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위 Jul 31. 2023

결여를 나누는 너와 나, 사랑!

결여를 있는 그대로 두라

누구나 결여를 갖고 있다. 부끄러워서 대개는 감춘다. 타인 역시 그러할 것이다. 그런데 어떤 결정적인 순간에 내가 그의 결여를 발견하는 때가 있다. 그리고 그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 그의 결여가 못나 보여서 등을 돌리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결여 때문에 그를 달리 보게 되는 일. 그 발견과 더불어, 나의 결여가, 사라졌으면 싶은 어떤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의 결여와 나누어야 할 어떤 것이 된다. 내가 아니면 그의 결여를 이해할 사람이 없다 여겨지고, 그야말로 내 결여를 이해해 줄 사람으로 다가온다. 결여의 교환 구조가 성립되는 것이다. 그것이 그들을 대체 불가능한 파트너로 만들었으니, 두 사람은 이번 생을 그 구조 안에서 견뎌나갈 수 있으리라. 말하자면 이런 관계가 있지 않을까. 있다면, 바로 그것을 사랑의 관계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출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신형철


출처 Pixabay


결여란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이 빠져서 없거나 모자람을 뜻한다. 우리는 완전하지 않은 인간이기에 누구나 결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자신의 결여를 남에게 드러내 보이고 싶어 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어느 날 나의 결여가 두드러져 보일 때가 있는데 그건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서이다. 나와 똑같은 사람을 보았을 때나 반대로 나와 전혀 다른 사람을 보았을 때, 우리의 내면에선 불편한 반응이 일어나곤 한다. 나의 결여를 다른 사람의 모습을 통해 눈으로 확인하게 될 때의 거북함과 나와 같은 결여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을 목격할 때의 부러움과 놀라움 등이 우리의 심사를 뒤틀리게 하는 것이다.


상대의 결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고 나의 결여가 상대에게 이해받는다는 느낌을 받는 순간은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뿐이다. 나의 결여가 상대와 나누고픈 무언가가 된다는 것은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가!  이따금 나의 결여를 사랑하는 사람을 통해 채우려고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관계는 오래 지나지 않아 종지부를 찍고 말 것이다. 결여를 채우거나 없애려는 노력은 부질없으며 실제로 가능하지도 않은 일임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다음은 내가 쓴 '이상형'에 대한 글의 일부분이다.  



저는 정호승 님 시에 나오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티 없이 밝고 해사한 사람보다는 어둠이 군데군데 묻어 있는 그늘진 사람을 좋아했습니다. 어둠 없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어둠을 알아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 때문이었죠. 그 어둠은 슬픔일 수도 있고 불안일 수도 있고 우울일 수도 있습니다. 선명하고 고운 빛깔을 뿜어내는 흠 없는 과일보다는 작은 상처 몇 개 정도는 가지고 있는 안쓰러운 과일에 더 눈길이 갔지요.


그늘을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의 그늘을 금세 발견하고 감싸 안아 줄 아량이 있을 거라고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한 가지가 있었어요. 어둠이 너무 크면 상대를 환한 곳으로 데리고 나오기보단 더 깊은 어둠으로 끌고 가 침잠해 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요. 그리고 제가 가진 그늘과 상대가 가진 그늘이 부딪히거나 영원히 평행선을 달리며 화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요.


이상형을 논하던 젊은 시절을 지나, 우리는 어느새 누군가와 함께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자신의 이상형인가요? 확률은 반반이겠죠. 저는 이상형에 가까운, 그늘이 있는 따뜻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럼에도 어떤 날은 서로의 그늘이 날카롭게 부딪히기만 할 뿐 감싸 안지 못합니다. 어떤 날은 그늘을 거두고 서로에게 따뜻한 햇살을 비춰주기도 하고요.


상대가 이상형이거나 아니거나 두 사람이 함께 사는 일에는 수많은 부침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 혹은 젊은 시절 꿈꾸던 이상형은 제 욕심과 허상이 만들어 낸 가상의 누군가일 뿐입니다. 이 세상에  '완전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겠죠. 그래서 '이상형'이란 말이 생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상은 바라거나 꿈꾸는 것일 뿐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곳은 늘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함께 있는 그 사람도 이상형이 아니라 현실형인 것입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지혜롭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두 사람의 그늘이 따뜻하게 어깨동무하는 날이 더 많지 않을까요?


출처  너는 나의 이상형인가?, 소위



예전에는 나의 결여를 채워줄 누군가를 원했고 그것이 나의 이상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금의 남편을 만나면서 나는 오히려 나의 결여를 제대로 직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남편의 결여 역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어둠 속에 갇혀 있었다. 그의  밝음과 가벼움은 내겐 작은 빛 같았다. 애초에 나는 그를 통해 나의 결여를 채우고 싶어 했다. 그러나 머지않아 그는 나보다 더 큰 어둠 속으로 침몰했다. 내겐  희망의 빛이었던 그가 우울증이란 늪에 빠져 본인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무겁게 가라앉았다. 처음에 든 생각은 배신감이었다. 밝았던 그의 모습에 속았다고 느꼈다. 하지만 이내 깨달았다. 나는 나의 결여를 그에게서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사실에 화를 내고 있었던 것이. 결국 그는 나와 같은 결여를 지닌 사람일 뿐이고 우리는 서로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게 되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서로 다른 듯 비슷한 우리 둘은 서로가 서로에게서 자신의 결여를 채우려 하는 갈급함을 없앴다. 그것이 우리가 서로를 견딜 수 있게 해 주었다.


이상형에 대한 허상의 단계를 지나 우리는 결여를 서로 이해하고 나누는 단계로 나아간다. 그것이 가능해야만 평생을 함께할 수 있게 된다. 끝끝내 각자의 결여를  상대를 통해 채우지 못해 안달한다면 둘의 관계는 지속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부족하다. 사랑도 그러하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온전해지고 사랑도 그러할 것이다.


결여는 결여대로 두라

결여를 억지로 채우지 마라

결여는 결여된 채 품어갈 때

사무치는 그 마음에 꽃이 피리니


'대로 두라' 중, 박노해

출처 Pixabay


이전 10화 시엄마, 우리는 어떤 인연이길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