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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진경 Oct 03. 2022

꿈이야, 넌 반짝이 주황색 날개가 있어서 좋겠다!

꿈이와 함께한 하룻밤의 꿈

 55개월. 다섯 살 가을. 한 달 전쯤부터 소은이는 다시 잠드는 걸 무서워하기 시작했다. 소은이가 태어난 후 지금까지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 수면 문제인데 얼마 전에 무서운 꿈을 꾼 후로부터 다시 잠자는 걸 무섭다고  하는 상황. 잠이 들 때마다 흐느끼고 어떻게든 자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소은이를 볼 때면 안타깝기도 하고 어떨 땐 화가 나기도 하고, 나의 존재가 무력해지기까지 한다. 아무리 안 자는 아이도 다섯 살이 되면 수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하던데 소은이에게는 그것도 예외였다.  


 이날도 책을 읽어주고, 자장가를 틀어주고, 팔베개도 해주고. 온갖 방법을 동원해도, 결국은 도돌이표. 소은이는 다시 잠을 견디다 못해 울기 시작했고 그 순간 갑자기 침대 위 머리맡에 굴러다니는 인형이 내 눈에 들어왔다. 어디서 난 건지 출처도 생각나지 않는, 뽑기 기계에서 뽑았을법한 작은 인형이었다. 나는 그 인형을 보고 불현듯 '꿈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소은이에게 소개를 해주었다.


M(꿈이): 안녕? 난 꿈이라고 해! 잠잘 때 널 지켜주는 요정이야.


 울먹이던 소은이가 갑자기 울던 걸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 난 이거다 싶어서 다시 꿈이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M(꿈이): 잘 때 무서운 야옹이 꿈꿀까 봐 무서웠지? 앞으론 내가 널 지켜줄게. 걱정하지 말고 자. 나랑 뽀뽀하면 행복한 꿈을 꾸게 될 거야. 쪽!


 그리고 소은이 입술에 꿈이 얼굴을 갖다 대고 입맞춤을 해주었더니 놀랍게도 소은이는 금세 웃는 얼굴이 되어 꿈이와 말을 하기 시작했다.


S: 꿈이야 넌 어디에서 왔어?

M(꿈이): 나도 몰라. 눈을 떠보니 여기에 있었어.

S: 근데 너가 왜 여기에 있는 거야?누구가 너 여기에 보낸거야?

M(엄마): 하느님이 우리 소은이 잘 자라고 꿈이를 보내주셨나봐.

S: 이렇게 하 너 정말 요정 같다. 꿈이야, 넌 반짝이 주황색 날개가 있어서 좋겠다! 나도 이렇게 날고 싶어.


 그러더니 벌떡 일어나 날갯짓 흉내를 나며 침대에서 폴짝 뛰는 게 아닌가. 나는 소은이를 얼른 다시 눕히고 이렇게 속삭였다.


 M: 이제 어딜 가든 꿈이가 있으면 소은이 무서운 꿈 안 꾸게 지켜줄 거야. 앞으로 소은이가 여행 갈 때도 꿈이 데려가자?

S: 응. 꿈이 작아서 이렇게 들고 갈 수 있어.


 소은이는 꿈이를 품에 꼭 껴안고 행복해하며 말했다. 그 인형이 뭐라고, 이렇게 금방 행복해질 수 있다니. 아이에게 스토리텔링이 얼마나 중요한 지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S: 꿈이야! 난 책 읽고 싶어. 엄마, 꿈이도 책 읽고 싶대.


 그렇게 소은이는 꿈이와 함께 책을 읽으며 평화롭게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소은이는 평온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S: 난 꿈이 덕분에 무서운 꿈 안 꿨어. 푹 잤어.
꿈이야. 고마워.


S: 아 따뜻해. 히히


그러더니 내 팔에 꿈이를 베고 꿈이가 쌔근쌔근 자는 흉내를 내었다.


M: 꿈이 자는 거야?
S: 응, 어젯밤에 나를 너무 지켜줬나 봐.


 그렇게 꿈이는 내 팔에 안겨 늦게까지 늦잠을 자고 아침밥도 같이 먹었다. 소은이는 소은이가 아기 때 쓰던 아기 손수건을 가지고 와서 꿈이에게 입혀주고 꿈이를 돌봐주더니, 외출을 할 때도 꿈이를 데리고 갔다. 그렇게 꿈이는 쇼핑몰까지 따라가 하루 종일 소은이와 함께 있다 집으로 돌아왔다.


 하루 종일 놀고, 쓰러져 잘 법도 한데 소은이는 자지 않고 또다시 무섭다고 울먹이기 시작했다. 나는 꿈이 생각이 나서 "우리 꿈이 데려오자! 꿈이 어딨지?" 하고 꿈이를 찾았다. 그때까지도 꿈이가 오면 어제처럼 소은이가 다시 잠들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품고!


 S: 몰라 몰라, 꿈이 와도 나는 안 잘 거야. 흑흑.


 이렇게 꿈이는 하룻밤의 꿈이 되어 다시 평범한 인형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다시 목이 쉬어라 책을 읽어주고, 아이가 잠들 때까지 머리를 쓰다듬으며 옛날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럼 그렇지. 이렇게 쉬울 리가 없지. 곤히 잠든 아이 얼굴을 바라보며 '하루라도 꿈이로 인해 행복했으면 그걸로 됐다.'하고 만족하기로 했다. 그리고 꿈이가 정말 요정이 되어 밤새 소은이를 지켜주기를 기도하며 도 이제 잠을 청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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