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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사빠 Mar 17. 2024

매일 메리 크레스마스

1. 도마뱀을 키운다

바짝 올라간 속눈썹과 빙그레 미소짓고 있는 표정. 거기에 말랑쫀득한 뱃살과 느릿느릿 고지를 향해 내딛는 발걸음까지! 내 시선을 사로잡은 영상은 '크레스티드 게코'라는 도마뱀 영상이었다. 

'그래도 파충류는 작은 마우스나 곤충을 먹을테니 난 아마 키울 수 없을 거야' 라고 생각했을 때 "이 도마뱀은 충식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슈퍼푸드'라는 사료만으로도 충분히 건강하게 키울 수 있습니다"라는 음성이 귀에 꽂혔다. 

그 길로 크레스티드 게코에 대한 영상을 하나씩 섭렵했고, 이론은 빠삭한 '크레러버'가 되어있었다. 

볏도마뱀붙이, 눈썹도마뱀으로 불리는 크레스티드 게코(크레)는 뉴칼레도니아에 서식하는 붙이류 도마뱀의 한 종류로 사육 온도는 24도 내외다. 우리집 실내 온도면 충분하고, 아침 저녁으로 분무만 해주면 된다고 하니 이렇게 관리가 쉬울 수가 있을까? 

그래도 생명을 섣불리 집에 들일 수는 없기에 내가 키울 수 있는 시간적 경제적 여력이 있는지, 이 친구가 사는 동안 책임감 있게 돌볼 수 있을 지 한달넘게 고민했다. 

그리고 대망의 날이 왔다! 몰랐는데 집 근처에는 꽤 많은 파충류샵이 있었고, 크레 전문 분양샵을 찾아갔다. 참고로 크레를 분양받는 방법은 다양하다. 네이버 밴드에서 경매를 통해 분양받을 수도 있고, 희귀동물 박람회에 방문해 분양받을 수도 있다. 이런 이야기는 나중에 차차 풀어보도록 하겠다.

아무튼 첫 크레는 분양샵을 방문해 데려왔다. 가격은 모프와 개체의 성장 상태(베이비, 아성체, 준성체, 성체)에 따라 천차만별이었다. 베이비는 실제로 보니 더 작았다. 고작 2g남짓의 베이비를 우리집 첫째로 들였고, 지금의 나는 세마리의 크레를 키우고 있다. 퇴근 후 해가 지고 밤이 되면 나는 내 방에 들어와 사육장을 들여다본다. 독립적인 크레들은 개별적인 공간에서 살고 있다. 벽에 물을 뿌려주면 낼름거리면서 물을 섭취하는 모습은 남들이 보기엔 별거 아니겠지만, 나에겐 충분히 흥미롭다. 혓바닥 끝은 하트모양이다. 일반 뱀처럼 뾰조하게 갈라져있지 않다. 혓바닥까지 귀여운 종족이다. 

크레가 벽에 붙어있을 때에는 뱃살과 발바닥을 구경한다. 신중하게 내딛는 걸음 걸음은 어딘가 어설프다. 야행성 친구들이니까 빛이 있을 때에는 아무래도 움직이는게 조심스럽겠지. 

14년동안 강아지를 키우면서(지금도 열심히 강아지의 시중을 들고 있다.) 홈캠을 설치해본 적 없었는데, 크레 관찰을 위해 홈캠까지 설치했다. 밤 사이 무엇을 하는지 궁금증을 참을 수가 없었다. 

아마 대부분 크레 집사들이 홈캠을 통해 오밤중 그들의 일상을 염탐하지 않을까? 나도 그런 보통의 크레 집사일뿐이다. 

역시...! 이들의 빠른 움직임은 어둠에서 추진력을 얻는 것 같다. 어둡고 조용한 새벽 3시쯤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다는 걸 홈캠 녹화영상을 통해 알게 됐다. 이들 집 안에 넣어둔 오리 장난감과 나뭇잎 덩굴, 해먹을 다 한번씩 건드리고 다녔다는 사실만으로도 집사는 감격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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