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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진경 Oct 12. 2022

그럼 아빠 목말 타면 되지.

아빠는 해님, 엄마는 달님

S: 엄마, 님 만져보고 싶어.


 햇살이 따뜻한 5월 어느 봄날의 오후. 소은이는 눈부신 햇살을 바라보며 내게 이룰 수 없는 꿈을 이야기했다. 할 수만 있다면 해님을 만져보면 좋겠지만 그건 내가 아무리 소은이를 사랑하더라도 해줄 수 없는 일이었다.


M: 소은아, 해님은 너무 멀어서 만질 수가 없어.

S: 사다리 타고 올라가면 되지.

M: 사다리 타고 올라가도 너무 멀어.

S: 그럼 아빠 목말 타면 되지.


소은이에게 아빠의 목말은 사다리보다 더 높이 올라갈 수 있는 위대한 것. 아빠의 목말을 타고 해님에 닿을 생각을 하다니, 아이의 상상력은 어쩌면 이렇게도 사랑스러울까.


M: 그렇구나, 그런데 어쩌지? 해님은 너무 뜨거워서 만지면 '앗, 뜨거워!' 하는데. 

S: 해님이 뜨거워?

M: 그럼, 해님은 아주 뜨거워. 그래서 만질 수 없어. 그런데 소은아. 갑자기 왜 해님이 만져보고 싶어 졌어?

 

 아이는 나의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또다시 하고 싶은 말을 이어나갔다.


S: 아빠, 엄마는 해님, 달님 같아. 아빠는 해님, 엄마는 달님.

M: 왜 아빠가 해님이고 엄마는 달님이야?

S: 아빠는 멋있고, 엄마는 예쁘니까.

M: 해님은 멋있고, 달님은 예뻐?

S: 응. 그리고 엄마 페티, 아빠는 루피 같아. 나는 개구쟁이 뽀로로.

M: 엄마는 왜 페티야?

S: 엄마는 그림을 잘 그리잖아.

M: 아빠는 요리를 잘해서 루피야?

S: 응. 아빠는 또 척척박사 에디기도 해.


 소은이에게 아빠는 루피처럼 요리를 잘하고, 에디처럼 똑똑한 존재, 엄마는 페티처럼 그림을 잘 그리고, 달님처럼 예쁜 존재였구나. 나는  비유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엄마, 아빠의 존재를 자기가 알고 있는 존재에 빗대어 표현하는 아이가 기특하고 대견했다. 또 아이에게 우리가 해님, 달님과 같은 존재라는 게 기뻤다. 아이가 자세히 말하지는 않았지만 해님과 달님은 세상을 어둠으로부터 밝혀주는 존재이니까. 소은이를 지켜주고, 빛을 밝혀주는 존재가 된 것 마냥 기분이 좋았다.


 부모란 그렇다. 밤낮으로 사랑하는 자녀가 걸어갈 길을 밝게 비추어주고 지켜주고 싶다. 해님같이 따스하게, 달님처럼 포근하게. 아이가 언제까지 아빠를 해님이라, 엄마를 달님이라 여기게 될까. 또 언제까지 엄마가 페티가 되고, 아빠가 에디가 되는 날이 지속될까.

 

 아주 오래전, 내가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를 다닐 무렵이었을까. 엄마가 언니와 나에게 컴퓨터를 가르쳐 주신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있다. 지금은 엄마가 우리에게 컴퓨터에 대해 물어보시지만 그땐 우리가 엄마에게 컴퓨터 하는 법을 배웠다. 비단 컴퓨터뿐이겠는가.


 소은이가 자라면 언젠가 우리보다 더 잘할 수 있는 날이 많아질 날이 오리라. 그림을 그리는 것도, 요리를 하는 것도, 머리를 쓰는 것도 마찬가지. 어떤 일이든 부모를 뛰어넘고, 부모보다 잘하게 되는 날이 오겠지. 모든 아이는 부모를 보며 자라고, 성장하고, 부모보다 더 커진다. 키도, 머리도 쑥쑥 자라 결국 또 다른 어른이 된다. 그때가 되면 소은이에게 엄마, 아빠는 더 이상 페티도, 루피도, 에디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소은이의 마음속에서 엄마, 아빠가 영원히 해님, 달님이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소은이가 우리를 생각하면 늘 마음이 따뜻하고, 평화롭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언제까지고 소은이를 지켜주는 든든한 존재로, 그렇게 나이 들어가고 싶다.


Photo by Mohamed Nohassi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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