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살의 꿈은 어디 갔지?

자존감이 점점 무너지다

by Elizabeth Kim

남편이 온타리오주 IT 공무원으로 취업한 후 주변 많은 지인이 부러워했다. 남편은 모두가 부러워하는 회사에 다니는 것에 만족하고 행복해했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회사 건물에 있는 피트니스 센터에서 1~2시간씩 운동하는 등 자신에게 시간을 투자하며 일과 생활을 적절히 균형있게 살고 있었다. 여행도 가고 싶으면 언제든 갔다. 그게 행복이겠거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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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일을 하면서 가장의 역할을 책임졌고 집안일은 대부분 내 몫이었다. 둘째를 낳으며 육아휴직을 했고, 그 이후 다시 회사로 돌아가지 않았다. 아이들을 직접 키우면서 아이들 교육과 예체능까지 전부 직접 챙기고 이끌면서 키워 나가는 자부심이 컸다. 아이들은 나를 잘 따르며 공부도 곧잘 하며 잘 자라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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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나였다. 캐나다에 오게 된 첫 계기는 교수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하는 것이었는데 고단한 삶 속에 처음 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매일 커가는 아이들 육아에 숨 쉴 시간도 없이 바빴다.


당시 조기유학 붐이 일어났던 한국에서 친척들이 어학연수를 위해 어린 자녀들을 맡겨왔다. 거절하기가 어려웠다.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낯선 땅에 온 아이들을 하나하나 챙길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을 돌보는 데만도 24시간이 모자랐고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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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난 뭐 하고 있는 거지?’ 하루 종일 정신없이 보내고 밤이 돼서야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남편의 직장, 캐나다에서 조기에 양질의 교육 시스템을 경험하고 있는 나의 아이들. 그러나 자아는 텅 빈 채 외로웠다. 이런 마음은 둘째 아이를 낳으며 더 심해졌고 산후 우울증은 꽤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남편도 이상했는지 병원 상담이 어떨지 물었다. 요즘은 누구나 아프면 병원에 가듯이 정신적인 상담과 치료를 받지만, 당시엔 정신병원에 간다는 게 덜컥 겁이 나고 그렇게 말하는 남편이 야속하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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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와 집안일에 치여 살다 보니 어느새 마흔이 넘어 버렸다. 나의 자아를 잃어버린 날들이라 하기엔 겉으로 본 내 생활은 풍요로웠다. 바꾸고 싶은 마음과 유지하고자 하는 마음이 아이러니하게 얽혀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