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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진경 May 29. 2022

엄마, 왜 엄마 눈동자에 내가 있어?

소은이의 말! 말! 말! (1) 아이에게 받는 사랑 

 문득 <아이는 말하고 엄마는 씁니다> 매거진에 글을 안 쓴 지 두 달이 되어감을 깨달았다. 두 달 동안 부쩍 육아가 힘들었다. 그동안 글로 담을 만한 내용이 없을 만큼 소은이와 반짝이는 대화가 사라졌던 걸까, 아니면 아이의 보석같이 빛나는 말들을 내가 놓치고 있을 만큼 삶이 바빴던 걸까. 특히 지난 일주일은 우리 집에 코로나가 오면서 일상이 멈추었다. 가족 중 누군가가 아프면, 특히 그게 아이라면 더더욱 엄마의 일상은 증발한다. 힘들었던 한 주가 지나고 일상이 회복되면서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은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이었다.

 가족들이 모두 잠들고 오랜만에 글을 쓰고 싶은 밤, 나는 소은이가 던진 구슬들을 꿰어보려 주섬주섬 작가의 서랍을 꺼내 열어본다. 소은이의 말을 놓치고 싶지 않아 그때그때 기록해둔 짤막한 문장들. 그 문장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그녀가 뱉은 말들이 춤을 추듯 다시 살아난다.




(엄마 눈을 바라보며)

S: 엄마 눈이 무지개색이야.  

엄마, 왜 엄마 눈동자에 내가 있어?

M: 소은이가 보고 싶어서 항상 담아 두려고 엄마 눈에 넣어둔 거야.(2022.01.08)


  '왜 엄마 눈동자에 내가 있어?' 이 무렵 소은이가 자주 하던 질문이다. 막 다섯 살이 된 소은이는 내 눈을 들여다보며, 자기가 내 눈 안에 들어있다고 해맑게 웃곤 했다. 아이에게는 왜 엄마 눈동자에 자신의 모습이 비치는지 과학적으로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그보다는 엄마가 소은이를 너무 사랑해서 항상 눈에 담고 다닌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아이는 나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몇 번이고 내 눈을 들여다보며 엄마의 눈동자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살폈다. 나는 나의 눈동자에 비친 소은이의 모습에서 아이가 지금처럼 편안함과 행복감을 오래오래 느꼈으면 했다. 그러려면 내가 먼저 아이를 따뜻한 눈으로,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봐주어야 할 테지. 그리고 문득 내 모습도 궁금해 아이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아이의 새까만 눈동자 속에 내가 보였다. 아이의 눈동자에 비치는 나는 어떤 모습일까. 나는 서로의 눈동자에 비치는 우리가 지금처럼 평온한 모습이기를, 언제까지나 행복하기를 마음속으로 빌었다.

 



엄마 나 눈물이 났어.

엄마가 안 와서.

나 엄마한테 편지 두 개나 썼어

이거 봐 봐. (2022.01.17)


 아이는 이렇게 말하며 고사리 같은 손으로 어린이집 가방에서 낙서하듯 그린 쪽지를 내밀었다. 쪽지에는 글자 대신 삐뚤삐뚤한 하트가 그려져 있었다. 아, 그때 내 마음이 얼마나 애틋하고, 몽글몽글하고, 짠하면서도, 행복했는지 모른다. 글자를 모르는 아이에게 하트는 '사랑해요.'라는 표현이었다. 당시 아이는 하트를 가리키며 '사랑해요.'라고 또박또박 읽었고, 내가 그림을 그릴 때면 항상 하트를 그려달라 조르곤 했다.  이 날은 아마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늦게 찾았나 보다. 아이는 나를 기다리며 눈물이 났구나. 오지 않는 엄마가 얼마나 야속했을까. 하지만 아이의 말속에는 엄마에 대한 원망이 묻어있지 않았다. 사랑만 있었다. 나는 아이가 고맙고 미안해서 아이를 꼭 껴안아주었다.  



엄마, 내가 아기 때 많이 울어서 힘들었지? 미안해(22.01.29)

 

 어느 날 소은이가 나에게 사과를 했다. 예민한 기질의 소은이는 아기 때 정말 많이 울었다. 그냥 운 정도가 아니었다. 아기 때 소은이를 떠올리면 방긋방긋 웃는 모습보다는 악을 쓰고, 소리를 지르고, 자지러지는 장면이 떠오른다. 그런데 소은이가 정말 아기 때 일을 기억하고 난데없이 미안하단 말을 한 걸까. 아니면 앨범에서 아기 때 울던 자신의 사진을 보고 한 말일까. 어떤 것이든 나는 아이의 사과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차마 "아냐, 엄마 하나도 안 힘들었어."라는 거짓말은 나오지 않았다. 대신 사과를 받았으니 힘들었던 기억은 쿨하게 잊고, 행복했던 추억만 간직해보려 한다.




우리 엄마는 도토리처럼 그렇지 않고 솜사탕처럼 부드러운데(2022.2.18)


 대부분은 소은이가 말할 때 그 상황을 적어두고 맥락을 더듬어보곤 하는데 이 메모에는 앞뒤 아무런 설명이 적혀 있지 않았다. 하지만 적혀있는 시간이 밤 10시 20분인 걸 보니 소은이와 그림책을 읽고 읽었던 걸로 추정된다. 도토리는 실제 우리 생활에서 보기 어려우니 아마도 도토리가 나오는 다람쥐 그림책을 보았던 모양. 도토리 단단하고 딱딱하지만 엄마는 솜사탕처럼 부드럽다는 말을 하고 싶었나 보다. 엄마와 아이의 감정 선이 지금보다 좀 더 평온했던 시기였다. 다시 솜사탕 같은 엄마로 돌아가고 싶다.




S: 우리 가족은 해님, 달님이야.

아빠는 해님, 엄마는 달님.

M: 왜 아빠는 해님이고 엄마는 달님이야?

S: 아빠는 크고 멋있고 엄마는 달처럼 예쁘니까.

M: 그렇구나, 그럼 소은이는 별님이야.

하늘에 반짝반짝 빛나는 가장 예쁜 별. (2022.2.22)


 메모를 보니, 소은이의 네 돌 생일날 잠자리에 누워서 도란도란 나눈 대화였다. 소은이에게 아빠는 해님처럼 크고 강한 존재, 엄마는 달님처럼 예쁘고 포근한 존재라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아이가 세상에 태어난 지 만으로 4년. 조그맣던 아이가 언제 이렇게 커서 이토록 사랑스러운 생각들을 조잘거릴까 싶어 행복했던 밤.




나, 길에서 엄마가 서있어서 정말 좋았어. 엄마가 추운데 나 보려고 기다리고 있었어.

나 유치원에서 엄마 보고 싶어서 눈물 날 뻔했는데 엄마 사진 보고 눈물이 다시 쏙 들어갔어.

난 유치원 버스가 제일 좋아. 유치원 버스 아저씨도 제일 좋아. 나 유치원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주고, 버스 선생님은 나 안전벨트도 채워줘. (2022.03.04)


 유치원에 입학하고 이틀째 된 날. 처음 셔틀버스를 태워보내며 눈물짓던 나는 아이의 이 말을 듣고 얼마나 안심이 되었는지 모른다. 유치원에서 엄마가 보고 싶으면 보라고, 엄마 아빠 사진을 하트 목걸이에 넣어서 목에 걸어주었다. 면서도 내심 이게 도움이 될까 싶었는데 눈물이 쏙 들어갈 정도로 힘이 되었다니 기뻤다. 하원할 때 미리 정류장에 나가 아이를 기다리는 내 모습에 아이가 감동했다니 그것도 기뻤다.

 어쩌면 아이는 어른이 보기에는 아주 사소하고, 작은 일로도 행복해하고 만족을 느끼는데 부모가 그걸 눈치채는 일이 어려운 게 아닐까. 이렇게 아이가 늘 속마음을 말로 해준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기에. 심지어는 아이가 이렇게 자신의 마음을 보여줬는데도 불구하고 바쁘게 살다 보면 잊고 살기도 한다.

 아이가 유치원에 간 지 3개월이 된 요즘은 가끔 아이 마중에 늦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약속 장소에서 버스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데 한 번은 아이가 유치원 선생님 손을 잡고 밖에 나와서 나를 기다린 적이 있었다. 헐레벌떡 뛰어 오는 엄마를 보며 아이의 마음이 어땠을까? 고작 1~2분 차이이지만, 아이가 먼저 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혹시나 미리 오지 않은 엄마가 섭섭하진 않았을까? 하루 종일 유치원에서 생활하며 엄마와 떨어져 있는 아이인데 먼저 나가 아이를 마중하는 것이 뭐 그리 어렵다고. 아이에게 새삼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소은아, 내일부터는 엄마가 꼭 먼저 나가서 너 보려고 기다리고 있을 게. 소은이가 보이는 그 길에 엄마가 딱 서 있을게.



엄마가 화내면 엄마가 덜 예쁘고

엄마가 나 사랑해주면 엄마가 더 예뻐.

엄마가 화내면 내 기분이 어떨까?(22.04.30)


 어느 날 아이에게 화를 내고 있는 나에게 소은이가 천연덕스럽게 이렇게 질문을 던졌다. 나는 화내는 걸 멈추고 빙그레 웃을 수밖에 없었다. 예전에는 내가 화를 내면 소은이도 같이 화를 냈는데 요즘 소은이는 그렇지 않다. "엄마, 왜 그렇게 세게 말해?"라든가 "엄마, 왜 그렇게 화를 내?" 하며 마치 나를 타이르듯 얘기한다. 물론 내가 화를 낼 때 대부분은 소은이가 잘못을 했거나, 십중팔구 먼저 화를 냈거나, 몇 번을 말해도 말을 듣지 않는 경우이다. 다섯 살 아이가 벌써 나를 가르치려 드니, 나는 어이가 없다가도 소은이가 귀여워 웃고 만다.    




S: 엄마 고마워요. 엄마 지난번처럼 천사 같아요.

M: 엄마가 언제 천사 같았는데?

S: 엄마 매일매일 천사야.

엄마 매일 예쁘고 귀여워(22.05.08)


  왜 고맙다고 했는지 이유는 적혀 있지 않다. 다만 어버이날에 아이에게 이런 말을 들어 매우 기뻤던 기억만 남아있다. 요새 부쩍 아이에게 화를 낸 적이 많았는데 아이는 그런 엄마의 모습은 다 잊고, 엄마를 천사라고 해주다니. 이럴 때마다 내가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보다 소은이가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더 크다는 걸 느낀다. 흔히 부모의 사랑이 맹목적이라 하지만 그 반대이다. 어느 책에서 보았던가. 어린아이는 본능적으로 부모를 더 사랑한다고.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부모가 잘못한 기억은 잊고 잘해준 기억만을 떠올린다고 한다. 정말 소은이도 그런 걸까?



나 엄마 딸로 태어나서 너무 기뻐.

이렇게 착한 엄마가 없을 거야.(2022.05.24)


 소은이가 왜 이런 말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이 날은 얼마 전 소은이가 아프기 시작한 날인데, 메모해둔 시간을 보니 열이 펄펄 나는 아이를 데리고 정신없이 병원에 간 시점이다. 웬만해서는 몸이 처지지 않는 아이인데, 이 날따라 축 처지는 아이를 보고 얼마나 가슴이 철렁했던가. 나는 아이의 신발도 신기지 못하고 맨발 차림으로 아이를 들어 올려 유모차에 싣고 병원으로 뛰어갔다. 약을 처방받고, 한 시름 돌렸을 때였나. 힘없는 소은이의 얼굴을 감싸 안고, "우리 소은이 많이 힘들었지? 이제 괜찮아." 다독였던 기억만 어렴풋이 남아있다.  

 아마도 그때 소은이가 저런 말을 한 게 아닐까. 아이가 아플 때 가장 의지가 되는 존재는 역시 엄마구나 생각하니 코끝이 찡하다. 한편으로는 아이가 말한 것처럼 내가 정말 착한 엄마일까 싶은 생각이 들어 슬며시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과연 아이에게 내가 하는 언행이 언제나 곱고 바르며 상냥했을까? 아이의 말을 통해 나를 다시 한번 돌아본다. 언제나 좋은 엄마, 착한 엄마가 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아이의 말에 부끄러운 엄마가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소은이와 나눈 짧은 대화 속에 '엄마'와 관련된 말들만 정리해보았다. 적다 보니 내가 그동안 아이에게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았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내가 아이를 더 많이 사랑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아이가 나를 더 사랑해주고 있었다. 내일은 내가 더 사랑해줘야지. 한 번 더 사랑한다 말해주고 아이를 꼭 안아주어야겠다.

 

Photo by DAVID ZHOU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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