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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진경 Mar 18. 2022

엄마도 어린이가 되면 할 수 있어

<어린이라는 세계> 프리뷰

S: 엄마, 내가 아로미(코코몽에 나오는 귀여운 토끼 인형의 이름)에게 유니콘 침대 만들어줬어.

M: 어머, 그러네. 소은이가 아로미 정말 좋아하나보구나.


 아이를 재우고 있는데 침대 위에 한 줄로 늘어진 인형들이 보인다. 처음에는 아무렇게나 놓여있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이의 말을 듣고보니,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인형들은 저마다 규칙을 가지고 분류되어 있었다. 길고 큰 인형들은 침대 역할을 하고, 상대적으로 짧고 작은 인형들이 그 위에 놓여 있었다.


M: 소은이 정말 대단하다. 그러고 보니 친구들이 모두 각자 침대 위에서 자고 있네. 소은이가 친구들에게 침대를 만들어줬구나.

S: 응, 생쥐한테는 이불도 덮어줬어.


 그러고보니 생쥐 인형이 소은이가 아기 때 쓰던 작은 베개를 침대 삼아 누워 있고, 가재 손수건은 이불 역할을 하고 있었다. 저 손수건은 또 어느 틈에 가져온 것인지 아이의 아기자기한 면모에 빙그레 웃음이 나왔다.

  

M: 소은이 정말 착하구나. 생쥐 추울까봐 이불도 덮어주고.

S: 응, 나 정말 착하지?

M: 응, 둘리는 애벌레 침대위에, 아로미는 유니콘 침대위에, 토끼는 라이온 침대위에, 세균킹과 코코몽은 곰돌이 침대 위에, 생쥐는 소은이 베개침대 위에서 자고 있는 거구나! 친구들이 침대가 생겨서 잠이 정말 잘 오겠는걸?

S: 맞아.

M: 엄마는 그런 생각 못해봤는데... 우리 소은이 기특하네.

S: 엄마도 어린이가 되면 할 수 있어.

M: 응?

S: 엄마도 나처럼 어린이가 되면 할 수 있을거야.


 소은이는 자기가 어린이인것을 뿌듯해하며 내게 희망을 가지라는 듯이 격려하듯 말했다. 소은이의 말은 내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어른인 내가 어린이가 되면 할 수 있다고? 이것은 마치 아이가 나를 어린이라는 세계로 초대하는 말 같았다.

 하지만 어린이가 되는 일은 내가 아무리 하고 싶어도, 아무리 노력해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순간 소은이와 나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세계가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우리는 같은 공간에 머물고 있지만 소은이는 어린이라는 세계에서 살고 있구나. 어른인 내 눈에는 그저 어질러져있던 인형들은 사실 아이가 만들어둔 질서 속에 놓여 있었다. 아이는 자신이 만들어놓은 세계 속에서 인형들과 관계를 형성하고, 배려하고, 온정을 베풀고 있었다. 어른은 흉내낼 수 없는 어린이만의 고유한 마음. 나는 어떻게 하면 소은이의 바람대로 이러한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어린이는 커서 어른이 되지만 어른은 다시 어린이로 돌아갈 수 없다. 그럼 우리는 이제 영영 어린이라는 세계를 알 수 없는 것일까? 어린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볼 수 없는 것일까? 이런 생각에 머물자 문득 김소영 작가의 에세이 <어린이라는 세계>라는 책이 떠올랐다. 워낙 유명해서 진작에 읽어보고 싶었지만 그동안 읽지 못했던 책이다. 나는 소은이를 재우고 거실로 나와 노트북을 켰다.  그리고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서 이 책의 리뷰를 읽어보았다. 저자는 책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쓰면서 알게 된 한 가지는, 어린이라는 세계는 우리를 환대한다는 사실이다. 우리에게 '어린 시절'이라는 공통점이 있어서인지, 어린이들의 진솔한 모습 때문인지 모르겠다. 어린이라는 세계가 늘 우리 가까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확실한 건 어린이에 대해 생각할수록 우리 세계가 넓어진다는 것이다.  

 저자는 어린이라는 세계가 우리 안에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어린이의 말에 더 많이 귀를 기울이겠다고 다짐한다. 어린이가 표현한 것만 듣지 않고, 표현하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겠다고. 어린이가 말에 담지 못하는 감정과 분위기가 무엇인이 알아내는 어른이 되겠다고. 바로 이것일까? 어른인 우리가 어린이의 세계로 진입할 수 있는 방법!


 어린이를 온전히 마주하는 경험은 결국 우리 안에 오랫동안 숨겨 둔 가장 작고 여린 마음을 다시 꺼내 들여다보고 천천히 헤아리는 시간이라는 윤가은 영화감독님의 추천평도 눈에 띄었다.

 단지 유년을 경험했다고 해서 아이들의 마음을 잘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미 작은 감각들이 무뎌지고 퇴화한 어른으로서 어린의 세계에 다시 진입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과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 어린이의 키에 맞추어 세상을 보고, 어린이의 보폭에 맞추어 걷고 뛰면서 함께 호흡해야 한다. 어린이 마음의 미세한 진폭을 느끼기 위해서는, 때론 내 마음의 단단해진 근육들을 다시 말랑말랑하고 부드럽게 바꿀 줄도 알아야 한다.     

  리뷰와 추천평을 보면서 내가 그동안 엄마라는 이름으로 아이를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얼마나 내 방식대로 아이를 바라보았는지 반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동시에 희망도 생겼다. 세월을 거슬러 내가 어린이로 돌아갈 순 없지만 소은이를 통해 어린이라는 세계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그럼 어쩌면 소은이의 말대로 나도 어린이가 되어 아이가 말하는 것을 함께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아이미성숙한 존재, 그저 어른의 돌봄을 필요로 하는 나약한 존재가 아니라 때론 어른보다 더 진중하고, 어른보다 더 세심하고, 배울 것이 많은 존재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다. 소은이와 대화하다보면 평소에 내가 생각하지 못한 지점에 가닿을 때가 많다. 그녀는 나를 성장시키고, 나를 꿈꾸게 하고, 나를 좀 더 좋은 어른으로 변화시킨다. 어쩌면 내가 소은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소은이와 함께 나도 자라는 중일지도 모른다.


 내일은 서점에 가서   책을 찾아봐야겠다. 오랜 전부터 관심은 있었지만 이제야 만나게 된 한 권의 책. 우리가 사람과 관계를 맺고, 사랑을 하는데 타이밍이 존재하듯이, 책이 사람과 만나는 것도 타이밍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나에게는 지금 이 시점이 이 책과 만날 타이밍인 것 같다. 책을 통해 소은이를 좀 더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방법 찾을 수 있기를. 부디 어린이라는 세계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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