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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진경 Jun 01. 2022

엄마, 개미가 엄마 심부름하는 것 같아.

소은이의 말! 말! 말! (2) 자연 속에서 더 반짝이는 아이

하늘이 정말 예쁘네.

하지만 하늘보다 엄마가 더 멋있어.

하지만 또 엄마보다는 내가 더 귀엽지?


 소은이는 하늘을 좋아한다. 특히 차를 타고 가면서 보는 하늘을 좋아한다. 차에서는 하늘이 더 잘 보이는 걸까. 차를 타고 가다 고가 다리 위로 올라가면 어김없이 기분이 좋아져 소리를 친다. "우리가 지금 하늘을 날고 있어~!"라고. 그렇게 소은이는 정말로 하늘을 나는 것 마냥 신이 나서 어쩔 줄 모른다. 그런데 그 예쁜 하늘보다 엄마가 더 멋있다니 이렇게 영광스러울 수가. 이 짧은 세 문장 속에서 아이의 언어 능력이 성인과 별다르지 않음을 깨닫는다. 대상을 비교할 줄 알고, 대상의 특징도 잘 파악하고 있다. 하늘은 예쁘고, 엄마는 멋있고, 소은인 귀엽고. 이렇게 대상에 따라 제각기 다른 형용사를 사용하는 것도 얼마나 신기한지. 영리한 다섯 살 꼬맹이, 이제 다 큰 것 같다.



엄마, 벌이 우리 먹으려고 온 게 아니야.

우리한테 인사하려고 온 거야.

우리 뭐하나 보러 온 거야.


 어느 날 꽃밭에서 벌을 보고 무서워하는 엄마를 향해 소은이가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유독 벌을 무서워해서, 벌이 오면 소스라치게 놀라곤 했다. 그런 나를 보고 소은이는 안심하라는 듯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소은이는 벌을 무서워하는 내 모습이 벌에게 잡아먹힐까 봐 무서워하는 걸로 보였나 보다. 벌이 우리한테 인사하려고 왔다는 말에, 우리 뭐하는지 보러 온 거라는 아이의 말에, 나는 그 순간 살면서 처음으로 벌이 덜 무서워졌다. 차마 귀엽다고까지는 말할 수 없지만, 소은이 덕분에 처음으로 벌에게 적대심이 사라졌다고 해야 하나. 이전까지 벌은 내게 공포의 대상이기만 했는데, 다섯 살 아이가 이렇게 엄마를 안심시키다니. 아이의 순수한 마음이 나를 웃게 하고, 나를 변화시킨다.

 



엄마, 개미가 엄마 심부름하는 것 같아.


 길을 가다 아이는 종종 주저앉는다. 땅바닥에는 아이의 시선을 잡아 끄는 생명체들이 많다. 지렁이, 개미, 공벌레, 무당벌레, 거미 등등. 어느 날은 열심히 일하고 있는 일개미들을 보며 아이가 이런 말을 했다. 개미가 바삐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엄마 심부름을 하는 것 같다니. 아이의 말에 나는 저절로 미소가 나왔다.

 나도 어릴 때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개미를 보고, 풀밭에서 네 잎 클로버를 찾으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어른이 되면서 개미에게서, 네 잎 클로버에서 모든 관심이 사라졌다. 그에 비해 아이들은 섬세한 자연 관찰자이다. 아이들에겐 모든 세계가 탐구 대상이다. 오랜만에 나는 소은이 곁에 쭈그리고 앉아 개미들을 바라봤다. 그러자 내 눈에도 개미들이 엄마 심부름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엄마 개미, 아빠 개미, 오빠 개미, 언니 개미, 동생 개미.. 그렇게 오래오래 개미 가족들을 바라봤다. 빨리 가자고 재촉하지 않고, 서두르지 않고. 아이의 눈과 마음에 맞추면서 말이다.




S: 엄마, 저것 좀 봐요. 구름이 움직여요. 엄마, 달콤한 솜사탕 같아.

M: 구름이 달콤한 솜사탕 같아?

S: 응, 맛있겠다! 엄마, 근데요. 솜사탕이랑 하늘이랑 친구예요?

M: 응, 친구인가 봐. 그러니 하늘이 솜사탕을 초대한 거겠지?


 비유법을 가르쳐준 적 없건만, 아이들은 저절로 비유법을 터득한다. 구름을 보고 달콤한 솜사탕을 떠올리고, 솜사탕과 하늘을 살아있는 사람처럼 생각하고, 함께 있으니 친구라고 생각한다. 난 매일 구름이 떠 있는 하늘을 보면서도 그들이 친구라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는데. 역시 아이의 시선은 곱고 투명하다. 이런 물활론적 사고(무생물에게 생명과 감정을 부여하는 사고. 모든 사물이 살아있다고 생각하여 무생물에 생명과 감정을 부여하는 사고를 뜻하다.)는 유아기에 나타나는 인지적 특성 중 하나이긴 하지만, 나는 아이의 이런 발달 과정이 시인의 감성처럼 느껴져 참 좋다. 이런 꼬마 시인들이 나이가 들고, 학교에 가면 왜 시인의 감성을 잃어갈까? 국어교사로서 늘 안타까운 부분이다. 엄마로서, 그리고 시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소은이의 이런 예쁜 마음을 오랫동안 지켜주고 싶다.


 소은이랑 대화를 하다 보면 소은이는 자연 속에서 더 반짝이는 아이라는 걸 느낀다. 아이가 구사하는 비유들도 자연 속에 있을 때 그 빛을 발할 때가 많다. 이런 표현들은 책이나 장난감을 통해 얻어지는 게 아니라 직접 보고, 듣고, 느낄 때 자연스럽게 묻어 나온다. 밖에서 아이를 더 뛰놀게 하고, 다양한 자연과 마주하게 하고픈 이유도 여기에 있다. 키즈 카페에서는 나오지 않는 표현들. 텔레비전을 보면서는 느낄 수 없는 반짝이는 말들이 자연 속에 있을 때 튀어 나온다.

 

 문득 얼마 전에 소은이가 혼자 앨범을 뒤적이다 "엄마, 나 이 사진처럼 바다에 가고 싶어요."라고 간절히 말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소은이가 가리킨 사진에는 바닷가에서 놀고 있는 아기 소은이가 있었다. 코로나가 터지기 직전 마지막으로 갔던 여행이니 벌써 3년 전 사진이다. 소은이의 기억 속에 바다는 어떤 풍경일까? 사진 속에서만 존재하는 바다가 아닌 소은이가 피부로 느끼고, 만질 수 있는 바다를 선물해주고 싶다. 이번 여름은 소은이를 데리고 산으로, 들로, 바다로 여행을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마침 내일부터 유치원에서도 여름학기가 시작된다. 소은이가 다니는 유치원은 계절마다 프로젝트 수업을 하는데 6, 7월 여름 학기는 자연 체험을 목표로 해서 매일 등원 자체를 숲으로 하게 된다. 자연이 주는 다양한 자극 요소를 놀이로 즐기고 체험해본다고 하니 엄마인 나도 기대가 많이 된다. 소은이가 온몸으로 자연을 느끼고 자연을 사랑하는 아이로 컸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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