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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진경 Jun 22. 2022

예수님, 안녕하세요.

하느님의 은총으로 태어난 아이

 나는 매주 미사도 못드리고 있는 날라리 신자이지만 어린 소은이에게 최대한 예수님에 대해 자주 말해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어릴 때는 매일 잠자리 전에 아기 교리 책을 읽어주었고, 지금도 밥 먹기 전에는 함께 성호경을 긋는다. 성탄절 같은 대축일에는 성당을 찾아 미사를 드리고 기도해야 할 일이 생기면 다같이 예수님 성상 앞에 서서 기도를 드린다. 또 아이와 길을 가다 성당이 보이면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소은이에게 저 곳은 예수님 성이라고 알려주며 가벼운 인사라도 시키곤 했다.


 얼마전에도 차를 타고 본당(교적을 둔 성당)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그날도 잽싸게 성호경을 긋고 성당을 가리키며 말했다.


M: 소은아, 저기 예수님 성이다. 인사하자.

S: 예수님, 안녕하세요. , 예수님이다!(다른 곳을 보며)

 

 그런데 그때, 소은이가 정말 예수님이 눈 앞에 나타난것처럼 창 밖을 응시하며 놀라는 게 아닌가!

 

M: 어디?

S: 저기 예수님~

M: 어디? 엄마는 안 보이는데?

S: 난 예수님 보여. 난 예수님이 하늘 위에 숨어 있어도 다 알거든!


 가끔 소은이가 이런 말을 할 때면 나는 정말인가 싶어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럴 리 없지만 혹시나 하고 하늘 위를 두리번거렸다. 성당 지붕 위로 십자가만 보일 뿐, 예수님은 보이지 않았다.


M: 그럼 예수님 뭐하고 계셔?

S: 하느님이랑 성모님이랑 같이 계셔.

M: 정말이야?

S: 응. 하느님이 예수님 아빠지? 성모님은 예수님 엄마고?

M: 응, 맞아. 그럼 소은이 눈에 아기 예수님이 보이는 거야?

S: 아니, 큰 예수님. 난 큰 예수님이 잘 보여.


 소은이 눈에 예수님이 보인단다. 그것도 아기 예수님이 아니고 큰 예수님이. 지어낸 얘기라고 하기에는 너무 구체적이고, 사실이라고 하기에는 솔직히 믿을 수 없는. 소은이에게만 보이는 예수님. 가끔 소은이가 이렇게 말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정말 예수님이 소은이 눈에는 보이는 게 아닐까 싶다가도, '소은이가 능청스럽게 연기를 하고 있는 거겠지.' 하며 웃어넘긴다. 어느 쪽이든지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소은이의 맑은 영혼이 부럽다. 나의 마음속에만 있는 예수님이 소은이의 눈에는 보인다니. 그것도 잘 보인다니.


 어느 날은 소은이가 내게 물었다.


S: 엄마, 예수님은 나쁜 아이도 사랑해?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예수님은 나쁜 사람, 좋은 사람을 가려서 사랑하시는 게 아니라 우리 인간 자체를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었으나 어린아이에게 그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조금 걱정이 되었다. 나쁜 아이도 사랑한다고 말한다고 해서 소은이가 나쁜 아이가 되는 것도 아닌데. 차마 그렇게 말하는 게 겁이 났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잠시 생각했다가 소은이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M: 예수님은 모든 아이를 사랑해. 하지만 나쁜 행동은 잘못된 거야. 엄마가 소은이가 잘못했을 때 야단치는 것도 소은이가 미운 게 아니라 소은이의 잘못된 행동이 미운 거야. 예수님은 나쁜 아이도 사랑하시지만 나쁜 행동은 사랑하시지 않아.


 이게 적절한 답변인지는 모르겠다. 예비 신자 때 배운 교리 공부가 신앙 교육의 전부이고, 성경은 소은이를 뱃속에 품었을 때 한번 읽은 게 끝인 나로서는 이게 최선의 답변이었다. 다만 그 순간 소은이가 아주 어릴 때부터 읽어주었던 아기 교리책이 문득 떠올랐다.


 예수님은 아이들을 사랑한다. 개구쟁이, 심술꾸러기, 부끄럼쟁이여도 모두 모두 사랑한다는 바로 그 구절.


알콩달콩 우리 아기 교리1 <예수님이 누구예요?> 글 고수산나. 그림 김정초. 바오로딸.

 소은이는 내 말을 이해했는지, 안 했는지 모르겠지만 별 대꾸 없이 나의 말을 넘겼다. 아이가 커갈수록 주일학교에 보내 제대로 된 신앙 교육을 받게 하고 싶은 욕심이 들었다. 하지만 막상 본당의 유치부는 활성화되어 있지 않고, 어린이 미사 시간도 우리 가족의 활동 시간과 맞지 않았다. 결국 주일 학교는커녕 매주 미사도 제대로 못 드리고 있는 상황이니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을까? 매번 중요한 건 마음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해보지만 몸이 가는 곳에 마음도 가는 법! 이제는 정말 아이를 데리고 성당이든, 성지이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얼마 전, 그 생각의 일환으로 온 가족이 다 함께 남한산성 순교성지를 찾았다. 벚꽃이 아직 지지 않았던 늦봄, 꽃구경을 핑계 삼아 친정 부모님과도 동행하였고, 3대가 함께 십자가의 길을 거닐며 묵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십자가의 길이 숲 속에 있다 보니 길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었고, 기도처에서 묵상을 한 후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 선택을 해야 했다. 우리는 아무 거리낌 없이 이 쪽이 맞다고 생각하고 한쪽 길을 택했는데 그 와중에 씩씩하게 혼자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는 소은이. 아무리 불러도 꿋꿋하게 제 갈 길을 가길래 내가 얼른 쫓아가서 "소은아, 이 쪽이야."하고 아이를 데려왔다. 그런데 걸으면 걸을수록 기도처의 그림들이 이상한 게 아닌가. 결국 소은이가 처음 간 길이 맞았고, 어른들은 모두 반대 방향으로 걷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숲 속에서 이정표도 없이 바른 길을 찾아간 소은이가 신기하고 대견했다. 소은이에게 어떻게 길을 알았냐고 묻자, 소은이는 빙그레 웃을 뿐 말이 없다. 나는 '역시 우리 은총이는 다르네!'하고 소은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은총이는 소은이의 태명이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세상에 태어난 아이.


 소은이는 세 번의 과배란, 세 번의 인공수정, 세 번의 시험관 시술 끝에 힘들게 우리에게 온 아이였다. 그마저도 2차 피검사 수치가 오르지 않아 병원에서는 이번에도 임신은 실패했으니 더 이상 질정을 넣지 말고 끊으라고 했었다. 그날은 2017년 7월 1일 토요일이었다.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그 길로 용인 수지에 있는 '하늘의 문 성당'에 윤민재 신부님을 찾아가 성모 신심 미사를 드렸다. (현재 윤민재 신부님은 수원교구 상촌 성당에 계신 걸로 알고 있다.) 베드로 신부님은 생명 축복과 치유의 은사로 유명하신 분이었다. 성모 신심 미사는 보통 매월 첫째 주 토요일 오전 미사 중에 있는데 마침 그날이 한 달에 한 번 있는 성모 신심 미사가 있는 날이었다. 미사 중 태중 아기 축복, 임신 및 치유의 안수 예식이 있었우리 부부는 혹시나 신부님을 뵙고, 임산부 축복을 받으면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실낱 같은 희망을 품었다.


 미사가 시작되고 신부님의 강론을 들으며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신부님께서 성체조배를 하고 계시던 중 주님께서 생명의 축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 후로 수많은 사람들이 신부님께 안수 기도를 받고 임신이 되었다고 하는데 그 과정도 감동스러웠지만 그들의 마음에 너무 공감이 되어 마음이 아팠다. 아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 그건 난임을 겪지 않아 본 사람은 모르는 또 다른 고통이었다.


 그렇게 신부님께 안수 예식을 받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토요일도 문을 여는 동네 산부인과를 찾아 다시 피검사를 했다. 기적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이번에도 임신이 안되면 더 이상 냉동해둔 배아가 없어서 다시 난자 채취를 해야했다. 그 힘든 터널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자신도, 여력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리고 몇 시간 후 우리에게도 기적이 일어났다. 묵주 기도를 드리고 있는데 의사 선생님에게 직접 전화가 걸려왔다. 피검사 수치가 너무 높다고. 임신이 맞으니 초음파를 보러 오라믿을 수 없는 말을 들으며 나는 그 자리에서 눈물을 펑펑 흘렸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감격의 눈물이었다.  하느님께서 기적같이 은총이를 지켜주셨던 것이다.

 

 소은이는 이렇게 간절한 기도 속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태명을 은총이로 지었다. 그날 피검사의 수치가 오른 것도 혹자는 그냥 우연이라고 하겠지만 나는 그것을 기적이라 믿는다. 종교라는 것 자체가 사실 우연을 필연으로 해석하고, 거기에 믿음을 부여하는 게 아닐까. 가끔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도 세상에는 일어나는 거니까.


 어제는 소은이와 다 같이 집에서 기도를 했다. 주님의 기도와 영광송을 외우고, 각자 돌아가며 기도를 청했는데 소은이의 기도문이 우리에게 웃음을 주었다.


S: 아빠가 화 안 내게 해 주세요. 엄마가 저랑 놀아주게 해 주세요. 아멘.


 가끔 소은이가 우리에게 얼마나 힘들게 온 존재인지 잊을 때가 있다. 전국의 성지를 순례하고, 날마다 예수님께 아이를 달라고 청했던 지난날. 절망 속에서 간절한 기도와 은총으로 태어난 아이이기에, 더욱더 하느님의 품에서, 예수님의 자녀로 자라게 하고 싶다. 오늘은 우리 소은이의 기도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엄마, 아빠가 그 기도를 들어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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