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를 전략적으로 수정하라

by 소위 김하진

이 연재북은 '내 글이 작품이 되는 법' 시리즈(첫 문장의 힘, 시점의 힘, 묘사의 힘, 퇴고의 힘)의 내용에 제 개인의 경험과 생각을 결합하여 쓴 글입니다. 그러므로 작법에 대한 이론은 개인 의견이 아니라 책의 내용을 토대로 한 것임을 미리 밝혀 둡니다.



이번 글에서는 '퇴고의 힘'에서 제시한 초고를 수정하는 구체적인 전략 몇 가지를 소개합니다.


내일 아침에 고칠 것 한 가지 정하기


잠자리에 들기 전 원고를 읽으면서 고칠 것을 찾아내고, 다음 날 책상에 앉자마자 발견했던 문제를 고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사실 블로그나 브런치 등 SNS에 올리는 글이라면 잠자리에 누워서도 얼마든지 휴대폰으로 수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워드 문서에 집필한 글이라면 그러기가 힘들지요. 그러므로 여기에서 말하는 요지는 언제 어디에서 고치느냐가 아닙니다.

다음번 집필을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자신이 이미 쓴 원고를 수정 먼저 하자는 것입니다. 집필 시작과 동시에 기존 원고를 조금이라도 개선함으로써 글에 대한 자신감을 북돋으라는 말이지요. 생각해 보면 저도 항상 그랬습니다. 새로운 원고를 쓰기 전에 기존 원고를 수정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곤 했습니다.


매일 돌아가보기


기존에 쓴 원고의 끝부분에서부터 곧바로 이어서 집필을 시작하지는 않습니다. 반드시 조금이라도(한두 페이지 혹은 수십 페이지) 앞으로 되돌아가서 읽고 수정하면서 동시에 뒤를 이어서 쓰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난번 글에서 말씀드렸던 대로 '영감'을 떠올리기에 아주 유용한 방법입니다. 또 앞의 내용을 더 낫게 발전시킴으로써 작가로서의 자신감도 회복하게 합니다. 그리고 앞 내용과 잘 어울리는 새로운 내용을 찾는 데에도 도움이 됩니다.

바로 어제 쓴 글이라도 다시 읽으면 새롭습니다. 끊임없이 되돌아가서 시작하고 이어서 씁니다. 이렇게 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저는 늘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내용이 떠오르지 않는 경우 앞부분만 반복해서 다시 읽으며 수정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대체로 뒷 내용이 저절로 따라 나오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꼬리에 꼬리를 물 듯이 말이죠!


지루한 부분 삭제하기


써놓기는 했으나 끝까지 가져가지는 않을 내용이란 판단이 들면 과감하게 쳐냅니다. 지루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면 전부 삭제하고 다시 읽어 봅니다. 별로인 부분을 들어냈을 때 나머지 부분이 더 깔끔하고 명쾌해 보이며 소설의 방향이 명확해질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삭제하고 나면 뭔가를 더 채워 넣어야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동일한 장면에서 삭제하고 다시 채워 넣기를 반복하고 있다면 그 부분은 아예 처음부터 다시 쓰는 게 낫습니다. 별로인 장면을 좋은 장면으로 바꾸는 것보다는 아예 새로운 장면을 만드는 게 더 쉽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글도 이런 점을 생각하면서 읽으면 좋겠습니다. 이 부분은 삭제하는 게 낫겠다. 혹은 이 부분은 이런 내용으로 바꾸는 게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을 하면서 비판적으로 읽는다면 내 글을 쓸 때도 큰 도움이 될 거라고 믿습니다.


글 잘 버리는 방법


삭제한 글을 완전히 버리지는 마십시오. 글에서는 삭제하더라도 저장 공간에는 남겨 두란 뜻입니다. 삭제한 내용이 완벽하게 어울리는 곳을 나중에 발견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버려진 것들'만 활용해서 새로운 이야기나 문장을 만들어낼 수도 있습니다. 사실 자신이 쓴 글을 지워 없애버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특히 심혈을 기울인 부분인데 글의 흐름상 맞지 않아 삭제해야 할 때 아쉬움이 크지요. 그럴 땐 그 부분만 떼어서 따로 저장해 둡니다. 사실 저도 이 방법을 이미 사용하고 있습니다. 토막글들은 다른 소설에 쓰이기도 하고 때로는 그 자체로 다른 글의 씨앗이 되기도 합니다.


“선생님의 삶은 사막 풍뎅이 같았네요. 사막 풍뎅이는 물이 없는 곳에서도 물을 만들어내면서 치열하게 살아남죠. 새벽이 되면 해뜨기 전 언덕으로 올라가 엉덩이를 높이 들고 서 있는대요. 그러면 안갯속 미세 물방울이 등에 붙어 미끄러지면서 입안으로 흘러들어오는 거지요. 그걸 받아 마시고 산다고 해요. 선생님도 척박한 삶에서 어떻게든 살아갈 방법을 찾아내셨어요. 정말 훌륭한 분이세요. 사라져 버리기엔 아까운. ”


사실 이 대화는 초단편소설 '영원한 삶'의 일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내용 전개상 불필요한 듯해서 관련 대화를 통으로 삭제해 버렸습니다. 이 토막글은 따로 저장해 두었다가 스레드에 올리는 짤막한 에세이로 변형시켰습니다. 언젠가 다른 소설에 삽입할 수도 있겠지요. 잘라낸 글들을 버리지 않고 활용한다면 삭제할 때의 아쉬움도 훨씬 줄어들 것입니다.


괜찮은 한 문장


맘에 들지 않는 문단이나 페이지가 있다면 거기에서 괜찮은 문장 하나만 빼고 싹 다 삭제해 버립니다. 그리고 그 문장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라는 겁니다. 사람이든 글이든 어떤 환경에 놓이느냐에 따라 달라 보일 수 있습니다. 빛을 잃었던 문장이 적절한 상황에서는 놀랄 만큼 아름답거나 생동감 있는 문장으로 거듭날 수도 있는 것이죠.


초고는 형편없어도 괜찮습니다.


초고를 쓰기 위해서 우선은 자신에게 관대해져야 합니다. 남과 비교하는 것을 멈추고 자신에게 지나치게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 역시 늘 고통을 느끼며 초고를 씁니다. 미숙하고 형편없다는 생각이 스스로를 괴롭히지요. 하지만 누구라도 초고를 쓰는 동안 좋은 문장 한두 개 정도는 쓰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문장들은 우리가 계속해서 글을 써나갈 수 있도록 든든한 동력이 되어줍니다. 맷 벨은 말했습니다. 초고의 목표는 이야기의 발견과 즐거움이라고!


"자갈 같은 문장이라면 그저 다음에 올 어떤 요소에 불과하고, 씨앗 같은 문장이라면 훗날 이 소설의 운명을 결정지을 만한 중요한 요소가 된다. 문제는 어떤 문장이 자갈이 되고 씨앗이 될지, 씨앗이라면 얼마나 중요한 씨앗이 될지 미리 알 수 없다는 것이다."

- 맷 벨, '퇴고의 힘' 중에서


그러니 자갈은 고르게 깔고 씨앗은 모으라고 하더군요. 모두 다 우리가 만들어 낸 결과물이고 초고는 곧 더 나은 두 번째 원고로 재탄생하게 될 것임을 믿으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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