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대륙, 하나의 용기
캐나다 온타리오주 케임브리지(Cambridge)의 아침은 커피 향으로 시작되었다. Monigram의 묵직한 문을 열자 갓 볶은 원두의 고소한 향기가 훅 끼쳐왔고, 오래된 벽돌 벽이 주는 안정감 속에서 마신 커피 한 잔은 낯선 도시에 대한 긴장을 기분 좋은 설렘으로 바꿔놓았다. 그랜드 강(Grand River)의 잔잔한 흐름이 이 도시의 느긋한 리듬을 예고하는 듯했다.
구 갈트(Galt) 우체국 앞에서 그랜드 강을 내려다보며, 나는 139년 전 이곳을 오가던 사람들을 상상해 보았다. 1885년 건립된 이 Second Empire 양식의 석조 건물은 당시 갈트가 캐나다 경제의 중요한 거점이었음을 증명한다. 전화도 인터넷도 없던 시절, 이 우체국은 스코틀랜드에서 온 이민자의 편지와 사업 계약서, 연애편지들이 오가는 희망과 그리움의 교차점이었을 것이다. 맨사드 지붕과 아치형 창문이 말없이 증언하는 시간의 무게가 묵직했다.
Mill Race Park의 강변 산책로를 걸으며 만난 것은 자연의 시간이었다. 옛 제분소의 돌담 유적들 사이로 흐르는 강물 소리를 들으며, 이곳이 한때 수력을 이용한 산업의 중심지였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19세기 중반, 이 강변에는 제분소와 직물 공장들이 즐비했고 강물은 그야말로 도시 경제의 생명줄이었다. 지금은 연인들의 속삭임과 아이들의 웃음소리만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Cambridge Mill 앞에서 182년의 시간을 한 번에 느꼈다. 1844년 제분소로 시작해 지금은 고급 레스토랑으로 재탄생한 이 건물의 석재 외벽에 손을 대자, 차갑고 거친 표면이 손끝에 전해졌다. 건물은 죽지 않는다. 용도가 바뀌고 사람이 바뀌어도, 계속 서서 새로운 이야기를 담아낸다. 한때 밀가루 자루를 나르던 곳에서 지금은 와인 잔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린다.
Reid's Chocolate에서의 시간은 달콤한 쉼표였다. 1948년부터 이어온 지역 수제 초콜릿 전통을 지켜온 이 가게에서, 가족의 정성이 담긴 초콜릿을 맛보며 변하지 않는 것의 소중함을 느꼈다. 2018년 창립 70주년을 맞아 역대 최대 규모로 확장했지만, 4대째 같은 레시피로 만든 Maple Cream의 달콤함은 1940년대와 동일한 맛이었다.
하지만 가장 깊은 울림은 소방 박물관(Fire Hall Museum)에서 찾아왔다. 1902년 건립된 이 소방서 건물에서 앤티크 소방차보다 더 빛났던 것은 그곳을 지키는 자원봉사자들의 눈빛이었다. 특히 봉사하는 Rob Brisson의 열정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것을 느끼게 했다.
Rob이 보여준 1856년 수동 펌프 앞에서, 존 바버(John Barber)의 이야기를 들었다. 1816년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나 1844년 갈트에 정착한 바버는 가구 제조업자이자 장례 지도자였다. 그러나 그의 진정한 유산은 1856년부터 1869년까지 무려 16년간 갈트 소방대 치프 엔지니어로 봉사한 헌신에 있다. 당시 치프의 평균 재임 기간이 2년에 불과했던 점을 고려하면, 이는 놀라운 기록이었다.
바버의 재임 기간은 갈트 역사상 가장 혹독한 '화재의 시대'였다. 1856년 11월, 1859년 6월, 1862년 6월, 1867년 10월에 발생한 대형 화재들은 메인 스트리트와 도심의 큰 구역을 반복해서 파괴했다. 당시의 소방 장비는 모두 인력으로 끌고 수동으로 작동하는 원시적인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바버는 25건의 대형 화재 현장에서 흔들림 없는 리더십을 발휘했다.
1864년 시민들이 그에게 은제 티 세트와 시계를 증정하는 기념식에서 바버는 이렇게 말했다. "나의 봉사는 보상이나 명예를 위한 것이 아니라, 오직 의무를 다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의 가구점이 있던 워터 스트리트 노스 73번지와 소방서가 위치했던 워터 스트리트 사우스 34번지는 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었다. 그에게 가구 제작과 소방 활동은 분리된 두 직업이 아니라, 모두 '이웃을 돌보는 일'이라는 하나의 사명이었다.
Rob이 보여준 1974년 홍수 사진들은 또 다른 차원의 헌신을 증언했다. 5월 17일, 평소 2피트에 불과했던 그랜드 강 수심이 18피트까지 치솟았을 때, 소방관들은 화재 진압복 대신 구명조끼를 입고 보트를 저어 고립된 주민들을 구조했다. 그날 밤 '이름 없는 영웅들'이 보여준 용기 덕분에 670만 달러의 재산 피해에도 불구하고 단 한 명의 인명 피해도 없었다.
그리고 Rob은 나에게 중대한 임무를 주었다. 캠브리지 소방서 스티커를 건네며, 한국에 갈 기회가 있다면 그 스티커를 한국 소방서에 전하고 한국 소방서의 스티커를 가져와 달라고 부탁했다. 그 순간 나는 두 나라 소방관들의 정신을 잇는 연결고리가 되었다. 내년에 다시 방문할 때, 이 일을 기꺼이 제일 먼저 하리라 마음먹었다.
150년 전 존 바버가 가졌던 의무감, 1974년 홍수 속에서 발휘된 용기, 그리고 지금도 이어지는 헌신의 정신. 이 모든 것이 박제된 유물이 아니라 여전히 살아 숨 쉬는 현재였다.
저녁 무렵 다시 강변에 섰을 때, 케임브리지는 더 이상 낯선 도시가 아니었다. 커피 향, 돌의 무게, 강물 소리, 초콜릿의 달콤함, 그리고 사람들의 온기. 이 모든 것이 겹쳐진 도시를 나는 잠시 걸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 잠깐의 걸음 속에서 시간의 층위를 느꼈고, 변하지 않는 가치를 발견했으며, 무엇보다 진정한 공동체 정신이 무엇인지를 배웠다. 케임브리지는 화려하지 않지만 진실했고, 크지 않지만 깊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따뜻했다.
내 손에 쥐어진 소방서 스티커는 이제 두 대륙을 잇는 약속이 되었다. 내년 여름, 나는 한국 소방서의 스티커를 들고 이 강변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때 Rob과 나누게 될 악수는, 150년 전 존 바버가 시작한 헌신의 정신이 여전히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순간이 될 것이다.
참 따뜻한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