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명: 캐나다에서 6개월 안에 무조건 취업하기
2,000만 원만 들고 낯선 캐나다 땅에 도착하고 나서야 우리의 무모함을 깨닫게 되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우리가 딱 그랬다. 도착 후 우리 부부는 아무것도 없이 바닥부터 시작해야 했다. 캐나다가 철저한 신용사회라는 것을 집을 구하면서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아파트 임대를 하려고 하자 보증인을 요구했다. 우린 보증인과 신용이 없어 월세 1년 치(매달 내야 하는 1,095불)를 한꺼번에 내야 했다. 고생이라고 했던가. 돈은 곧 바닥이 났다. 몇 달 내에 직장을 구하지 못하면 한 살배기 아기와 함께 길거리로 나앉아야 하는 신세였다.
캐나다에서 취업하기 위해선 캐나다 경력이 필수였다. 난 캐나다 경력도 없었고 전공도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 당시 대학원까지 나온 내가 학력이 전혀 인정되지 않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 캐나다 회사를 직접 알아보기 위해 인포메이션 인터뷰*를 열심히 다녔다.
면접 기회를 얻기 위해 열심히 다운타운 빌딩에 있는 사무실을 돌아다녔다. 많은 회사가 면접을 거절했다. 뭣 모르고 낙관적인 취업 상황을 기대했던 내가 바보였다. 현실을 깨닫게 되었고 한국에서 배웠던 영어실력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졌다. 점점 위축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집에는 젖을 갓 뗀 아기가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포기할 수 없었다. 구두 굽이 다 닳고 밤새 발이 퉁퉁 부었다. 토론토 다운타운에서 안 들어간 빌딩이 없을 정도다. No Soliciting(잡상인 출입 금지)이 붙은 팻말을 볼 때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남의 나라에 와서 왜 이러고 있지?’라는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서럽고 눈물이 났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캐나다 경력이 없는 상태에서 취업 문을 넘기 쉽지 않단 걸 뼈저리게 느꼈다.
약 6개월을 인포메이션 인터뷰*와 취업 면접을 다녔을 즈음 발런티어 잡 기회를 주겠다는 연락이 왔다. 세계에서 가장 큰 광고회사 WPP Group**의 자회사 Hill & Knowlton Canada! (현재는 Hill+Knowlton Strategies로 이름이 바뀜. 이하 힐 앤 놀튼)
힐 앤 놀튼은 PR 전문 회사였다. ‘말도 안 돼! 계속 거절만 당하던 내가 이렇게 좋은 기업에 다닐 수 있다니!’ 비록 발런티어 잡이지만 그땐 동아줄처럼 느껴졌다. 그때 나를 채용했던 분은 루쓰 클라크(Ruth Clark) 이사다. 지금도 그 얼굴이 선명하게 생각난다.
출근하던 첫날의 설렘과 긴장감이 엄청났다. 토론토 다운타운에 멋지게 자리 잡고 있던 빌딩으로 들어서면서 자신이 왠지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이 회사는 당시 영 스트리트(Yonge Street)와 블루어(Bloor) 동쪽에 위치해 있었는데, 토론토 다운타운 입구이자 명품관들이 즐비하게 들어선 토론토의 명소에서 가까웠다. 로열 온타리오 박물관(ROM-Royal Ontario Museum)과 다양한 미술관들이 근처에 있어 문화 체험하기 좋은 시간과 장소가 되었다. 이렇게 캐나다에서 첫 직장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감격스러워 눈물을 흘릴 뻔했다.
아마 한국 분 중에는 발런티어 근무를 해야 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내가 왜?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해?”라고 많이들 한다. 한국에서 본인의 경력과 입지는 캐나다에서 인정받지 못할 확률이 높다. 몇 번의 시도로 쉽게 포기하는 한국 사람을 많이 봤다. 캐나다에서 경력을 얻기 위한 과정은 차곡차곡 밟아야 한다. 그 과정을 쉽게 스킵(Skip)하려고 했다간 쉽게 무너진다.
어느덧 6개월이 지나갔다. 드디어 무보수지만 6개월의 값진 캐나다 경력(Canadian Experience)을 얻을 수 있었다. 천하무적이 된 기분이었다. 발런티어 잡을 통해 업무뿐 아니라 조직문화도 함께 배울 수 있었다. 매주 금요일엔 드링크 데이(Drink Day)라고 오후 12시부터 맥주나 음료를 마신 후 오후 2시에 퇴근을 했다. 신기했다. 지금은 한국에서도 자유로운 사내 분위기가 조성되지만 그때는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아직도 그 문화를 지키고 있을까 궁금하다.
6개월 경력이 생겼으니 쉽게 취업되리라 생각했지만 한인사회서 만난 몇몇 한국사람의 말이 마음을 힘들게 했다. “기술이 없는 상태에서 캐나다에서 공부하지 않고 직장을 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이었다. IT(정보통신) 기술이 있는 남편은 나와 달리 불도그(Bulldog)라는 회사에 IT 개발자로 쉽고 빠르게 취업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할 때마다 오히려 “왜 안돼? 난 할 수 있어!”라는 반발심이 불타올랐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기술 없이 한국에서 공부한 경우, 국제 경영 분야에서 일을 하려면 영어를 모국어처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밑져야 본전이다. 까짓것 한번 도전해 보기로 했다. 이력서와 커버레터(Cover Letter)를 다듬어 잡 에이전시(Job Agency)와 회사에 보내기 시작했다. 어느 직종으로 할지 고민하다 가장 익숙하고 쉬운 행정 사무직(Administrative Assistant)에 지원했다. 한국 사람이 도전하기 쉽다고 착각했지만, 언어장벽이 강해 이민자가 도전하기 어렵다는 걸 나중에 깨달았다.
에이전시에서 금방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이때만 해도 희망이 가득했다. 그동안 에이전시를 이용하지 않아서 에이전시 인터뷰 통과가 직장 들어가는 것만큼 어렵다는 것을 몰랐다. 1차로 전화 인터뷰, 2차로 대면 인터뷰, 3차로 업무 실기 시험까지 통과해야 했다. 업무 실기 시험은 대면 인터뷰 때 함께 보는 경우도 많다.
행정사무직 관련 시험은 영어, 컴퓨터, 타자 속도 위주로 보았다. 영어시험은 문법, 철자, 표현과 주제에 맞는 글쓰기가 있었다. 컴퓨터는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사의 프로그램인 워드(Word), 파워포인트(PowerPoint), 엑셀(Excel), 액세스(Access), 아웃룩(Outlook) 능력을 테스트했다. 기본 기능만 써봤기에 실무에 필요한 고급 기술을 잘 몰라 여러 번 시험에 떨어졌다.
금방 취업할 거라고 부풀었던 마음은 펑 터져버렸다. 하지만 물러설 내가 아니었다. 그 당시 내게 포기는 사치였다. 처음엔 잘 몰랐지만, 시험을 거듭할수록 에이전시 시험 내용이 비슷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심지어 마이크로소프트 프로그램은 시험이 거의 비슷했다. 시험을 10회 가까이 반복하면서 마침내 모든 시험을 만점 가깝게 맞는 날이 왔다.
https://www.iaap-hq.org/page/CAP_Certification
기다린 끝에 에이전시 몇 곳에서 연락이 왔다. 그러나 아뿔싸! 시험이 끝이 아니었다. 4차, 5차 심화 인터뷰가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 반복이었다. 여러 번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가기 일쑤였다. 이때까지 회사 문턱엔 가보지도 못했다. 에이전시만 죽어라 드나드는 신세였다. 하지만 점차 회사 인터뷰도 잡히기 시작했다. 다 셀 수는 없지만 전화 인터뷰와 대면 인터뷰는 합해서 약 200번, 이력서를 1,000장 이상 보낸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한 에이전시에서 에인즈월스(Ainsworth Inc.)에 합격했다는 연락이 왔다. 토론토 다운타운에 자리 잡고 있는 에인즈월스는 과거 북미 4대 건설회사로 명성을 떨쳤고 입사 당시 건설 관련 기계 및 전기(Mechanical & Electrical) 서비스를 전문적으로 제공하고 있었다.
‘내가 무려 에인즈월스에 합격하다니!’ 포기하지 않고 될 때까지 도전한 결과다. 학벌과 기술도 없던 내가 좋은 직장에 입사하는 걸 불가능하다고 했던 이들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다. “멈추지 않는 도전 앞에 실패는 없다. 도전은 포기하지 않는 한 실패가 아니라 경험이 된다. 될 때까지 하면 결국 성공하게 된다.” 이민자들이 원하는 직장을 잡지 못할 때 몇 번 시도하고 접는 상황을 수도 없이 보았다. 실패에 너무 큰 의미를 두고 상처받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의 안 된다는 말은 들을 필요가 없다. 나 역시 미리 겁먹어 시도하지 않거나 한 번의 실패에 쉽게 무릎을 꿇었다면 결국 에인즈월스라는 기업에 취업하지 못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