.
예> 봤다, 쳐다봤다, 지켜봤다, 바라봤다 등
이런 서술어를 자제하고, 보이는 대상 자체를 직접 묘사하는 게 좋습니다. '그녀가 울고 있는 걸 봤다.'가 아니라 '그녀가 울었다.'와 같이요. 화자와 독자는 같은 시선을 공유하고 있으므로 묘사하는 것은 전부 다 그들이 보고 있는 대상입니다. 굳이 본다는 행위를 서술하지 마십시오.
본다와 더불어 듣다도 마찬가지입니다. 감각 서술어를 줄이면 독자가 보다 직접적으로 대상을 보거나 듣게 할 수 있습니다. 이미지, 소리, 맛, 냄새, 느낌 등을 직접 묘사하고 감각 서술어를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간결하면서도 생생한 감각을 독자에게 전달할 수 있습니다.
'~ 있(었)다'와 같이 상태가 진행되고 있음을 나타내는 서술어도 되도록 줄입니다. 상태 서술어를 대체할 다양한 방법들을 강구해 보면 좋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경우도 있으니 무조건 다 없애버리지는 마십시오.
수정 전: 창밖에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다.
수정 1 : 창밖에 가랑비가 내렸다. (상태 서술어 없애기)
수정 2 : 창밖에 빗방울이 흩뿌렸다. (다른 서술어로 교체하기)
길이나 형태가 비슷한 문장이 반복된다면 찾아서 고쳐봅니다. 길고 복잡한 문장 대신 단순하고 간결한 문장으로 바꾸어 보기도 합니다. 느닷없다고 느껴질 정도로 간결한 문장을 써보는 것도 좋습니다. 문장의 다양성은 독자를 이야기에 빠져들게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묘사에 중점을 두느라 긴 문장을 구사한 적도 있고,(묘사가 곧 긴 문장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이 길어지는 건 있더라고요.) 간결한 문장이 속도감 있게 느껴져 일부러 단문 위주로 써 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쪽도 계속해서 반복하다 보면 글 자체가 지루해지더군요. 문장의 길이에 변화를 주는 게 좋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평범한 길이의 문장과 장문, 단문이 적절히 섞여 있으면 글에 리듬감을 줄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이 지나치면 자신만의 고유한 문체가 사라질 수도 있으니 적절히 조절해야겠지요.
문단의 길이도 변화를 주면 색다른 재미가 있습니다. 매번 똑같은 분량의 문단으로만 진행된다면 독자도 긴장감이 없어서 늘어질 수 있습니다. 장면에 따라 과감하게 길이에 변화를 주면 독자를 이야기 속으로 끌어당기는 데 유리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퇴고의 힘'에서는 좌분지 문장과 우분지 문장이라는 다소 생소한 표현을 사용했는데요. 좌분지 문장은 미괄식을 말하고 우분지 문장은 두괄식을 말합니다. 부연 설명이나 수식어구가 앞쪽에 붙냐 뒤쪽에 붙냐의 차이인 거죠. 비문학적인 글의 경우 두괄식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지만, 소설이나 문학적인 글에서는 꼭 그렇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좌분지 문장(미괄식)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핵심 내용을 뒤로 연기하는 것이 오히려 독자를 더 강력하게 붙들어 두는 장치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쪽이 더 옳다고 말하기보단 자신의 고유한 스타일이나 문체에 따라, 또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이 무엇이냐에 따라 달라져야 할 문제라는 생각이 드네요.
판에 박힌 단어 조합을 피합니다. 관용적인 표현들은 독자에게 익숙해서 '클리셰'처럼 느껴지고 긴장감을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자신의 글에서 그런 것들이 눈에 띄면 다른 조합으로 대체해 보십시오. 사실 이 부분은 상당히 어렵습니다. 모든 표현들을 다 참신하게 바꾸기도 힘들고요. 낯설게 하려다 지나치게 어색해지면 그것도 곤란하지요. 하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익숙하게 느껴지는 표현은 최대한 덜 쓰려고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멧 벨이 제시한 뻔한 단어 조합을 보여드립니다. 아래 예시는 제가 한 번 바꿔 본 건데요. 어렵네요.ㅜㅜ 각자 다른 단어 조합으로 바꾸어 보는 연습을 하면 좋겠습니다.
주먹을 꽉 쥐었다.
-> 주먹을 쥐자 관절이 대나무 마디처럼 툭 튀어나왔다.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 입술이 붓으로 한 일자를 그린 듯했다.
다리가 풀려버렸다.
-> 무릎이 모래성처럼 허물어져 버렸다.
빛이 눈부셨다.
-> 빛의 가시들이 망막을 찌르며 파고들었다.
미소가 번졌다.
-> 입꼬리가 그네를 타듯 하늘로 올라갔다.
시선이 날카로웠다.
-> 날 선 눈빛이 공기를 베어 버렸다.
뻔한 단어 조합의 또 다른 예시들 >
요동치는 심장 / 칠흑 같은 어둠 / 떨리는 손 / 촉촉한 눈가 / 조각 같은 외모 / 의미심장한 미소
/ 타오르는 불길 / 살을 에는 추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글에서도 퇴고에 대한 내용이 이어지겠습니다. ^^
밀리의 서재 '실버펜촉'이 된 김하진 작가의 '초단편소설'이 궁금하다면? 읽고 밀어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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