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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사빠 Aug 11. 2016

기억 속의 '좋은 사람'

개구리 책방 언니와 빵집 아주머니, 말괄량이가 이렇게나 자랐어요!

어릴 적 우리 집은 비디오 대여점을 했다. 

엄마 말로는 아빠가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직장 다니면서 투잡으로 했다고 했다.

비디오 대여점은 내가 초등학교 2~3학년 때쯤까지 운영했던 것 같다. 아니면 그보다 더 일찍 접었던 것 같다. 

작게 시작한 비디오 대여점은 손님이 꽤 많아 나름 번화가로 옮겨서까지 운영했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 꼬마였던 나는 손님이 다 본 비디오를 가게로 가져오면, 되감아주는 기계에 넣고 돌리곤 했는데 '탁(넣고), 철컥(닫고), 우웅(되감는 중)~탁(완료돼 기계 열리는 소리)!' 이 소리가 재미있었다. 

그리고 '마스크' '백조 공주' '인어공주' '라이온 킹' 등 새로 만화영화 비디오를 들여오면 무조건 가게에서 먼저 틀어봤는데 '라이온 킹'과 '마스크' 같은 경우는 내가 너무 좋아한 나머지 우리 집으로 가져와서 서른 번도 넘게 봤던 것 같다. '라이온 킹'은 매번 울음 포인트도 같았다. 아빠 사자 무파사가 절벽에서 떨어져 죽는 장면에서는 항상 눈물이 찔끔찔끔 났었다. 

아무튼, 그때를 추억할 때마다 느끼는 거라면 엄마와 아빠는 매일 바빴고, 나랑 동생은 둘이서도 잘 놀았다는 거다. 만화영화를 보거나 비디오를 되감아서 꽂아놓는 것도 나에겐 일종의 놀이였으니까. 


우리 가게는 큰 상가 건물 안에 위치했었는데, 맞은편에는 빵집, 옆 가게는 '개구리 책방'이라는 도서 대여점이 자리했었다. 나중에는 '독서공간(?)'으로 간판이 바뀌었지만. 

동생과 나는 책방 언니를 '개구리 언니'라고 불렀다. 책도 마음대로 뽑았다가 엉망으로 꽂아놨던 우리를 언니는 나무라지 않았다. 아마 나였다면 가차 없이 혼쭐을 내줬을 텐데...

우리는 개구리 언니보다는 빵집 아주머니를 더 잘 따랐다. 빵집에 놀러 갈 때마다 나는 빠다(슈크림인지, 생크림이었을 거다)를 손가락으로 콕콕 찍어 빨아먹었고, 아주머니는 나를 잘 타이른 다음 종이접기를 알려주셨다. 

앞·옆 가게 사장님들이 이렇게 천사였다니...

"개구리 언니, 빵집 아줌마! 저 이렇게 잘 자랐어요! 그 사고뭉치가 저예요."라고 자랑이라도 하고 싶지만, 솔직히 내가 장난치고 놀았던 기억만 나지, 얼굴도 가물가물하다. 

개구리 언니는 가정을 꾸렸을 거고, 30대의 아주머니는 우리 엄마처럼 변했겠지. 


누군가의 추억 속에 '좋은 사람'으로 기억된다는 건 좋은 일이다. 

내가 언니와 아주머니를 생각했을 때 얼굴은 기억나지 않아도 미소가 지어지는 것처럼 나 또한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하지만, 그건 욕심이겠지. 

나는 개구리 언니나 아주머니처럼 아이들을 넓은 아량으로 상대할 깜냥이 없다. 

하지만, 혹시 알아? 지나치는 개나 고양이에게라도 좋은 인상으로 남아있을지. 

한풀 더위가 꺾이고 선선해질 때 즈음 옛 가게 자리에 가려한다. 

'그때는 그랬었는데... 아, 그때 이런 일도 있었지. 그때의 그들은 지금은 뭘 하고 있을까.' 혼자 상상하며 옛 추억을 소환하는 것도 퍽 즐거운 일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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