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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위 May 08. 2023

시엄마, 우리는 어떤 인연이길래

동지이자 친구이자 그냥 엄마인 시어머니

1박 2일의 만남 동안 어머니는 참으로 많은 말씀들을 하셨다. 이것이 잔소리인지 조언인지는 듣는 사람마다 다르게 느낄 것이다.


'빨래가 덜 말랐는데 왜 걷었느냐, 내일 다시 바짝 말려라.'

'코드를 왜 꽂아 놨느냐.' (그리고 모든 코드를 뽑아버린다.)

'LED 시계는 전기세가 많이 나오니 쓰지 말아라.' (이것도 코드를 뽑아버린다.)

'물티슈로 아이 코를 풀게 하면 몸에 안 좋지 않냐, 마른 티슈로 풀어 줘라.'

'전기밥통의 내솥에 직접 쌀을 씻으면 안 된다.'

'아이 옷은 목이 허전한 걸 입히지 말아라.'

'왜 잘 때 면옷을 입어야지 나일론옷을 입느냐.'

등등등...


하신 말씀을 다 적으려면 지면이 부족할 지경이다. 그런데 지금 내 기분은 그다지 나쁘지 않다. 시간의 힘은 실로 무섭다. 예전 같으면 이런 말 하나하나가 나를 거슬리게 하고 화나게 하고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고 느끼게 했다. 하지만 이젠 적당히 무덤덤해진 것이다. 어머님께서 하시는 말을 다 따르지도 못하거니와 따르지 못한다고 해서 스트레스를 받지도 않는다. 예전엔 말씀 한 마디 한 마디가 머릿속에 남아서 냉장고를 봐도 세탁기를 봐도 생각이 났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시키는 대로 억지로 따르곤 했다. 왠지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조종당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면 뒷골이 뻣뻣해지고 혈압이 올랐다. 그럼 스트레스는 더 극에 달했다. 하지만 긴 시간의 힘을 빌어 이제는 많이 의연해졌다. 단순히 시간만 흐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간 내 마음이 끊임없는 세뇌 학습을 해온 덕분일 것이다. 어머님이 생각하시기에 마땅히 해야 할 옳은 말씀들이 내게는 그저 잔소리로만 들리는 이 좁혀지지 않는 간극이 영원히 변치 않을 것임을 이제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출처 Pixabay


어버이날을 맞아 우리 가족은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 시아버지를 모시고 다 함께 식사를 하였다. 예전에는 사돈 지간이라는 관계의 벽 때문에 서로 어려워하기도 하고 거리감도 있었으나 세 분 다 70대가 되고 나니 어느새 끈끈한 연대가 생기기 시작했다. 노화가 빨라지고 몸의 여기저기가 병드시면서 드러내놓고 말씀은 안 하시지만 '죽음'이라는 무섭고 두려운 관문을 눈앞에 둔 동지애 같은 것을 느끼시는 듯하다. 특히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홀로 남은 친정어머니를 시부모님은 무척이나 안타까워하시며 걱정하셨다. 세상일이 '남일' 같지 않은 게 우리네 삶이다. 나 역시 이제 청춘은 아니라서 그럴까? 부모님 세대의 '동병상련'이 너무나도 공감이 된다.


한 달 뒤면 우리는 손수 지어 살고 있는 전원주택을 떠날 예정이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시부모님을 집으로 모셔와 하룻밤 묵게 해 드렸다. 어쩌면 집과도 이 작은 도시와도 영영 마지막 만남이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특별한 이벤트 없이도 함께 밥을 먹고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훈훈해졌다. 서울로 돌아가는 기차에 두 분을 태워 보내드리고, 나는 시부모님이 머무셨던 공간을 바라보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철부지 막내며느리가 어느새 이만큼 나이가 들어 연로하신 시부모님을 챙겨드릴 만큼 철이 들었을까?


결혼한 여자치고 시댁과의 갈등 하나 없이 행복했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남편과 함께한 16년이란 시간은 그다지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강산이 한 번 변하고도 이만큼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나에게도 숱한 우여곡절이 있었다. 그래도 나는 시어머니와 얼굴 붉히는 일 없이 그럭저럭 잘 지내온 며느리이다. 어머니는 늘 나를 많이 아껴주셨고 뭘 해도 믿고 지지해 주시는 편이었다. 단 한 가지, 나를 힘들게 했던 점은 어머니의 '강함'이었다. 삼 남매를 키우시는 동안 억척스럽게 사셔서 그런지 마음이 강한 만큼 표현방식도 강하셨다. 눈앞에 보이는 맘에 안 드는 것들이나 틀렸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다 교정하려 하시는 편이어서 나로선 숨이 막혔다. 연애 시절엔 심각하게 남편과의 이별을 고민한 적도 있었다. 평생 어머니와 잘 지낼 자신이 없어서였.


하지만 어머니에게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정이 많고 상냥하며 애정 표현에 아주 적극적이라는 것이다. 어머니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던 때에는 마음이 휘청거리며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곤 했다. 따뜻하게 챙겨주시는 사랑에 감동을 받으면서도 나에게 하는 잔소리만은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 괴로웠던 것이다. 마음이 오락가락하면서 혼란스러웠고, 좋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피하고 싶은 이중적인 마음 때문에 괴로웠다. 시도 때도 없이 연락하던 살가웠던 막내며느리는 어느새 꼭 필요할 때만 연락하는 무덤덤한 며느리로 변해 갈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어머니가 싫어서라기보다 어머니와의 관계를 악화시키지 않기 위한 나름의 안간힘이었다. 적당한 거리를 확보하고 난 후에야 나의 마음속 갑갑함도 풀리기 시작했고 어머니에게 한층 편하게 대할 수 있었다.


어머니는 정말이지 살뜰하게 나를 챙겨주셨다. 어느 겨울, 허름한 외투만 입고 다니는 내가 안쓰럽다며 겨울 패딩을 갑자기 선물해 주시기도 했다. 몸이 안 좋은 내게 영양제나 홍삼을 챙겨 보내 주시는 것도 어머니였다. 아들은 먹지도 않는 나물을 내가 좋아하는 거라며  정성껏 만들어다 주시기도 했다. 사소한 것부터 큰 것까지 관심을 가지고 살피고 사랑으로 챙겨 주시 세심한 분이시다. 어제도 내 화장대를 보면서 '변변한 화장품 하나 없네.' 하며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표정을 지으셨다. 그럴 때면 나는 왠지 모르게 가슴에서 뜨거운 덩어리가 훅 달아오름을 느낀다. 딸에게 무관심한 어머니 밑에서 자란 나는 시어머니의 이런 밑도 끝도 없는 관심과 애정이 이따금 당황스럽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하지만 왠지 싫지 않.

'친엄마조차도 챙기지 않는 나를 어머니는 친딸도 아닌데 왜 이렇게 챙기시는 걸까? 어머니는 나와 대체 어떤 인연으로 만나게 된 걸까?'


시어머니와 나는 고부 관계를 넘어서 서로에게 동지애를 느끼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바로 사랑하는 사람을 걱정하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남편을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두 여자가 바로 '어머니와 나'이다. 우리 둘은 남편의 마음이 건강해지기를 간절하게 기도하는 두 사람인 동시에 서로의 아픔에 위로와 격려를 해주는 동지인 것이다.  남편이 아플 때마다, 나는 '어머니'에 대하여 수없이 많은 생각을 했다.


남편이 마음의 병을 게 된 데에는 어머니의 잘못도 다는 것을 알기에 한땐 돌이킬 수도 없는 '과거의 어머니'원망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나의 아들이 이렇게 아프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하며 같은 엄마로서 어머니가 가련해 가슴이 아팠다. 어머니와 남편의 삶을 보면서, 나는 아들에게 어머니 같은 실수를 하지 말자고 속으로 다짐하기도 했다.  그렇게 남편을 축으로 나와 어머니는 양쪽에 매달린 추처럼 팽팽히 균형을 유지하면서 남편이 쓰러지지 않게 지탱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남편은 상처로 인해 어머니를 거부하는 마음이 있기도 하지만, '엄마'란 존재는 거부해서 거부해지는 존재가 아닐 것이다. 나로 인해 시어머니와의 관계에 어느 정도 거리감이 생기면서 오히려 남편은 건강한 중간 지대를 찾아나가고 있는 듯하다. 


남편을 함께 지키며 든든한 동지가 되어 주는 시엄마,

고달픈 인생살이 함께 넋두리하고 들어주며 친구 같아진 시엄마,

나의 받아들임과 인내의 수준을 한층 강화시켜 준 인생의 시험지와도 같던  

시엄마,

수술만 두 번을 하고도 자식들 앞에서 흐트러진 모습 하나 보이지 않는 불도저 같은

시엄마,

내가 외로울 때마다 친엄마 같은 사랑을 주어서 나를 울려버리고 마

시엄마,

우리는 어떤 인연이길래

이렇게 만나서 고부 사이가 되었을까?


지금쯤 기차가 서울역에 도착했겠다. 막내아들, 며느리 주겠다고 바리바리 싸 온 음식들 다 내려놓고, 이제는 털털거리는 빈 가방을 끌고 지하철을 한 시간도 넘게 타면서 집으로 돌아가시겠지. 가방이 바닥에서 퉁퉁 튈 때마다 어머니, 아버지 허전한 마음도 왠지 모르게 허공으로 퉁퉁 튕겨나가시겠지. 그 마음 잘 붙잡아서 심장 밑에 꾹꾹 눌러 넣으며 '우린 다 괜찮다, 너네들이나 부디 건강히 잘 지내라.' 하며 기도하시겠지.


시엄마도 부디 잘 지내요.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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