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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진경 Jun 02. 2022

갈매기하고 하늘을 나는 것 같아.

소은이의 말! 말! 말! (3) 일상에서 찾은 너의 보석 같은 말들


 내가 슬리퍼랑 신발 정리하면 아빠가 깜짝 놀라겠지?

 나도 엄마처럼 뾰족한 신발 신고 싶다.

(엄마 구두를 신어보고)

 나 엄마가 됐다!!!


 아이는 부모를 흉내 내고 모방하며 자란다. 특히 남근기 시기의 아이들은 더더욱 부모의 성 역할을 보고 자라고, 어머니의 여성성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초자아가 형성되면서 이성 부모에 대한 콤플렉스도 자연히 해소된다고 한다. (관련 글 보기: https://brunch.co.kr/@ella1004/96) 그래서 이 시기의 여자 아이들은 엄마의 화장품을 몰래 발라보거나, 엄마의 뾰족구두를 신어본다거나, 엄마의 옷을 입고 좋아하기도 한다. 소은이는 내 립스틱을 몰래 발라서 망가뜨리거나 로션을 바닥에 발라서 다 없애버리는 짓궂은 행동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대신 내 묵주팔찌를 탐내서 가져갔다가 여러 번 끊어트리고, 귀걸이나 목걸이 같은 액세서리를 구경하는 일을 좋아했다. 보석을 보며 눈을 반짝일 때는 천생 여자 아이라는 생각이 들곤 했는데 얼마 전에는 현관에서 신발들을 정리하다가 내 구두를 신어보더니 엄마가 됐다며 기뻐하는 게 아닌가.

 나는 진심으로 기뻐하는 아이를 보며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아직은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엄마가 하는 게 제일 좋아 보이는 나이. 아이가 언제까지 엄마를 동경할 수 있을까? 곧 엄마보다는 친구가, 선배가, 연예인이 더 좋아질 때가 올 텐데. 그때가 오기 전에 지금의 행복을 실컷 누려야겠다.

 



(응가한 후)

M: 소은이 응가하고 나니 기분이 어때?

S: 날아갈 것 같아요. 갈매기하고 하늘을 나는 것 같아. 고래 등에 타고 있는 기분이에요!


 얼마 전부터 소은이가 어른 변기에 대변을 보기 시작했다. 유산균을 바꾸고, 푸룬 주스도 바꾸면서 변비도 없어졌다. 드디어 대변 훈련이 자리를 잡으면서 아이도 대변을 보고, 상쾌한 기분을 느끼기 시작했나 보다. 그런데 그때 소은이가 말한 소감이 예술이라, 잊히지가 않는다. 갈매기하고 하늘을 나는 기분은 어떤 걸까? 고래 등에 타고 있는 기분은 또 어떻고. 아이는 경험해보지 않은 일을 어떻게 상상하여 이런 멋진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걸까. 나는 아이의 상상력과 표현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걸 보면서 자연이나 일상생활에서 직접 경험하고, 체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책이나 영상매체 등을 통해 그에 못지않게 간접 경험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아이는 스펀지처럼 모든 걸 흡수하니까. 그래서 아이가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는 좋은 책을 선별하고, 연령과 수준에 맞는 영상을 보여주는 것도 엄마에게 주어진 중요한 과제인 것 같다.




(가자미를 보고)

M: 소은아, 소원 빌어봐. 가자미는 소원을 들어주는 물고기야.

S: 가자미야! 난 엄마 아빠한테 딱 붙어있고 싶어!


 어느 날 식탁에 반찬으로 올라온 가자미를 보더니 "앗! 소원을 들어주는 물고기다."라며 반가워하는 소은이. 책장으로 달려가 책을 찾아와서는 책에서 본 물고기와 똑같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 얼마나 귀여웠는지. 소원을 들어주는 물고기는 <어부와 그의 아내>라는 그림 형제의 동화에 나오는데, 사실 엄밀히 말하면 가자미가 아니라 넙치라고 한다. (너무 비슷하게 생겨서 나도 글을 쓰는 지금에서야 알았지만) 어쨌든 당시에는 소은이가 아는 체하는 모습이 무척 귀여워서 가자미에게 소원을 빌어보라고 했다. 그러자 소은이는 엄마 아빠와 딱 붙어있고 싶다는 깜찍한 소원을 빌었다. 사랑하는 소은아, 그 소원은 꼭 이루어질 거란다!




엄마, 이건 예쁜 점이에요?

나 점 하나 있어서 좋겠지?

이렇게 반짝반짝 빛나지?


 한 번은 피부과에 갈 일이 있었는데 피부과 의사 선생님이 소은이의 손가락에 있는 점을 보고 "이건 예쁜 점이야. 빼지 않아도 돼."라고 한 마디 하셨다. 그 뒤로 소은이는 몇 번이나 자기 손에 있는 점을 가리키며 이건 예쁜 점이라고 뿌듯해하고, 만나는 사람마다 자기 손가락에는 예쁜 점이 있다며 자랑을 했다. 의사 선생님을 만나기 전에는 아무 의미가 없던 점이, 말 한마디에 반짝반짝 빛나는 소중한 점이 되다니. 참 신기한 일이다. 아이에게는 어른이 무심코 하는 말 한마디도 큰 영향을 줄 수 있구나, 특히 의사 선생님처럼 권위가 있고 신뢰가 가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네를 타며)

S: 엄마, 높이 높이 하늘 높이.

우리나라 사람들 다 지나가고, 외국 사람들이 보일 때까지 높이 높이 밀어줘.


 언젠가 놀이터에서 소은이에게 그네를 밀어주고 있었다. 소은이는 하늘 높이 그네를 밀어달라고 하면서 외국 사람들이 보일 때까지 높이 밀어 달라는 말을 했다. 나는 별 거 아닌 것 같은 그 말이 참 놀라웠다. 소은이는 그네를 타고 올라가면 우리나라에서 벗어나 외국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 소은이의 어린 마음에는 그네를 타고 하늘 높이 올라가면 외국이 보인다고 생각한 걸까. 문득 서정주 시인의 <추천사>에서 춘향이가 향단이에게 그네를 밀어달라고 하는 장면이 생각났다.  


향단아 그넷줄을 밀어라

먼 바다로

배를 내어 밀 듯이,

향단아.

<중략>

산호도 섬도 없는 저 하늘로

나를 밀어 올려다오.

채색한 구름같이 나를 밀어 올려다오.


 시에서 춘향이는 현실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세계인 하늘로 가길 원한다. 결국 그네는 지상에서 잠시 조금 더 올라갔다 내려오는 것일 뿐인데. 이제 다섯 살인 소은이의 마음에도 하늘 높이 올라가고 싶은 욕구가 있는 걸 보면, 인간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나이를 불문하고, 어쩌면 비슷한 생각을 지니고 사는 존재가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잠이 덜 깨서)

S: 엄마 내 눈이 반짝이지 않아.

          

(바람이 불면)

S: 엄마, 우리 소은이 날아가면 어떡해~~


 아침에 잠이 덜 깨서 '눈이 떠지지 않아.'라는 말 대신 '눈이 반짝이지 않는다.'라고 말하고, 바람이 불면 바람에 날아갈까 걱정하는 귀여운 꼬맹이. 그런 너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아이가 일상에서 이런 말을 할 때마다 메모장을 열어 열심히 기록한다. 아이의 말을 놓칠세라, 길을 가다 적기도 하고, 어떤 때는 음성 메시지로 휴대폰에 녹음을 하기도 한다. 기록해둔 것을 그때그때 글로 남기면 좋겠지만 일상이 바쁘고 힘들어 그러지 못했다. 하지만 이렇게 차곡차곡 메모장에 적어둔 말들을 하나 둘 꺼내다 보니, 아이가 새삼 더 사랑스러워진다. 신기한 일이다. 글을 쓰며 아이를 다시 한번 바라보게 되고, 아이의 마음을 한 번 더 생각하게 되어서 그런가. 글쓰기가 가지는 긍정적인 선물인 셈이다. 그리고 글을 쓰며 하나 더 깨달은 사실은 아이는 계속 보석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는 것. 다만 엄마가 글로 쓰지 못했을 뿐이다. 그동안 글을 쓰지 못한 것은 아이가 변한 게 아니라 엄마의 게으름 탓이니 더 이상 아이 핑계는 대지 말아야겠다.


 나는 글을 쓸 때 가장 행복하다. 여러 종류의 글을 쓰지만 그중, 아이와의 대화를 글로 쓸 때가 가장 편안하고 행복하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같은 마음으로 미소 지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소은이가 먼 훗날 이 글을 읽고, 반짝이는 유년 시절을 추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내가 언제까지 글을 쓸 수 있을까. 계절이 바뀌고, 내 건강과 여건이 허락되는 그날까지 오늘도 열심히 글을 써보련다!


 (그동안 소은이가 했던 짧은 말들도 전부 기억하고 싶어서 며칠 동안 주제별로 묶어서 글을 써보았어요. 1편에서는 엄마가 아이에게 받는 사랑, 2편에서는 자연 속에서 더 반짝이는 아이, 3편에서는 일상에서 찾은 보석 같은 말들이라는 주제로 소은이가 한 말들을 정리하였습니다. 앞으로는 밀리지 않고, 그날그날 글쓰기를 할 수 있길 바라며. 소은이의 말! 말! 말! 시리즈를 마칩니다. 읽어주신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1편. 아이에게 받는 사랑 https://brunch.co.kr/@ella1004/107

  

2편. 자연 속에서 더 반짝이는 아이 https://brunch.co.kr/@ella1004/112



Photo by LER ZENG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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