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의 끝자락에는 언제나 어떤 ‘마지막’의 기운이 흐른다. 동시에 그것은 새로운 시작의 문턱이기도 하다. 온타리오 호수에서 나이아가라 강으로 흘러 들어가기 직전, 물결은 잠시 숨을 고르듯 멈춘다. 그곳에 서 있으면 마치 두 세계가 맞닿는 경계에 내가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나이아가라 온더레이크-내가 가장 사랑하는 도시 중 하나다.
Ryerson Park은 언제나 이곳 여정의 출발점이다. 잔잔히 흔들리는 나무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은 마치 어린 시절의 기억처럼 따뜻하다. 공원 가장자리에서 호수를 바라보면, 저 멀리까지 이어진 수평선이 햇빛을 반사해 은빛 강물처럼 흐른다. 아직 해가 기울기 전인데도, 이곳의 공기는 이미 선셋을 기다리는 설렘으로 차 있다.
이곳은 대학원 시절의 절친, 한국에서 잠시 건너오신 토론토 친구와 어머니, 친지들, 그리고 골프장에서 함께 웃던 언니들까지—삶의 서로 다른 궤적에서 만난 사람들과 이곳을 걸었다. 무엇보다 이곳을 처음 알게 된 계기는 브루스 트레일 컨저번시(Bruce Trail Conservancy)였다. 캐나다에서 가장 오래된 하이킹 트레일을 보존하고 가꾸는 단체로, 나이아가라 단층을 따라 펼쳐지는 900km에 이르는 길을 지키는 이들이다. 이 모임을 통해 걷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났고, 자연이 맺어준 인연의 힘을 경험했다.
길을 따라 내려가면 곧 미시사가 비치(Mississagua Beach)가 나타난다. 발밑에 닿는 길이 사각거리고, 호수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뺨을 스친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노을은 유난히 특별하다. 온타리오 호수의 수평선 위로 해가 지는 순간, 하늘은 오렌지빛에서 장밋빛, 그리고 보랏빛으로 물든다. 나는 종종 이곳을 “호수 위의 극장”이라 부른다. 관객은 숨죽여 앉아 있고, 무대는 오직 하늘과 물뿐이다. 날씨가 맑은 날이면, 저 멀리 차로 두 시간 거리의 토론토 다운타운이 뚜렷하게 보인다.
짧지만 인상적인 이 길을 따라가다 보면, 곧 미시사가 요새(Fort Mississauga)에 닿는다. 나무와 돌담이 지닌 세월의 기운이 공기를 무겁게 하지만, 동시에 이 도시의 뿌리를 느끼게 한다. 전쟁의 흔적 위에서 지금은 아이들이 뛰놀고, 산책자들이 발걸음을 멈추어 호수 쪽을 바라본다. 역사는 무겁지만, 지금의 시간은 평화롭다. 그 대비가 늘 마음을 울린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이 길을 사랑하는 이유는, 길을 걸으며 나이아가라 온더레이크 골프장(Niagara-on-the-Lake Golf Club)의 풍경을 함께 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끝없이 펼쳐진 푸른 잔디 위로 석양이 길게 드리워지고, 그 너머 호수의 수평선은 하나의 거대한 풍경화가 된다. 골프장이라는 공간이 자연과 어울려 장관을 만들어 낸다. 함께 했던 친구는 “호수가 주는 여유가 사람을 다 품어주네”라고 말했다.
여정은 언제나 짧지만,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기적 같은 시간이기도 하다. 그런 여행길 중 나이아가라 온더레이크의 호수와 강이 만나는 지점은 풍경 속에서 오래도록 기억될 인연을 발견하는 곳이다.
누군가 나를 찾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 길을 늘 걸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